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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1위 한국라면' 보도의 깜짝 놀랄 반전

왜 한국 언론은 7월 2일에 기사를 쏟아냈을까

등록 2020.07.05 20:24수정 2020.07.2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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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수정 : 7월 29일 오전 10시]

지난 2일 한국 언론들은 '농심'의 신라면 블랙이 <뉴욕타임스>로부터 세계 최고의 라면으로 선정이 됐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뉴욕타임스의 제품 리뷰 사이트 '와이어커터'에 실린 '최고의 인스턴트 라면' 기사에서 신라면 블랙은 기자와 전문가들이 선정한 전 세계 BEST 11라면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뉴욕타임스>가 뽑은 11개의 라면 중 한국 라면이 4개, 일본 라면이 6개, 싱가포르라면이 1개가 포함돼 있답니다. 세계 최고의 라면으로 선정된 한국라면 4개는 "신라면 블랙 (1위), 짜파게티&너구리(3위, 일명 짜파구리), 신라면건면 (6위), 신라면사발면 (8위)"로 모두 '농심' 제품입니다.

이 기사가 실린 <와이어커터>(The Wirecutter)는 2016년 <뉴욕타임스>에 인수된 제품 리뷰 전문 사이트입니다. 초창기에는 IT제품을 위주로 추천을 했는데 지금은 생활용품 전반으로 리뷰 대상을 확대한 상태입니다.

<와이어커터>의 리뷰가 유명한 이유는 여러 명의 전문가들 추천을 받아 리뷰를 할 제품을 선정하고, 리뷰어가 직접 사용 및 실험해 보고 결과를 내놓는데 평가에 참여한 전문가가 누구인지, 평가를 진행한 제품을 어떻게 골랐는지 등 리뷰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공개하기 때문입니다.

<와이어커터> 리뷰, 신뢰도 높은 까닭
 

제품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어떤 방법으로 비교 평가를 했는지 자세하게 써 놓고 있습니다. ⓒ 와이어커터 기사 갈무리

 
<와이어커터>에서 식품 및 주방용품을 주로 담당하는 안나 펄링(Anna Perling) 기자는 7명의 전문가들에게 좋아하는 라면을 추천해 달라고 해서 그중 11개를 골랐습니다. 그런 뒤 풍미에 따라 그룹을 지은 후 며칠에 걸쳐 맛을 보며 비교했다고 기사 말미에 적어놨습니다. 보통의 경우 입맛에 따라 계란이나 야채·고기 등을 추가하지만 테스트 결과에 끼칠 영향을 생각해서 라면 봉지에 적힌 조리법 대로만 조리했다고 합니다. 다만, 짜파구리의 경우에만 전문가 망치(Maangchi) 블로그의 추천에 따라 스테이크를 추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비교 평가하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기 때문에 <와이어커터>의 리뷰 결과에 신뢰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세계 1위의 라면으로 한국 '농심'의 신라면 블랙이 선정됐으니 축하할 만한 일이겠습니다.

신라면 블랙이 <와이어커터>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라면으로 선정됐다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미 사흘 전에 거의 모든 언론이 기사를 쏟아 낸 이 이야기를 <와이어커터>가 어떤 사이트인지 정도를 추가로 소개하려고 다시 언급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전
 

뉴욕타임스의 리뷰사이트 와이어커트에 실린 기사. 발행일이 6월 17일입니다. ⓒ 와이어커트 화면 갈무리

   
<와이어커터>에 이 기사가 실린 건 2020년 6월 17일입니다. 한국의 언론들이 이 뉴스를 쓰기 시작한 것은 2020년 7월 2일부터입니다. <뉴욕타임스>에 한국 관련 기사가 뜨면 재빠르게 인용보도하는 한국 언론이 2주 넘게 이 기사를 소개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추측컨대 한국 기자들이 <뉴욕타임스> 기사는 모니터링을 하지만 <와이어커터>에 실리는 리뷰 기사까지는 보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와이어커터>의 리뷰는 실구매자들이 제품 선택을 위해 방문하는 생활밀착형 정보니까요.

그렇다면 7월 2일부터 약속이라도 한 듯이 기사를 쏟아낸 이유는 뭘까요? 그 이유를 자사의 라면 4개를 세계 최고 라면 리스트에 올린 '농심'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7월 2일, 농심 홈페이지 보도자료에 올라 온 관련 보도자료 ⓒ 농심 홈페이지 갈무리

 
7월 2일 <농심> 홈페이지 보도자료 게시판에 "뉴욕타임스가 꼽은 세계 최고의 라면 '농심 신라면블랙'"이라는 보도자료가 올라와 있습니다. 내용을 확인 해 봤습니다. 수많은 국내 언론들이 쓴 기사의 내용이 여기에 다 있었습니다.

