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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은 기독교인도 보호하는 법이다

동성애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기독교인을 위한 미러링

등록 2020.07.08 10:27수정 2020.07.0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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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기업의 과장으로 근무하는 A씨는 신실한 기독교인이다. 일요일엔 예배를 드리기 위해 출근하지 않고, 회식 자리에선 술을 마시지 않으며, 부적절한 접대는 기피한다. 대신 성실과 근면으로 인망이 두텁고, 업무능력도 탁월하다. 그러나 A씨는 번번이 부장인사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팀 관계자와의 식사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A씨는 교회를 너무 열심히 다녀서 문제야. 알다시피 우리 회사 대표가 안티 크리스천이라서... 막말로 교회 다니는 것들은 부장 이상으로는 안 된다고 말하더라."

화가 난 A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고, 인권위는 회사에 대해 종교를 이유로 한 인사상의 차별을 시정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평소 기독교를 지독히 싫어하던 대표는 그 권고를 무시하였다. 결국 A씨는 회사를 떠났다.

차별금지법은 A씨를 보호할 법률

본인이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면 A형제/자매님의 아픔에 공감하고 Z회사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화가 날 것이다. 하지만 A씨의 사례를 동성애자로 바꾼다면 어떨까? 그에 대한 공감과 의로운 분노는 없어질지도 모른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지난 6월 29일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 따르면, A씨는 좀더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다. 인권위는 시정명령을 거부한 Z기업의 대표에게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도 있고, A씨는 소송지원을 받아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Z회사 대표에게 형사상 처벌을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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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안돼요" 마이크 잡은 심상정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역 인근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을 위한 정의당 정당연설회에서 시민들을 향해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심 대표를 비롯해 배진교 원내대표, 김종민부대표도 이날 연설회에 함께했다. ⓒ 남소연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신실한 기독교인인 A씨가 사회에서 부당하게 차별받는 것을 보호할 수 있다. 이는 A씨가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일부 기독교는 그 보호 대상에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만큼은 제외하라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그 말인즉슨, 동성애자가 사회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아도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기독교인이 분노한 만큼 동성애자들도 똑같은 상황에서 아픔과 부당함을 느끼는데도 말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태복음 7:12)

영향력 있는 기독교 신학자인 미로슬라브 볼프는 책 <광장에 선 기독교>에서 두 가지를 주장한다.

첫째, 공적 담론에서 종교를 제거하기란 불가능하고, 제거하여서도 안 된다. 종교를 통해 공적인 삶의 방식을 정의하는 신앙인들에게서 폭력 없이는 종교를 제거할 방법이 없고, 종교는 오히려 건강하고 평화로운 사회관계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그러므로 공적 담론에 참여하는 기독교인은 그 정체성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나타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가 죄인을 위해 이 땅에 왔고, 신자에게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기독교의 주장은 대단히 폭력적이다. 동성애자들이 사회에서 차별받아도 효과적인 법적 구제를 받지 말라고 하기 때문이다. A씨의 사례를 '동성애자'로 바꾸었을 때, 굳이 법적 구제를 배제할 기독교적 근거는 무엇인가? 동성애자들이 '고용의 과정 혹은 직장에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교육기관에서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을 때', '행정서비스 제공이나 이용할 때' 차별을 받아도 좋다고 성경은 가르치는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면, 적어도 '기독교'의 이름으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할 수 없다. 기독교인이 '동성애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권리'를 주장하면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차별금지법 #장혜영 #기독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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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공익전담변호사. 경기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에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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