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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별나게 꼿꼿... 지금 윤석열의 태도가 의미하는 것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노무현·문재인 정권에서만 '용감'한 검찰

등록 2020.07.06 19:14수정 2020.07.06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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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해 10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 참석한 모습. ⓒ 이희훈


지금 윤석열 검찰총장이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다. 검찰 개혁이 아직도 멀었으며,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매우 절실하다는 점이다. 그는 이것을 국민들 앞에서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지난 2일,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윤석열 측근 검사장이 연루된 검언유착 수사에 대해 검찰총장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서울중앙지검이 총장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검찰청법 제8조에 의거한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맞서, 윤석열 총장은 다음날인 3일 전국 고검장·지검장 회의를 열고 간부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불법·부당성이 명백하지 않다면, 상관의 지휘에 따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부하 간부들을 대대적으로 불러들여 의견을 묻는 이례적 행보를 보였다. 비공개로 조용히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고검장·지검장 회의에서 총장 사퇴를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달리 생각하면, 이는 윤석열이 고검장·지검장 회의를 활용해 자신에 대한 신임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직접적으로는 대통령의 신임에 의존하고 간접적으로는 국민의 신임에 의존하는 검찰총장이 자신의 거취와 관련된 중대 기로에서 검찰 간부들의 지지를 재확인했다는 것은,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윤석열의 평소 인식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역대 검찰 중에서 정권에 대해 가장 '용감'히 맞선 것은, 윤석열 검찰을 포함한 노무현·문재인 정권의 검찰들이다. 여타 정권 때는 고개를 숙이거나 아니면 협력적이던 검찰이 두 정권에 대해서는 유별나게 꼿꼿이 대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9일의 '검사와의 대화'에서 박경춘 검사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노무현의 학력을 거론했다. "언론에서 대통령님이 83학번이라는 보도를 봤다. 내가 83학번인데 동기생이 대통령이 됐구나라고 생각했다"며 노무현의 고졸 학력을 TV 생중계 시간에 간접적으로 비꼬았다.

물론 학력이 인간의 크기를 좌우하지는 않으므로, 그가 국민들 앞에서 대통령의 학력을 거론한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을 폄하하려는 의도에서 학력을 거론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당시 검사들이 노무현에게 대든 본질적 이유가 학력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다. 만약 학력 때문이었다면, 문재인 정권 하에서는 그들의 태도가 바뀌었어야 한다. 그들이 지금도 유사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대통령의 학력이 본질적 이유가 아님을 보여준다.

노무현의 서민적 풍모나 자율적인 리더십도 본질적 이유라고 할 수 없다. 노무현이 만만하게 보였기 때문에 그랬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노무현·문재인 두 대통령은 서민적 풍모와 자율적 리더십을 보이고 있지만, 이들은 국민적 인기가 높을 뿐 아니라 열혈 지지자들의 응원도 받고 있다. 결코 만만한 인물들이 아니다.

검찰이 두려워 하는 것

검찰이 노무현·문재인을 여느 대통령들과 다르게 대하는 핵심 이유는 두 대통령의 검찰관(觀)에 대한 반발 심리에서 찾을 수 있다. 두 대통령에게서 공통적으로 표출된 것은 '검찰이 국민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강력한 신념이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이 그들에게서 강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노무현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자신이 목표한 검찰개혁 과제 중 하나가 "검찰권 행사에 대한 민주적 통제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실 검찰은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는 권력"이라고 한 뒤 "검찰과 같은 권력기관이 자기 자신의 불법행위를 엄정하게 수사하고 기소할 리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은 문재인에 의해서도 강조됐다. 지난 1월 14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지난 6개월간의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 수행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검찰이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하는 기관이란 점을 좀더 인식하면서, 검찰이 비판받고 있는 조직문화·수사관행을 고쳐나가는 일까지 윤 총장이 앞장서준다면 국민들로부터 훨씬 더 많은 신뢰를 받으리라 생각한다"는 말로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검찰은 1987년 6월항쟁 이전에는 '권력의 시녀'란 소리를 들었다. 권위주의 정권이 왜소해진 이후로는 그런 소리가 줄어들었다. 그 뒤로 검찰과 정권의 관계에서는 상호 경쟁적인 측면이 어느 정도 나타나는 가운데 기본적으로 상호 협력의 양상이 많이 표출됐다.

