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이 맞고 왔다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다고?

등록 2020.07.09 15:06수정 2020.07.09 15:1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상준

   

ⓒ 이상준

   

ⓒ 이상준

   

ⓒ 이상준

   

ⓒ 이상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왕따'라는 단어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름답기만 한 학창시절을 보낸 건 아니다. 그때도 학교에는 1캡, 2캡(지금으로 치면 짱? 통? 일진?)으로 불리는 싸움 잘하는 아이들이 학교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싸움을 하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키가 전교에서 가장 큰 사람 10명 안에는 들었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10캡, 15캡 안에는 들어가는 정도였다.

내가 15캡 안에 들어가는 순위라고 해서 학교폭력이 나를 피해간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학교에서 전교 3캡이었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 녀석(그 XX라고 하고 싶지만…)이 나를 그렇게 때리고 괴롭혔다. 정말로 나는 그 녀석에게 매일 한 번씩은 맞았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맞으면서도 한번 대들지 못하고 그냥 빨리 이 순간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비굴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30년도 넘는 오래 전 이야기지만 지금 그 녀석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매일 맞으면서 나는 선생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해봐야 돌아오는 말은 '친구들끼리 싸울 수도 있지', '그 덩치에 쪽팔리게 맞고 다니냐?' 라는 말뿐이었을 테니까.

그때의 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다. 맞은 걸 어른들한테 이야기하면 어른들은 그 정도도 해결 못하고 일러 받치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친구들은 고자질쟁이라면 손가락질하던 시절 이었다.

결국 그 어린 시절 철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딘가 분풀이를 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나보다 약한 아이들 중 까불거리는 아이 하나를 잡아서 학교 뒤로 끌고 갔다. 그 아이는 웃으면서 나한테 왜 이러냐고 이야기하며 어떻게든 피해가려 했지만 난 내가 당한 것처럼 그 아이의 배를 주먹으로 힘껏 쳤다. 웃던 그 아이는 배를 움켜쥐고 그 자리에 주저앉은 후에도 내가 더 때릴까 두려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웃으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이었다.

내가 그 녀석에게 맞아서 아팠던 기억보다 그 아이의 배를 때렸을 때, 뭐라 말할 수 없는 나쁜 느낌이 더 기억에 남는다. 내가 누군가를 때렸다는 그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내 주먹에 닿았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각나서 나를 힘들게 한다.

그 다음 날, 나는 그 아이에게 사과를 한답시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쭈쭈바를 하나 사줬다. 하지만 아직도 후회가 되는 건 결국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제대로 사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때가 1987년이었다. 지금은 2020년, 과연 학교는 변했을까?

내 딸이 다니는 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없는 그런 작은 학교다. 그래서 방과후와 돌봄교실은 두 학년씩 묶어서 진행한다. 그곳에서 우리 딸이 한 학년 위의 오빠한테 배를 몇 번이나 걷어차이고 왔다.

동네가 작다 보니 딸을 때린 그 오빠도 잘 아는 집의 아들이다.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될 수도 있기에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딸을 때리긴 했지만 그 아이가 밉다거나 혼내주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었다. 그냥 폭력은 어떤 경우에라도 휘둘러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 아이 엄마는 당연히 우리에게 미안해했고 사과도 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대처가 오히려 나를 화나게 하고 있었다.

딸이 맞은 걸 보고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어른에게 가서 이야기를 했고 그 어른은 자기가 지켜줄 테니 오빠가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고 한다. 딸은 무서워서 싫다고 했지만 그 어른이 잘 설득해서 데리고 갔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 맞는 걸 본 것도 아니고 딸이 얼마나 무서워했을지도 몰랐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어른은 그 일을 다른 책임 있는 선생님이나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딸과 대화가 없는 아빠였다면 내 딸이 그렇게 맞았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 어른의 생각은 그랬겠지.

'아이들이니깐 서로 싸울 수도 있고, 때릴 수도 있지~ 우리 때도 그랬잖아 그래도 지금 잘 살잖아~'

우리 때도 그랬으니 지금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무지한 생각인가. 내가 그 녀석에게 맞았던 건 국민학교 6학년인 1987년이었다. 그때는 군사독재가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6월민주항쟁을 통해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 시대를 살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어떤 군인이 탱크를 몰고 서울을 점령하면 누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할까?

이 세상에 그 어떤 이유로도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거나 신체를 구속하는 일은 벌어져선 안된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발전하는 인간이라면 우리 아이들이 1987년의 우리처럼 살게 하지는 말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AD

AD

인기기사

  1. 1 다시 싸움 시작하는 변희수 전 하사... 이젠 법정투쟁
  2. 2 "배신감 느꼈다" 문재인 정부에 사표낸 교수의 호소
  3. 3 유명한 베를린 한식당에 혐오 문구가 걸린 이유
  4. 4 20년 내 일자리 47% 사라진다? 빌 게이츠의 이유 있는 호소
  5. 5 8000원짜리 와인을 먹고 나서 벌어진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