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읽고 살아갈 희망을 얻었어요"

[김승일 시인의 학교詩끌 13] 학교폭력 피해 학생과의 감동적인 만남

등록 2020.07.03 10:17수정 2020.07.0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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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시인의 학교詩끌'은, 학교가 폭력으로 시끌시끌하다는 뜻, 시(詩)로 학교를 끌어당기거나 끌어준다는 뜻, 결국에는 좋은 의미에서 학교가 시끌시끌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글이 학교폭력 예방 문화를 만들어 나아가려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기자말]
인스타에 시 낭독회 공지를 올렸다. 시 낭독회 포스터가 올라간 지 며칠이 지났을까. 누군가 나에게 인스타 메신저로 연락을 해왔다. '누구지?' 간혹 이상한 메시지도 날아오는 곳이 SNS이기에, 갑자기 찾아오는 알람이 늘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저… 올려주신 포스터요. 시 낭독회를 꼭 가고 싶은데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내 시 낭독회에 오겠다니, 나는 갑자기 무척 호의적이 되어서 "아, 그러시군요. 어렵지 않아요. 포스터에 있는 날짜와 시간에 맞춰서 그냥 오시면 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 독자분이 첫 시 낭독회를 경험하기 위해 벼르고 있다가, 우연히 포스터를 본 것이겠거니 했다.

꼭 시를 배우는 분들만이 아니라 일반 독자를 더 많이 만나고 싶어서 시작한 시 낭독회 이름마저 '우리동네 이웃사촌 시 낭독회'였다. 독자들과 이웃사촌처럼 가깝게 지내고 싶어서 기획한 자리였으니, 메신저로 연락해온 분을 적극적으로 초대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꼭 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이렇게 당부의 말까지 덧붙였다. 그런데 뒤이어 이런 문장이 메신저에 떴다.

"시인님의 시를 읽고 좋았는데, 마침 시 낭독회를 하신다고 하셔서요. 저 시인님 시 팬이에요."

나는 눈을 한 번 비볐다. 메신저 채팅 창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는데, 내가 읽은 그대로였다. 19살의 한 학생 팬이 나에게 용기를 내어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해온 것이다. 나는 마치 저 우주 건너편으로부터 전파를 받아, 또 다른 문명을 발견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그 학생에게 자꾸 하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을 알아본다

학생 시절, 내가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나는 잘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학교폭력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나는 비로소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폭력적인 상황에 깊이 잠겨 있을 때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다 내 탓이 아닐까 이런 생각에 침잠해서 죽고 싶은 마음 뿐이었고, 그렇기에 무기력한 나날들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환경에 놓인 그 시절의 나에게, 시는 유일한 친구였다. 시를 쓰고 시만 읽었다. 시 말고 그 어떤 것을 찾을 만한 여유가 내게는 없었던 것 같다.

깊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연락해온 그 학생 또한 혼자서 힘든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지금은 그 힘들었던 시간들로부터 조금은 걸어나와 있지 않을까. 그때 아마도 우연히 내 시집을 읽지 않았을까. 시집을 읽는 가운데 '나처럼 아픈 사람이 이 지구 어딘가에 또 있었구나' 하고 공감한 것은 아닐까.

두려움으로 가득 찬 심장박동이 아닌 다른 울림이 가슴 안에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학생이 혼자만의 아픔에서 간신히 걸어나와 삶의 새로운 문턱에 가까스로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지닌 사람에게 조금씩 다가가려는 움직임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거기까지 걸어온 학생에게 작게나마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나만이 줄 수 있는 것들을 오래오래 나누어주고 싶었다. 그 학생을 위해서 시를 낭독해주고 싶었다.

D-1, 노트에 깨알처럼 적힌 간절함
 

시 낭독회에 꼭 오겠다고 말하면서, 학생이 나에게 보여준 노트의 내용을 나의 노트에도 꾹꾹 눌러 써보았다. 우리 삶은 이렇게 만남을 향해 가려는 마음으로 빼곡하다. 그런 마음이 담긴 한 학생의 글씨들을 보고 나는 한참 동안 뭉클했다. 나도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이런 마음으로 다가가리라 생각했다. ⓒ 김승일

  
시 낭독회 하루 전날, 동네책방까지 잘 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나는 학생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다행히 학생은 꼭 가겠다고 거듭 말하면서, '평택-수원' 간 대중교통 이용 방법을 깨알 같이 적어놓은 노트 사진을 내게 보내주었다. 그 학생이 정말로 낭독회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 또한 다음 날을 간절히 기다렸다. 어떤 할 말. 가슴에 품고 오랫동안 참아온 말.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들려주고 싶은 말들이 그날 거기에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시 낭독회'라는 것을 하다가 처음으로 울었다

학교폭력 피해학생이 내 시집을 읽고 직접 나를 만나러 온 것은 처음이었다. 책방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와 맨 끝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시 낭독을 듣던 작은 체구의 여학생은, 독자와의 소통 시간이 되자 지난 날의 자기 아픔들을 고백해주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제가 물을 뜨러 간 사이, 친구들이 제 식판을 엎어버렸어요"라고 말할 때부터 나는 목에 무언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픈 고백이 아픈 고백과 만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나는 자주 울컥했다. 학생이 조심조심 말하는 중간에 나는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나를 괴롭히기만 했던 친구들을 왜, 나는 오랫동안 친구라고 불렀을까?' 학교폭력으로 힘들었던 학생 시절의 어린 내가 그 낭독회 자리에 와 있었다.
 

