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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갑족에서 금수저 물고 태어나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 / 2회] 이시영은 7형제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등록 2020.07.09 16:49수정 2020.07.0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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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1868-1953) ⓒ 독립기념관

 
행운을 타고난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누군들 기름진 텃밭이나 안전한 둥지에서 태어나길 마다하랴만, 출생은 본인의 의지가 따르지 않는 법, 신의 영역이거나 우연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불가지론(不可知論)으로 이를 피해간다.

이시영은 행운을 타고났다. 가문ㆍ문벌 좋고 뼈대 있는 집안의 옥동자로 출생한다. 사람들은 그의 집안을 삼한갑족이라 불렀다.

국어사전은 '삼한갑족(三韓甲族)'을 "우리나라에서 옛적부터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이라 풀이한다. 거기다 총명한 두뇌와 튼튼한 건강도 타고났다. 시쳇말로 금수저를 물고 나왔다.

그가 태어난 조선 후기는 여전히 신분사회여서 양반의 자제는 과거에 급제하거나, 음서제(蔭敍制) 즉, 공신이나 현직 당상관의 자손은 과거에 의하지 않고 관리로 채용될 수 있었다. 그래서 평생 대접받고 호의호식하면서 살 수 있다. 영국 등 유럽의 귀족계급과 다르지 않았다.

이시영은 1869년(고종 6년) 12월 3일 서울 저동 (지금의 명동성당 일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조판서와 의정부참찬을 지낸 이유승(李裕承)이며 어머니는 역시 이조판서를 지낸 정순조의 딸이다. 이조판서(吏曹判書)는 조선조 때 문관의 선임과 공훈봉작, 관리의 성적고사, 포폄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정2품 벼슬로 실세중의 실세였다.

의정부는, 조선조 때 임금을 보좌하며 정무를 총괄하던 행정부의 최고기관으로 영의정 1명과 좌의정ㆍ우의정 각 1명이 있었고, 참찬은 의정부에 딸린 정2품 관직으로 역시 의정부의 실세자리였다.

선생의 시조 알평(謁平)은 신라의 개국 공신으로서 어질고 후덕함이 밝게 드러났고, 10대조 백사(白沙) 항복(恒福)은 임진왜란의 으뜸가는 훈신(勳臣)으로 광해 폐모 때는 인륜에 어그러짐을 막고자 항쟁한 사실이라든지, 그 문인들은 서인(西人)으로서 인조반정의 공신이 되었으나 당시 동서(東西) 당파에 초연하였던 것은 후인이 인정 추모하는 바로서, 고절현사(高節賢士)의 혈맥이 뚜렷하다.

6대조 충정공(忠定公) 태좌(台佐)는 노소(老少) 당쟁에 휩쓸리지 않았음을 기리어 영조(英祖)께서 '입조사십년(立朝四十年)에 불편부당(不偏不黨)'이라 하시고 '결신충국(潔身忠國)'이란 넉 자의 글을 내리시어 비(碑)를 세우고 비각을 짓게 하였다.

또한 5대조 오천상공(梧川相公) 종성(宗城)은, 안으로는 역본방지(易本防止), 곧 영조 계유년에 문소의(文昭儀)가 딸을 낳았을 때 간사한 무리가 민간에서 출생한 사내아이로서 바꾸려던 일을 막음으로써 왕통을 잇게 하였고, 밖으로는 청황경복(淸皇憼服) - 영조 갑술년에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대보단(大報壇)에 대한 힐책과 금관 조복 찾을 것을 미리 알고 경탄하게 한 일 - 으로 국위를 선양한 공적은 세인이 모두 아는 바이다.  그 외에도 혁혁하신 분들이 면면히 계승하였으니, 이루 다 기술할 수 없을 정도이다. (주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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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기념관에 걸린 사진들. 독립운동에 목숨과 재산을 바친 우당을 비롯한 여섯 형제가 나와 있다. ⓒ 조호진

 
이시영은 7형제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맏이는 건영(健榮). 둘째는 석영(石榮), 셋째는 철영(哲榮), 넷째는 회영(會榮), 여섯째는 소영(韶榮), 막내는 호영(頀榮)이다.
 소영은 어린나이에 세상을 떴다. 여동생은 둘이었다. 매제 신재희는 독립운동가 해공 신익희의 친형이다.

이시영이 형제들과 함께 모든 재산을 팔아 망명길에 나설 때까지 40여 년 동안 삼한갑족의 영예를 누리게 된 선대의 뿌리를 다시 살펴본다.

<경주이씨대동보>에 따르면 이시영의 선대는 경주이씨 상서공파(尙書公派)로 10대조는 백사 이항복으로, 권율 장군의 사위다. 이항복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데 이어 이조참판ㆍ형조판서ㆍ홍문관대제학을 지내고, 호남지방에서 근왕병을 일으키게 하여 왜적을 막는 등 많은 공을 세워 좌의정 겸 도제찰사를 지냈다.

5대조 오천(梧川) 이종성은 영조 때에 영의정을 지냈으며, 부친 이유승은 1864년(고종 1)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1868년 평안도 암행어사가 되었다. 그후 여러 관직을 거쳐 대사성에 이어 예조ㆍ공조ㆍ형조ㆍ이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였다. 그 밖에 직계 조상들 가운데는 중앙의 고위 관직에 올랐던 인물이 적지 않았다.

시조인 은열왕 알평(謁平)은 신라 개국 원훈이고, 중조(中祖1세)는 거명(居明). 10대조는 항복(恒福, 영의정), 9대조는 정남(井男, 예보사정), 8대조는 시술(時術, 이조판서), 7대조는 세필(世弼), 6대조는 태좌(台左, 좌의정), 5대조는 종성(宗城, 영의정), 4대조는 경윤(敬倫, 병조판서), 증조는 정규(廷奎, 예조판서), 조부는 계선(啓善, 정언), 부친은 유승(이조판서)이다.


주석
1> 박창화, 『성재 이시영 소전』, 22쪽, 을유문화사, 1984.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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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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