이처럼 6월항쟁 이후로 정권에 대한 검찰의 태도는 크게 바뀐 반면, 국민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국민을 대하는 검찰의 태도가 바뀌었음을 입증할 만한 결정적 증거는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2016년 촛불혁명의 결과로 새누리당이 균열을 일으키더니, 2017년 1월 24일 박근혜 탄핵을 지지하는 바른정당이 창당됐다. 이는 국민을 의식하는 기운이 보수정당 내에도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2019년 가을에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데도 검찰 내에서는 그런 균열이 발생하지 않았다. 국민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가 검찰 내에 뿌리박혀 있지 않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고질병을 갖고 있는 검찰을 상대로 노무현·문재인은 '민주적 통제'를 추구했다. 국민을 경외하지 않는 검찰을 상대로 '국민의 통제를 받으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어느 정권도 하지 않았던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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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우러 10일 참모진들과 마지막 점심 식사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별관으로 향하는 모습. ⓒ 연합뉴스

  
역대 어느 정권도 검찰에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 과거의 권위주의 정권들은 검찰을 자신들의 통제 하에 두려고만 했지, 국민의 통제 하에 두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의 통제를 받으라'는 노무현·문재인의 요구는 대한민국 검찰의 두 귀에 상당히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이 노무현·문재인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다.

이처럼 검찰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세상을 어수선하게 한다 할지라도, 그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할 이유들은 매우 많다. 그중 하나는 그들이 가진 권력이 여전히 매우 강력하다는 점이다.

검찰이 막강한 권력기관이라는 점은 기소권·수사권·강제수사권(압수·수색 등) 외의 또 다른 측면들에서도 나타난다. 검찰 사무가 기본적으로 행정규제기본법의 적용범위 밖에 있다는 점도 그중 하나다.

행정규제기본법은 국민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끼치는 행정기관의 행위를 제어하기 위한 법률이다. 이 법은 중앙행정기관의 행정규제를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제6조 제1항)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행정기관이 국민 권익을 임의로 침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그런데 이 법 제3조 제2항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항에 대하여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한 뒤 제2호에서 '형사, 행형(行刑) 및 보안처분에 관한 사무'를 규정함으로써 검찰 사무를 이 법의 적용 대상에서 배제했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위협할 수 있는 검찰의 권력적 행위에 대해 이 법을 적용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노무현이 "검찰은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는 권력"이라고 말한 이유 중 하나는 여기에 있다.

정부 기관들이 행정규제기본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특별 권한을 얼마나 많이 행사하고 있는지를 조사한 논문이 있다. 2014년에 <한국자치행정학보> 제28권 제1호에 수록된 오재록·윤향미의 공동논문 '관료제 권력과 민주적 거버넌스 - 중앙정부 4대 권력기관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이 그것이다.

전주대 교수인 두 저자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특별 권한의 보유 측면에서 검찰청은 노무현 때도 1등, 이명박 때도 1등이었다. 두 시기에 경찰청은 4위와 7위, 국방부는 7위와 4위를 기록했다. 검찰청이 경찰청·국방부보다도 더 많은 '열외'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 인용된 표 ⓒ 오재록·윤향미·한국자치행정학회

  
위 논문에 따르면, 언론의 관심도라는 측면에서도 검찰청은 단연 압도적이다. 두 시기 모두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검찰청은 업무 특성상 언론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언론의 관심을 많이 받을수록 기관의 재정이나 공무원의 승진에 유리하므로, 검찰청은 이런 면에서도 힘을 쉽게 키울 수 있다.
 

본문에 인용된 표 ⓒ 오재록·윤향미·한국자치행정학회

  
한편, 장·차관급 공직자를 얼마나 많이 배출했는가 하는 점에서는 두 시기 모두 2위를 차지했다. 자체 공무원 중에 고위직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면에서는 두 시기 모두 4위였다. 특수활동비 규모에서는 노무현 때 4위, 이명박 때 5위였다. '부'가 아닌 '청'이라는 이름을 갖고도 검찰청이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히 많은 힘을 갖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결국은 국민이 손해를 입을 수밖에

이처럼 검찰의 권력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닌데도,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거기다가 법으로 보장된 검찰총장의 2년 임기제가 악용될 경우에는, 그 기간 동안 국민들의 속이 많이 썩어들어갈 수밖에 없다. 민주적 통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보다도 국민들이 더 큰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검찰은 국민들을 상대로 생사여탈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 위험한 '칼'을 들고 있는 기관이 국민은 물론이고 대통령과 법무무장관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생명과 신체는 한층 더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 윤석열과 검찰 간부들의 태도는 검찰이 얼마나 막강하며 얼마나 많은 '열외'를 인정받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국민들이 얼마나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웅변하고 있다. 윤석열 검찰의 완강한 태도는 '검찰개혁을 중단하면 안 된다'는 역설적 의미의 호소라고 볼 수도 있다.
#검찰개혁 #윤석열 #추미애 #수사지휘권 #검언유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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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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