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의 죽음과 한국인의 성

등록 2020.07.12 14:38수정 2020.07.1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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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은 대표적인 진보적 사회운동가요 정치인으로서 이 땅에 민주주의, 자연환경의 중요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철학 등을 실천한 인물이다. 진보진영을 하나의 몸으로 묶는다면 그의 죽음은 몸의 일부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는 상실감에 젖게 된다.

2020년 7월 9일자 뉴욕타임지에 의하면 "그의 자살이 성적(性的)으로 위법한 행위와 연관될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그것은 그가 정치적 스타일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동안 여성 인권의 옹호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위치는 남성이 대부분의 고위직을 차지함으로써 여성들이 성적 학대에 노출되고 희생자들에게 침묵이 강요되는 위계적 코드의 사회에서 더욱 돋보였다"고 한다.

만약 박 시장의 죽음이 성추문 의혹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여성의 인권과 성적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일해 온 그가 바로 그 성적 가치관에서 무너지는 자가당착을 보인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죽음이 지금이 끝이 아닐 것이라는 불갈한 예감이 든다는 데 있다.

이내 안희정 충남지사와 오거돈 부산시장의 성범죄, 지금 한창 수사가 진행중인 트라애슬론 최숙현 선수의 자살, n번방 사건,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를 미국으로 송환하지 않는 데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 등 일련의 사건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정녕 우리 사회는 성의 장벽을 넘지 못하는 것일까?

같은 날짜 2020년 7월 9일자 뉴욕타임지의 다른 기사는 이렇게 서술했다. 

"최숙현 선수는 자신이 받은 폭력과 성적 학대로 인해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고 편집증(paranoia)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자책하곤 했다. 이 사건은 여성 체육인들이 코치와 팀닥터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성적 학대상황을 고발하는 세계적인 흐름 속에 있다. 미국에서도 래리 나사르라는 의사가 선수들을 검사한다는 명목으로 올림픽 여성 선수들 수십명을 추행해 최고17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례가 있을 정도다."

그럼 성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단언컨대 첫째, 성교육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성을 은폐시키는 것으로서 성의 추함과 아름다움의 기준, 성 욕망을 다스리는 방법, 피임방법, 성적 정체성을 찾고 표현하고 존중하는 방법 등 성적 가치관을 풍요롭게 열어놓고 성장시키는 문화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시 학생들에게 성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으로 문제가 확대된다.


최근에 전남 담양의 남여공학 고교에서 한 교사가 성교육의 일환으로 '콘돔 끼우기'를 시연하려다 학부모 항의에 의해 취소된 사건이 있었다(관련 기사: 2020.7.6 연합뉴스). 물론 영상으로 보여주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학습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서였다. 학생들에게 조별로 바나나를 한 개씩 준비시킨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데 이 문제는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육권 즉 교권의 영역의 문제이기 때문에 학부모는 기다릴 수 있어야 했다.  

독일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애니메이션으로 어른의 성행위를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교육하고 있다. 출생의 비밀을 진실되게 알려주면서 불필요한 성적 상상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성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탐색이 가능해지지 않겠는가? 자아와 이성의 긍정적 정체성 확립에서 성은 핵심적인 요인이다.

학부모들이 콘돔시연을 반대한 이유가 호기심을 키워 성행위를 할까봐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자녀의 성적 호기심을 받아주고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과 금기 속에 묶어둠으로써 더 큰 성적 일탈을 조장하는 것이다.

성에 대해 폐쇄적이면 흔한 일은 아니지만 프랑스 부모가 야영을 떠나는 딸의 가방에 콘돔을 넣어주는 경우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어느 나라에서 낙태와 미혼모 발생이 많을지는 통계자료를 굳이 찾지 않아도 될 것이다.

부모도 포괄적으로 성교육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개방적으로 성을 인식하는 것에 낯설다. 일전에 한 중학교 도덕교사가 양성평등을 주제로 담고있는 프랑스 독립영화 <억압받는 다수>를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가 일부 학부모에 의해 고발되고 직위해제되었다. 이 또한 금기중심의 성문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는 성적향상만이 자녀가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성적 지상주의, 이를 조장하는 직업 및 학력차별과 같은 사회적 모순이 가세한다.  

한편 이런 모순이 포진하고 있을지라도 해당학교 교장이 민주적으로 선출, 공모된 관리자였다면 민원에 조건없이 따르기 보다 학부모와 논의하고 교육효과에 대해 알리며 교사의 기를 살려줄 수도 있었다. 점수 따서 교장으로 승진하는 우리 교육계의 오랜 폐단이 또 문제를 가중시킬 수 있다.

둘째, 한국사회가 다분히 권력지향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이 집중되는 것도 문제거니와 권력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왜곡되어 있다. 철학자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R.J. Hollingdale 번역의 영문판)의 '숭고한 자들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근육을 이완시키고 마구(馬具)처럼 몸에 걸친 의지를 풀고 서 있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것이다. 권력이 자비로와져서 가시적(可視的)인 것으로 내려올 때 나는 이를 아룸다움이라고 부른다."

