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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의 죽음이 던지는 질문

그는 한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자신의 부대가 저지른 참혹한 범죄를

등록 2020.07.13 07:45수정 2020.07.13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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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선엽 장군 추모하는 시민들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고 백선엽 장군 시민분향소에서 추모객이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백선엽이 다시 논란이다. 지난 10일, 100세를 일기로 그가 죽자 군은 부고를 내고 육군장으로 장례를 치를 것이며 장지는 대전현충원이라고 밝혔다.

미래통합당은 논평에서 그를 대한민국을 지켜낸 전설이라 평가하며 민주당이 입장을 내놓지 않은 것과 관련해 "전설을 지우려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백 장군을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 모시지 못한다면 이게 나라인가"라고 물으며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 "식민지에서 태어난 청년이 만주군에 가서 일했던 짧은 기간을 '친일'로 몰아 백 장군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려는 좌파들의 준동"이라고까지 언급했다.

백선엽의 친일행각이야 이미 널리 알려진 바이고 본인도 인정한 사실을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나아가 좌파의 준동이라 말하는 인식의 일천함과 편향은 새삼 놀랍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미래통합당이 '전설'이라 칭하는 백선엽의 한국전쟁 당시의 범죄와 관련된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 기고글을 통해 한국전쟁 당시 백선엽이 지휘하던 부대가 저지른 민간인 학살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관련 기사 : 백선엽은 전쟁영웅? '쥐잡기작전'은 끔찍했다 http://omn.kr/1nsy2)

백선엽의 죽음을 계기로 그가 남긴 회고록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는 꽤 여러 권의 회고록을 남겼는데 <실록 지리산 - 백선엽 육필증언록>(1992, 고려원)에 자신이 지휘하던 부대가 민간인에게 피해를 준 몇 건의 사건과 관련한 내용이 나온다.

1951년 말, 미군 주도로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의 빨치산 토벌작전이 기획되고 그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에는 백선엽 본인의 이름을 딴 사령부가 차려진다. 이른바 '백선엽 야전사령부(백야사)'. 그는 임무를 받으며 "사령관의 성을 부대명에 넣는 것은 전례없던 일로 개인적 영광에 앞서 책임감이 어깨를 무겁게 눌렀다"고 적었다(17~18p).

4개 사단 규모의 토벌대는 지리산 일대를 포위하며 토벌작전을 진행했는데 작전명 '쥐잡기 작전(Operation Rat Killer)'에서 보여지듯 산 속의 모든 사람들을 빨치산으로 간주하고 죽이거나 무차별적으로 체포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참모들이 무리한 작전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고록의 내용을 보면 그 역시 자신의 부대가 체포한 사람들 중 민간인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빨치산은 다수의 비무장 병력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들이 무장게릴라화 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며 총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양민으로 볼 수는 없었다. 따라서 빨치산과 함께 있다 붙잡힌 사람들은 모두 수용소를 거친 다음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물론 각 부대간의 전과 경쟁 때문에 양민들이 빨치산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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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장군이 10일 오후 11시 4분께 별세했다. 향년 100세. 사진은 2013년 8월 경기도 파주 뉴멕시코 사격장에서 열린 백선엽 장군 미8군 명예사령관 임명식에서 미군 야전상의를 입은 뒤 경례하는 백 장군. ⓒ 연합뉴스


백선엽이 자신이 지휘하던 부대가 민간인에게 피해를 준 사실을 인지한 것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1949년 가을 5사단장 당시 광주에 주둔하며 공비토벌을 하던 중 백운산 지역에서 300호 정도의 마을이 불 타 잿더미가 된 것을 보고 사실을 확인해 본 결과 통비부락이라는 이유로 15연대가 저지른 것임을 알았다고 적고 있다(52~53p). 그는 이 일과 관련해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사단의 공금을 가져다 마을 재건에 지원했다고 부연했다.

전역 후 자신의 부대원이었던 사람의 제보를 통해 백야사 작전 과정에서 8사단 소속 부대가 백아산 인근의 마을주민들을 학살했으며 그중에는 노인과 애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들었다고 적었다. 또 뱀사골에서는 체포된 여자 빨치산을 여러 부대원들이 돌아가며 성폭행한 후 사살해버렸다는 사실을 들었다고도 적었다(76~78p).


백야사 토벌작전 과정에서 민간인의 피해는 작전과정에만 있지 않았다. 언급한대로 지리산 토벌작전 지역 내 민간인은 빨치산으로 간주되었고 남녀노소를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체포돼 광주포로수용소로 보내졌다. 그의 참모였던 공국진의 증언처럼 광주포로수용소에 보내진 수많은 사람들은 추위와 질병으로 죽어갔다. ("백선엽, 이 양반은 지리산 안은 모두가 적이다 이래서…", 미디어오늘 2011년 6월 29일자 보도)

백선엽은 회고록 곳곳에서 자신의 부대원들에게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 것을 누누이 강조했으며 그 이유로 "일제 말기 만군에 몸 담았던 시절에 '죽이지 말라, 태우지 말라, 능욕하지 말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 게릴라 토벌은 민심을 얻어야만 성공한다는 점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52p).

'6⸳25 전쟁 영웅' - 백선엽의 죽음을 다룬 많은 기사에서 붙인 미사여구다. '지혜롭고 재능이 뛰어나며 용맹한 사람', 국어사전에서 영웅을 규정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진정으로 사과하고 책임질 수 있는 용기'를 추가할 순 없을까. 그의 회고록을 읽으며 그걸 찾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지휘했던 부대의 잘못을 언급하면서도 그는 본인 스스로의 참회와 책임에는 인색했다. 전역 후에도 그는 자신의 부대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피해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았으며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오히려 백야사 회고의 말미에는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다"고 적었다.

백선엽은 죽었다. 죽었다고 모든 것이 미화되진 않는다. 잘한 것과 잘 못한 것은 구별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린 삶과 역사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 전쟁영웅이라 불리는 한 사람의 죽음이 던지는 질문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박석진님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
#백선엽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현충원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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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제언'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Civilian Military Watch)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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