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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기사 300개 쏟아낸 한 언론... 지금 장사하십니까?

[주장] 오보와 낚시성 기사로 도배된 한국 언론의 맨얼굴

등록 2020.07.10 17:28수정 2020.07.1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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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 관련, 밤사이 300개 기사를 쏟아낸 한 민영통신사. ⓒ 네이버 화면 캡처

 
"박원순 서울시장 생사 관련 '아님 말고' 기사 남발 후 삭제하는 언론사들".

9일 오후 7시 21분, 한 민영통신사가 포털에 송고한 기사 제목은 이랬다. 이 매체는 해당 시각 박원순 서울시장의 신변과 관련한 추측성 보도를 포털에 송고한 몇몇 매체의 기사 제목을 캡처한 사진을 게재한 뒤, "경찰은 아직 신원파악중이라고 알렸음에도 사망설 등 근거 없는 기사들이 네이버 포털에 남발중이지만 클릭해보면 삭제된 기사로 뜨고 있다"는 짤막한 해설을 기사화했다.

이게, 기사의 전부였다. 이 매체는 앞선 오후 6시 18분 <(속보) '박원순 서울시장 실종"…딸이 경찰에 신고, 경찰 수색중>이란 1보를 내보낸 이후 박 시장 관련 기사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대부분이 앞서 소개한대로 사진 한 장과 몇 줄 설명이 전부인 '사진뉴스' 형식이었다.

이후 박 시장의 유언장이 공개된 10일 정오까지, 이 매체는 무려 300여 건의 기사를 네이버 등 포털에 출고했다. 적게 잡아 시간 당 16건 꼴이다.

심지어 경찰이 박 시장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시장 박원순 실종 후 7시간 만에 시신 발견!!>과 같이 기사 제목에 '느낌표'까지 다는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행태까지 보였다. 조악한 사진을 첨부한 채 마치 중계하듯 경찰 수색 상황을 전하던 이 매체는 '시신 발견'과 유사한 제목으로만 20건에 가까운 기사를 토해냈다.

다른 매체도 상황은 비슷했다. <한국경제> 역시 '박 시장 실종' 1보 이후 10일 정오 까지 200건에 가까운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아무리 '사진 뉴스'가 포함된 숫자라지만, 이 같은 보도행태가 자사의 조회수 장사 이외에 어떤 공익성을 담보하는지 의문이다.

과도한 기사 양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극적인 기사 제목은 기본이요,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가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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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박원순 시장 수색 작업이 한창이던 9일 오후 7시쯤 <월간조선> 등 일부 언론은 박 시장 시신을 발견했다는 오보를 내보냈다, 경찰이 부인하자 기사를 삭제했다. ⓒ 네이버 갈무리

 
시간당 16개 기사 내보낸 매체, 오보 쏟아낸 매체


심지어 일부 매체는 '박원순 시장 사망'이 확인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공식화하는 오보도 서슴지 않았다. 이어서 반박하는 다른 매체의 '속보'가 실시간으로 포털에 도배됐고, 이후 '오보'를 낸 매체들이 기사가 삭제하는 촌극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월간조선>이었다.

<월간조선>이 '속보'를 달고 <[속보] 박원순 시장 시신 발견, 성균관대 부근에서 발견>이란 기사를 포털에 송고한 것은 이날 오후 6시 40분을 넘어선 시각. 이후 복수의 군소매체가 이를 '받아쓰기'했고, 경찰이 공식 발표를 통해 이를 부인하자 차례로 기사가 삭제되는 웃지 못 할 풍경이 이어졌다.

그런 풍경은 이날 저녁 서울대병원 앞에서도 펼쳐졌다. 경찰이 수색에 매진하던 와중임에도, 서울대병원 앞엔 취재진이 장사진을 이루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박 시장의 사망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 박 시장이 사망한 것으로 밝혀진 이후 일종의 '그림'을 확보하기 위한 언론의 취재경쟁이라 이해하기엔 이러한 신속한 대응은 과하다 여겨질 만했다.

이런 보도행태는 박 시장의 시신이 발견된 이날 자정을 넘어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사망 오보'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클릭'과 '낚시'를 위한 속보와 사진뉴스들이 넘쳐났다. 추측성 보도와 선정적인 기사들이 서로서로 경쟁하는 꼴이었다.

또다시 확인된 언론의 맨얼굴

"유명인 자살보도를 할 때 이 기준은 더욱 엄격하게 준수해야 합니다."

2018년 8월 보건복지부와 한국기자협회 등이 발표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에는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합니다"란 5가지 기본 원칙 외에 이런 권고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종 신고 이후 불과 몇 시간 만에 쏟아진 박 시장 사망 오보와 실종·자살 관련 보도들은 적지 않은 매체들에게 이런 권고기준이 여전히 유명무실함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서울시 측은 "고인과 유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추측성 보도는 자제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박 시장의 성추행 피고소 사실과 보도된 혐의 내용, 이를 감안한 듯한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은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에 충분해 보인다. 추가적으로 성추행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박 시장의 혐의나 극단적인 선택과 채 하루도 지나기 전에 300건을 쏟아내는, '사망 오보'가 꼬리를 무는 비상식적인 보도행태는 별개의 문제다.

이날 박 시장 실종 전후를 둘러싼 일부 매체의 보도행태는 악화가 더 큰 악화로 자가증식하는 이 시대 언론환경의 맨얼굴을 재확인시켜 줬다. 한국 언론의 또 다른 흑역사다.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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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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