수원에 위치한 동네책방 '랄랄라 하우스'에서 독자분들과 함께 '우리동네 이웃사촌 시 낭독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가끔 '영원히 잊지 못할'이라는 수식어를 통해서 어떤 시간들이 소중하고 진실됐음을 이야기하곤 한다. 아주 오래된 수식어이지만, 그날 시 낭독회에서 "나 또한 정말 그러했다고" 고백할 수 있었다. 나는 비로소 이 세상에 꼭 존재해야 할 한 명의 작은 시인이 된 것 같았다. ⓒ 랄랄라 하우스

  
학생은 내 시집을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시인님의 시집을 읽으면서 그 거친 시들이 하나도 거칠지가 않고 오히려 제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었어요"라는 말에 눈물이 났다. 어떤 답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시를 통해서 위로를 받았다는 말에 고마웠고, 폭력의 미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더욱 고마웠다. 시가 있는 그 자리로 찾아와 준 것에 나는 얼마나 감사했던가. 내가 학생에게 위로를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이 나에게 깊은 위로를 주었다. 다짐했던 대로, 그 학생을 위해 나는 마음에 담아두었던 한 편의 시를 낭독했다.
 
말 없는 너를 보고 있어
녹화된 화면 속
말없이 뒤돌아서는 너를 보고 있어
네가 살고 싶다고 말한다면

(…)

나는 듣고야 말 거야 나는 너의 이야기를 안고 더 멀리 걸어가고야 말 거야

(…)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나날들을 만날 수 있다면

햇빛 같은 웃음이 나올 텐데

김승일,  '죽은 자들의 포옹' 일부 (시집 <프로메테우스>)
 
나는 시를 사랑하지만, 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좌절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학교에서 친구에게 끌려가 맞는 순간에도 나는 시를 사랑했고, 군대에서 고참에게 붙들려 구타를 당하는 순간에도 내 건빵 주머니에는 시집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시는 나를 그런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구원해주지 못했다. 때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왜 지금까지 시를 쓰고 있을까. 나는 시가 이루어낼 수 있는 기적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한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세계를 위로하는 것과 같고,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세계를 구하고 있는 것과 같다.' 시를 쓰면서, 나는 이 문장을 더 믿어보려고 한다.

이 거친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알게 된 순간부터 인간의 삶은 시작된다. 사랑이 시작된다. 사랑을 파종할 손가락만 한 깊이가 이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나와 너에게 계절처럼 찾아오기를 희망한다. 사랑을 주라. 사랑을 주라. 그리고 기다리라. 시를 썼기에 닿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들이, 더 찾아오리라.
 

시 낭독회가 끝나면, 시집에 하나하나 정성으로 서명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시간이다. 왜냐하면 내 시집에 내 이름만 적는 것이 아니라, 독자분들의 이름을 함께 적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의 팬이라고 말해준 그 고마운 학생의 이름도 꾹꾹 눌러 적었다. 그 학생과 내가 앞으로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그리고 시낭독회 때 못다 한 이야기를 하면서. ⓒ 랄랄라 하우스

  
'학교詩끌'을 실었던 몇 권의 잡지에 힘이 되는 말을 써서,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의 마음을 나 또한 집으로 돌아가면서 내내 생각했다. 많이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집에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 시의 팬이라고 말해준 그 학생도 나도, 앞으로 용기를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아프고 힘든 일들이 우리에게 많았지만, 앞으로는 사랑으로 가득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른 아픈 이들을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사랑의 힘으로 사랑을 기록할, 미로 같은 시 쓰기의 시간으로 돌아가리라

시 낭독회가 끝난 뒤에도 마음은 며칠을 더 울었다. 나도 학생 시절에 누군가와 이런 만남을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보았고, 그런 와중에 슬퍼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마음들을 더 자주 토닥여주었다.

시를 쓰다가도 나는 잘 우는 편이었다. 원래도 울보인데, 시를 쓰면서 더 울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면 힘겨웠던 마음도 조금은 후련해진다. 나는 그것이 어둠이든 밝음이든, 어둠과 밝음 속으로 미로처럼 칭칭 감아던지는 시적 언어의 궤적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미로를 푸는 힘은 미로를 오래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게 되는 것 아닐까. 누가 뭐라고 해도, 그래서 오래오래 고민해보아도, 나는 언제까지나 그것을 결국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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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없는 학교를 소망합니다. 제 첫 시집 『프로메테우스』를 학교에서 낭독합니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피해학생들을 치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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