본문듣기

다 불타서 벽체만 남았는데 문화재가 된 성당

화재로 훼손됐지만, 고풍스러운 멋을 느끼기엔 부족함 없는 포천성당

등록 2020.07.03 18:45수정 2020.07.03 18:45
0
원고료로 응원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포천성당을 찾았다. 포천시청을 지나 왕방로를 따라 달려 포천성당에 도착하니 보기 좋게 가꾸어진 향나무가 반겨준다. 오전 미사가 끝난 시간 성당은 고요함이 가득했다. 축대에 둘러싸인 언덕 위에 서 있는 성당 건물은 나무에 가려 보일락 말락 했다.

성당으로 오르는 길 초입부터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성당 오르며 자연스레 '십자기의 길'을 걷는 작은 순례를 하게 됐다. 나무 패널이 세워진 매 기도처마다 잠시 머무는 사이, 어느새 언덕 위 성당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군부대와 군 장병들이 세운 포천성당
  

구포천성당 1950년대 전후 성당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구포천성당. 아름다운 고딕양식의 성당은 1990년 화재로 불탔다. ⓒ 변영숙


언덕 위에 작은 석조 건물이 서 있다. 아치형 대문과 분홍색 첨탑 그리고 첨탑 위에 실낱 같이 서 있는 십자가. 이렇게 앙증 맞을 수 있을까. 개척시대 서부 영화에 등장하는 성당처럼 고풍스러웠다. 예쁜 교회 건물을 보고 들떴던 마음도 잠시, 건물 정중앙 상단에 '성 가브리엘 성당'이라는 명패 앞에서 이내 숙연해졌다. 단단한 석벽과 건물 측면에 세워진 지지대는 서양 중세 시대의 수도원 건물을 연상시켰다.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나 다행히 옆문이 열려 있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내부 모습이 드러났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외관과 달리 성당 내부는 휑했다. 벽체와 창문 그리고 제단 쪽에 사제들이 제의를 드나들던 계단들아 남아 있을 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바닥과 벽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창틀도 타다 꺼진 숯검댕이들이 쩍쩍 갈라진 채 그대로 끼워져 있었다. 마치 전쟁의 포화를 맞은 듯했다.
  

화재로 훼손된 구포천성당 1990년 발생한 화재로 훼손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변영숙


포천성당은 1955년 당시 포천 일대에 주둔한 육군 6군단 군단장 이한림(가브리엘) 장군이 익명의 독지가가 기증한 1000여 평의 대지에 공병 부대의 힘을 빌어 세운 성당이다. 1955년 11월 60평 규모의 성당 건물과 사제관이 완공했고, 12월에 춘천 대목구장 퀸란(T. Quinlan, 具仁蘭)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포천성당은 포천에 건립된 최초의 성당이라는 종교사적 의미가 있다. 또, 전쟁 후 당시의 성당 건축 양식이 적용된 석조 건축물로 건축사적 의미도 매우 컸다. 군 장병이 직접 지은 성당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성당이기도 했다. 

화재로 불타버린 성당 문화재로 등록되다  
  

구포천성당 최소한의 복원공사를 마친 구포천성당의 모습 ⓒ 변영숙


1990년 성당은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다. 사업에 실패한 전직 경찰이 성당 안 제의실에서 잠을 자면서 켜 놓은 촛불로 인해 발생한 화재가 성당을 집어 삼킨 것이다. 화마로 인해 성당은 벽체만 남긴 채 지붕이며 제대, 성물 등 모든 것이 소실되었다.

성당은 오랫동안 지붕도 없이 벽체만 남긴 채 서 있었다. 건물 붕괴를 우려해 성당을 허물고 새로 짓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알아본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와 포천 성당 신부, 학자 등의 노력으로 2006년 9월 19일 등록문화재 제271호로 지정되었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구포천성당 내부 화재로 훼손된 구포천성당 내부 모습. 건물 붕괴를 우려해 지붕 보수 등 최소한의 보수 공사를 마쳤다. ⓒ 변영숙


현재 성당은 이전의 벽체만 남아 있던 모습에서 지붕을 얹고 창문을 끼우는 등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최소한의 보수공사를 마쳤다.


건물 정면 중앙에 배치된 종탑, 60~65cm 정도의 두꺼운 벽체, 건축물을 외부에서 지탱해주는 버트레스 장치 및 화강석 조적구법, 단일 홀로 구성된 강당형 평면, 종탑과 뾰족한 아치 창호 등, 포천성당은 6.25 전쟁 전후 석조 건축의 전형적인 특징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구포천성당 구포천성당은 2006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변영숙


비록 최소한의 복원을 거치긴 했으나, 훼손된 상태 그대로 서 있는 포천성당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문화재가 반드시 복구와 복원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대로 된 고증 없는 엉터리 복구와 복원으로 본래의 아름다움과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 문화재가 어디 한둘인가.  
#구포천성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AD

AD

AD

인기기사

  1. 1 '특혜 의심' 해병대 전 사단장, 사령관으로 영전하나
  2. 2 "윤 대통령, 달라지지 않을 것... 한동훈은 곧 돌아온다"
  3. 3 왜 유독 부산·경남 1위 예측 조사, 안 맞았나
  4. 4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5. 5 총선 참패에도 용산 옹호하는 국힘... "철부지 정치초년생의 대권놀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