"신라면블랙은 특유의 진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에서 큰 점수를 얻었다. 뉴욕타임즈는 신라면블랙을 '한국 1등 신라면의 프리미엄 버전'으로 소개하며, 설렁탕 후첨양념이 들어간 진한 소고기 육수와 적절한 매콤함, 슬라이스 마늘과 큼지막한 버섯 조각, 쫄깃한 면발이 주는 훌륭한 식감의 조합을 매력으로 평가했다." - <농심 보도자료> 원문

"신라면블랙은 특유의 진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에서 큰 점수를 얻었다. NYT는 신라면블랙을 '한국 1등 신라면의 프리미엄 버전'으로 소개하며 설렁탕 후첨양념이 들어간 진한 소고기 육수와 적절한 매콤함, 슬라이스 마늘과 큼지막한 버섯 조각, 쫄깃한 면발이 주는 훌륭한 식감의 조합을 매력으로 평가했다." - <조선비즈> 보도


<조선비즈>의 기사와 '농심'의 보도자료는 "뉴욕타임즈"를 "NYT"로 바꾼 것과 기사 중간에 쉼표 하나 더 들어간 것만 제외하면 그냥 복사·붙여넣기 수준으로 같습니다. 편의상 <조선비즈>만 예를 들었습니다.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껴 쓴 다른 언론들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농심'이 쓴 보도자료는 <와이어커터>의 원문을 그대로 옮겼을까요?
 
The Shin Black noodles are a premium version of NongShim's popular Shin Ramyun noodles (which food blogger and cookbook author Maangchi recommended), and they contain an additional "sul-long-tang" (ox bone) seasoning packet. The milky bone broth facsimile makes Shin Black's soup creamier and less spicy than the original Shin Ramyun. Several Wirecutter staffers love the original, while others swear by the Black noodles. And people debate in Amazon reviews and Reddit threads about whether the Black noodles warrant the price increase (at the time of publication, Shin Black runs about $3 per package, while Shin Ramyun costs about $1). <와이어커터> 리뷰 원문

<와이어커터>의 기사를 몇 번 읽어봐도 <뉴욕타임스>가 "신라면블랙을 '한국 1등 신라면의 프리미엄 버전'으로 소개"한 부분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자면 "신라면 블랙은 농심의 인기있는 라면인 신라면의 프리미엄 버전이며 설렁탕 맛 조미료가 추가됐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몇몇 <와이어커터> 리뷰어들은 기존의 신라면이 좋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고, '아마존'이나 '레딧'에서는 신라면 블랙이 1달러에서 3달러로 가격을 올릴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말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소개했습니다.

외신을 보도하면서 원문을 보고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회사의 보도자료를 가지고 쓰다 보니까 원문에 없는 표현이 들어 가고, 원문에서 언급했던 다른 이야기는 전혀 전달이 안 되는 겁니다.

<와이어커터>의 공신력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리뷰할 제품을 선정하고, 그걸 기사를 쓰는 이들이 직접 사용해 본 뒤 그 결과를 내 놓으면서 리뷰 과정에 참조했던 모든 자료들을 가감없이 공개하는 데 있습니다. 한국의 언론들은 직접 취재도 하지 않고 보도자료만 붙여넣고 있는데 그 보도자료의 사실관계조차도 제대로 확인 하지 않으니 공신력이 생길 리가 없겠죠.
 

한국언론의 신뢰도가 21%로 조사대상 40개국 가운데 40위입니다. ⓒ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보고서 갈무리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펴낸 '디지털뉴스리포트 2020'을 보면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꼴찌인 40위로 조사가 되었습니다. 창피한 일입니다. 하지만 외신이 전하는 뉴스조차도 원문 대신 기업의 홍보성 보도자료에만 의지해서 쉽게 기사를 쓰는 행태가 계속 되는 한 꼴찌를 탈출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바로잡습니다
당초 본 기사에서 언급됐던 <조선일보>는 다른 기사를 오인한 것이기에 이를 바로잡습니다. 조선일보사 측은 확인취재를 거쳐 해당 사안을 보도했으며, 본 기사에서 지적한 문제가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독자 여러분과 <조선일보>에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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