즉 권력자가 스스로 낮추고 약자를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할 때 그 권력은 아름답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것은 그 사회가 권력자에게 결정권을 몰아주고 이를 견제하는 관습적이고 세부적인 법적인 장치가 없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민주주의가 삶 속에서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로만 민주공화국이지 실제로는 삶 속에서 독선적인 행태가 흔히 발견되는 것이다.

여러 해 전 충북대 조태훈 전 교수가 신문 칼럼을 통해 '남이나 북이나 권력의 집중현상은 매 한가지다. 북한은 국가단위 1인에게, 남한은 사회의 작은 집단에 있는 다수의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고 지적했었다. 이 1인 권력에 명예와 부가 몰리면서 불평등의 정도는 가파르게 왜곡된다.

마지막으로, 수치심을 과하게 느끼게 하는 문화와 복지 안전망이 취약한 것이 성범죄를 부추긴다. 피해자가 위력에 의한 성추행을 발설하면 이내 피해자를 비하하는 전도된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다. 약자를 더욱 약하게 만드는 이상현상이다. 그리고 이것이 SNS를 타고 빠르게 확산된다. 이 역시 성문제 발생의 환경적 요인을 살피는 사려성이 부족한 모습이다.

반면, 박원순 시장이 고인이 된 지금 그를 추모하는 마음이야 크지만 이와 별도로 박 시장에게 아쉬운 부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변호사의 말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이은의 변호사는 "박 시장의 마지막 선택이 고소 사건과 관련이 있다면 그 선택은 박 시장이 졌어야 할 책임의 무게를 피해자의 어깨에 내려놓는 형국이 된다. 피해자는 앞으로도 사과를 받지 못하고, 피해에 대한 판단조차 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고 한다. (관련 기사 : 2020.7.10. 경향신문)

만일 성추행과 같은 상황에서 속히 이를 함께 인지하고 상담할 전문인력이 기다리고 있었다면, 또 피해자가 현 직업을 포기하고 재취업과 전직을 할 수 있는 길이 좀더 충분히 열려있다면 이런 비극들은 빈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 직업을 벗어나 어떤 일을 하던 재취업 인프라가 갖춰지고 재취업까지 이전 월급에 준하는 실업수당이 주어진다면, 또 비정규직의 비율이 적고 계약직일지라도 보험혜택이 주어지는 등 안전망이 갖춰져 있다면 성 관련 인권이 위기에 처한 상황을 벗어날 용기가 한층 발휘되기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보통 실업수당이 있어도 6개월이면 끝이다. 그러나 스웨덴 등과 같은 선진국의 실업수당은 우리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록 길고도 충분히 주어진다. 성문제와 직접 관련은 적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사실상 실업상태에 놓은 캐나다의 사례를 본다. '캐나다교육이야기'를 저술하기도 했던 박진동 저자는 평소 캐나다에서 관광업에 종사고 있는데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캐나다에 관광객이 전혀 없습니다. 외국과 차단된 것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주 사이의 이동이 꼭 필요한 일 이외에는 안되거든요. 저는 일이 완전히 없습니다. 대신 정부에서 월 2천불씩 6개월 주는 것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 여기 재난지원금 주는 것을 보니까 입이 떡 벌어집니다. 이렇게 받아도 되는 건지··· 받는 사람이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캐나다 달러를 한화로 하면 176만여원이다. 이를 6개월씩이나 받는다.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듯이 성의 피해자로 인지되면 이내 상황을 조사하고 조치를 취하는 공공성 즉 공공행정의 기능이 취약하다는 것이 확인된다. 이는 공무원과 관료의 무능, 이 무능을 극복하는 정치역량의 부재가 문제인 것이다. '한국은 각자도생의 나라'라는 말은 국가의 실종상태를 의미한다.

다행히 폭력이나 성폭력 신고에 대해 지체 없이 피해자를 보호 조치하고, 즉시 조사에 착수하도록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 일명 최숙현법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필요한 일이지만 현실대응력에는 못미칠 것이다. 성폭력을 인지하고 1차적으로 상담하는 대응력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2020년 7월 9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렇게 쓴다.

"박 시장은 1천만 서울인구 중 코로나19 확진자를 1400명으로 묶어놓을 만큼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이는 미국 뉴욕의 830만 인구 중 확진자가 22만명인 점과 극적으로 대조된다. 따라서 박 시장의 죽음은 문재인 대통령으로 하여금 코로나 사태의 극복을 통해 한국이 세계의 화합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기회를 상실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끊이지 않는 성문제는 복합적인 사회모순의 산물이다. 그래서 불합리한 의식과 제도적 장치들이 한꺼번에 해소되기 어려운 속성 때문에 재발가능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으며 찾지 않는 것이 문제다. 우선 시민단체와 학교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의식개혁 운동 차원에서 개방적인 성교육을 시작하고 제도를 정비할 때다. 얼마나 더 죽어야 한단 말인가?
덧붙이는 글 프레시안에도 송고하였습니다.
#박원순 #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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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에 교육평론 45편 정도 기고했으며, 현재 인천교육청 공립 대안교육 자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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