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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때면 나무그늘이 간절해진다

아이와 자연을 누비며 느낀 것들

등록 2020.07.08 10:24수정 2020.07.0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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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풀이 넓게 펼쳐진 풀밭 ⓒ 바른지역언론연대


시간이 너무 많은 요즘, 아이와 함께 할 시간도 많다. 하지만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지,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데 아이가 내 마음과 같을 리 없다.

그래도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 자전거도로를 달려본다. 목적지는 집에서 15분 거리의 텃밭이다. 오고 가는 길에 아이에게 길 안내를 시켰더니 아빠와 몇 번 가본 곳이라고 거리낌이 없다.


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페달을 밟다보니 땀이 주르륵 흐른다. 이럴 때 간절한 것이 시원한 바람이고, 나무그늘이다. 요즘은 신호등 옆에 파라솔이나 그늘막이 세워져 있어 땡볕에 오랫동안 서있지 않아도 되는 좋은 세상이다. 하지만 나무그늘에 견줄 바가 아니다.

나무 아래는 이상하게 시원한 바람이 분다. 한 발자국 차이인데 나무그늘과 그늘 밖은 다른 세상이다. 기분도 함께 상쾌해진다.

하지만 이것은 그냥 상쾌한 느낌적인 느낌만은 아니다. 필자의 학생시절, 생물학실험 중 작은 화분을 가져와 각 부분의 온도를 기록하고 비교하는 시간이 있었다. 어른 한 뼘 정도의 작은 식물이었는데 온도를 재는 부위마다 미세한 차이가 났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을 보면 간단한 온도 재기 실험이 필자에게는 마법처럼 느껴졌나 보다.
 

텃밭에서 열무 씨를 뿌리고 있는 아이 ⓒ 바른지역언론연대


작은 생명에서도 차이가 나는데, 하물며 큰 가로수의 가지와 줄기를 타고 흐르는 공기의 흐름은 얼마나 크고 대단한지. 아름드리나무 밑둥치에 땅과 접한 부분의 공기가 큰 줄기를 타고 옆으로 뻗은 가지를 따라 가지와 가지 사이를 흐르다가 나무꼭대기까지 가는 상상을 해봤다. 가로수가 '쫘-악' 늘어선 곳에서는 나뭇잎이 무성한 가지 사이로 시원한 공기가 원을 그리면서 아래로 순환하는 큰 그림도 그려봤다. 그저 심어놓았을 뿐인데,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마법과 같은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모든 것에 감사하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작은 풀밭을 만났다. 토끼풀이 방석 모양으로 여기저기 퍼져있었다. 이미 꽃이 피고 많이 지는 즈음인데도 여기저기 꿀벌이 날아다녔다. 아이는 벌에 쏘일까 걱정하더니 금세 네잎 클로버를 찾는 데 집중했다. 집안에서는 "심심해, 심심해"를 외치던 아이가 아무것도 아닌 네잎 클로버 찾기를 흥미로워하는 것을 보고 작은 풀밭조차 우리에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 한낮 텃밭은 조용했다. 아무도 이렇게 더운 시간에 텃밭에서 일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텃밭을 둘러보러 왔으니 최적일 수도 있었다. 하지가 지나 장마가 지기 전에 감자를 캐고, 열무를 심었다. 벌써 싹이 올라오는 것이 앙증맞았다. 열무가 조금 자리를 잡으면 그때 너희도 빛을 볼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마음을 먹으며, 열무 싹보다 크게 올라온 갈퀴덩굴의 새싹을 모두 뽑았다.
 

그늘에 덮여 있는 가로수길 ⓒ 바른지역언론연대


아이는 이제 슬슬 텃밭에서 뭔가를 했을 때 느끼는 기쁨을 알아가는 것 같다. 그것이 생명을 다루는 일이어서인지, 수확의 기쁨 때문인지, 아니면 날아다니는 나비들이 좋아서인지는 궁금하지 않다. 자연과 함께 있을 때 아이가 기쁜 것이 부모인 필자에게 더 큰 기쁨이다.


아이를 기르는 것과 식물을 키우는 일은 참으로 비슷하다. 모두 부모를 성장하게 한다. '옥수수를 조금 있으면 먹을 수 있겠다'고 즐거운 생각을 하며,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원래 가는 길보다 돌아오는 길이 더 짧은 법이다. 갈 때 지나갔던 시원한 그 가로수 길을 다시 지나왔다. 다음에 아이와 함께 텃밭에 가고 오는 즐거운 시간이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홍은전 생태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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