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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후진국에서 벌이는 기이한 '불공정 타령'

[주장]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논란이 불편한 이유

등록 2020.07.04 11:08수정 2020.07.0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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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 인원 감소 항의' 전국교대생 총궐기대회 초등교사 임용 예정 인원 감소에 교대생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2017년 8월 11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OECD평균 수준 학급당 학생 수 감축’ ‘1수업 2교사제 졸속 도입 등 단기적 대책 철회’ 등을 요구하는 전국교육대학생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 권우성

  
3년 전, 중등교사 임용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가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 문제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친구 역시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정규직에 들어가기 위해 좁디좁은 취업문 근처를 수년간 서성이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한 자리 숫자에 불과한 모집정원에 들고자 수백만 원이 넘는 강의료를 내고, 노량진에서 공부했다. 그러면서 공부가 끝나면 괜찮아질 것 같은 두통이나 근육통, 몸살을 주기적으로 달고 살았다. 공부를 제대로 못한 날이면 죄책감을 느끼고, 어쩌다 거액을 결제하는 날에는 부모님 얼굴을 떠올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가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고 분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친구는 지난해 임용 시험을 포기하고, 올해 공무원 일반 행정직으로 진로를 틀었다.

안정적 직업을 찾아 방황하고, 또 책상 위에서 씨름하는 청년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지난 6월 13일 치러진 2020년도 8·9급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는 24만 531명이 응시해 평균 10.4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각종 취직 시험의 평균 입사 연령은 높아졌다. 지난 4월 22일, 취업포털 업체 인크루트가 발표한 대졸 신입사원 평균 나이는 30살이 넘었다. 1998년 25세에 비해 6살 정도 높아졌다. 업계 종사자들은 취업난으로 대학생들이 졸업을 미루고, 각종 스펙을 준비하느라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진 데서 그 원인을 찾는다.
  
치열한 경쟁 속에 여러 직종과 회사를 기웃거리다 나이가 들고, 눈칫밥을 먹는 게 취업 준비생들의 현실이다. 이들은 학창시절에 두 차례의 금융위기를 목격했다. 재벌가의 갑질 사건도 똑똑히 지켜봤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사회초년생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비정규직 투쟁'에 나서기보다 정규직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으로 보였다. 좋은 일자리가 곧 생존을 의미하는 세상이었다. '비정규직을 철폐하라'고 외쳐봤자 스펙에 보탬도 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 메아리 같았다.

나쁜 일자리 만든 책임,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청년들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이번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사안도 정파적으로 이용한다. 정규직 일자리를 없애고, 비정규직 일자리를 양산한 과거에 대한 반성과 고민은 어디에도 없다. 제대로 된 분석과 해법 없이 그저 '을들의 전쟁' 또는 '노노 갈등'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인다.

비정규직이 없는 나라는 없다거나, 인건비를 이유로 어쩔 수 없다는 게 비정규직 전환 반대의 합리적 근거가 될 수 있나? 비정규직과 나쁜 일자리 양산에 책임이 있는 기성세대로서 무책임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결과적으로 문제의 본질도 흐린다. 자신들이 약자에 편에 서 왔다고 자부하는 다른 한쪽도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다. 단편적으로 이분화해 반대하는 청년을 모두 '금수저'나 '이기적인 사람'으로 대결 구도를 만드는 것은 사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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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6월 25일 오후 서울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들의 정규직 전환 관련 입장을 발표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7월 2일 현재 27만 명의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를 받은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 주십시오'라는 청원글도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한꺼번에 많은 이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이들이 노조와 회사를 '먹는다'고 단언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이 언제부터 그렇게 노동권이 강력한 나라였던가? '노조'에 담긴 불편한 어감은 보수언론을 필두로 한 기업들이 국민들을 상대로 오랫동안 가스라이팅(Gaslighting,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 해온 결과다.

기업은 국가가 만든 사회적 인프라를 활용하고 여러 제도적 혜택과 함께 노동력을 통해 존재한다. 그럼에도 상당수 기업의 대표자들은 회사를 온전히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왔다. 이는 한국이 대표적 노동 후진국인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소모품으로 여겨진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고, 위험한 일을 하다가 죽거나 다친다. OECD 회원국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던 경제학 박사 우석훈씨의 말처럼 한국 노동시장은 반민주적이다.

기업들은 합법적으로 비정규직을 남발하고, 소수의 좋은 일자리를 당근책으로 활용했다. 정부의 적극적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행태를 관리·감독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줘야 할 정부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당장은 내 일자리를 지키느라 우리 모두의 고용 불안과 처우를 함께 고민하지 못했다.

우리가 진짜 분노해야 할 불공정은

약간의 주식으로 주인 노릇을 하면서 탈법과 편법을 동원해 경영세습을 하는 이들에 대해 인천국제공항 사태처럼 시끄러웠던 적은 있었나? 사람들은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의 절차적 정의를 따지지만, 경영 세습에는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경영세습 과정에서 이들의 능력이 제대로 검증받은 적이 있었나? 이들에겐 공개채용으로 입사한 직원들과 달리 어떤 실수도 용서가 되고, 좋은 평가가 보장된다.

직원 모두는 오너 일가를 '주인'으로 여긴다. 그들은 진짜 주인이 맞는가? 이것이 사회가 말하는 공정한 현실인가? 이게 진짜 분노하고 바꿔야 할 현실이 아닌가? 지금 앞장서서 공정을 부르짖는 일부 정치인과 언론들은 이런 경영세습의 절대적 수호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지금 이들 입에서 나오는 '불공정 타령'은 위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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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일자리 대책 보고대회, 인사말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3월 1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청년일자리 대책 보고대회 및 제5차 일자리위원회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보다 근본적으로 불공정 문제에 맞서야 했다. 비정규직 해소는 특정 공기업에서 비정규직이 사라진다고 해결될 수 없다. 비정규직 철폐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적 소신에는 동감하지만, 일차원적 접근처럼 여겨진다. 특정 공기업을 콕 집어 전환해주는 것은 정권의 '빅 이벤트'처럼 느껴질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

비정규직이 문제인 이유는 단순히 고용 불안이 아니다. 정규직과의 차별 해소라는 점에서 본다면 관점에 따라선 이번 전환 역시 반쪽짜리일 수 있다.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를 줄이고, 노동자의 목소리가 더 힘을 갖는 노동권 강화가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던 전태일 열사가 떠난 지 50년이지만 그저 법에 있는 노동권을 지키는 일이 이토록 요원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일상적 차별에 대해 정책적으로 규제하고, 그에 대한 관리·감독이 먼저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청년들이 어떤 직장에 가도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드는 날이 있을까? 교과서조차 노동자의 권리를 외면하는 지금의 현실에선 허무맹랑한 꿈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어느 쪽에도 쉽게 공감할 수 없고, 회의적인 생각만 쌓이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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