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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 의지의 삼나무다

치유의 숲길을 지나 올라간 제주 시오름

등록 2020.07.13 16:25수정 2020.07.1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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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토요일, 금오름나그네가 시오름에 올라갔다. 금요일에 비가 온다고 예보해서 토요일로 미뤘는데, 예보와 달리 금요일은 하루종일 날씨가 좋았다. 오히려 토요일 오전은 날씨가 흐렸다. 장마철에는 예보가 어려울 정도로 날씨가 시시각각 변한다.


가시리 수퍼가게 앞에서 오후 2시에 8명 중 7명이 모였다. 시오름은 서귀포쪽 한라산 자락에 있다. '치유의 숲'을 거쳐야만 올라갈 수 있다. 119번 서성로를 거쳐 115번 도로를 타고 가면 서귀포 윗쪽에 '치유의 숲' 들어가는 길이 나타난다. 오후 2시 반경 도착했다.
 

치유의숲 안내지도 치유의 숲 윗쪽에 시오름이 있다. 너무나 다양한 숲길을 가지고 있다. ⓒ 신병철

 
주차장도 좋다. 그런데, 큰 일이다. 예약해야 들어갈 수 있단다. 다행히 오전에 예약을 취소한 사람들이 있어서 입장시켜주겠단다. 경로대상 아닌 3명만 입장료를 1000원씩 냈다. 안내자가 치유의 숲에 대하여 설명해준다. 시오름은 치유의 숲길 가장 꼭대기에 있다. 일단 우리가 갈 길을 정하고 출발한다. 

가운데에 넒은 가멍오멍숲길이 있다. 차도 다닐 수 있다. 가멍숲길은 올라가는 길이고 오멍숲길은 내려가는 길이다. 넓은 가멍오멍숲길 좌우 숲속에 야자수 깔개가 깔려 있는 길이다. 일렬로 아무 말 없이 올라간다. 특이한 모양의 삼나무가 보인다.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의 가지가 줄기가 된 나무다. 고난 극복이 느껴진다.
 

치유의숲길의 괴목 험상궂은 덩어리가 붙은 나무 줄기 ⓒ 신병철

 
더 올라간다. 길가에 또 이상한 모습의 나무가 있다. 혹이 두 개다. 한 사람이 "어, 두 사람이 끌어안고 있네" 하고 지나간다. 뛰따르던 또 한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한다. 나는 아무리 봐도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겨우 그렇게 보이는 구석을 발견하고는 억지로 공감한다.
 

나무의자 치유의숲길에 있는 나무 줄기로 만든 의자 ⓒ 신병철

 
상당히 올라갔다. 오고생이치유의숲길로 들어섰다. 제주말 '오고생이'는 '있는 그대로'란 뜻이란다. 위로 고압선이 지나간다. 나무 꼭대기를 잘라버렸다. 길가에 자라던 큰 나무도 길을 만들기 위해 잘라냈다. 남은 밑둥으로 의자를 만들었다. 투박하지만 멋있다. 모두 한 번씩 앉아 본다.

드디어 힐링센터 부근까지 올랐다. 편백나무숲 아래 여러 가지 힐링할 수 있는 시설들이 있었다. 코로나 이후로 멈춘 것 같았다. 과일 몇 개 나눠 먹으며 쉰다. 숲 속에서 과일 먹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 만큼 큰 힐링 방법이 있을까? 

까마귀 한 마리가 나무 위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누군가 까마귀소리 흉내를 낸다. "까아악..." 또 누군가 "아아악..." "뭐가 더 정확할까요?" 순간 우리의 이야기는 의성어로 넘어갔다.

"엉어로 닭울음 소리를 '코카두들두(cockadoodledoo)'로 표현한 걸 보고 엄청 웃은 적이 있는데, 요즘 닭을 키우면서 닭울음 소리를 들으니 그것도 맞는 것 같아요."
"코카두들두우우....가 뭐야, '꼬끼오~ 꼬'가 맞지."


우리는 모두 '코카'와 '꼬끼오'를 소리내어 본다. 그리고 꼬끼오가 맞다고 서둘러 합의해 버린다. 이젠 가멍길을 버리고 산도록치유숲길을 따라 올라간다. 제주말 '산도록'은 '시원한'의 뜻이다. 냇가가 옆에서 졸졸졸졸 소리를 내며 따라 오고 있다. 제주에서 듣기 힘든 시냇물 소리라 반가워하며 가만 둔다.
 

시오름 올라가는 길 삼나무로 빽빽한 시오름 올라가는 길 ⓒ 신병철

 
곧 시오름 이정표가 나타났다. 삼나무가 빽빽하다. 나무 계단을 틈틈이 놓았고, 사이에는 야자수 깔개를 깔았다. 아껴둔 힘을 이젠 쏟아도 될 때가 되었다. 200미터 남았다고 했는데, 쉽지 않다. 힘이 들 때는 거리가 멀어진다. 아무리 그래도 정상은 나타나게 마련이다.

거의 다 올라왔다. 하늘이 반쯤 보이기 시작했다. 모퉁이에 바위 거북이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머리를 아래로 틀고 기어 내려가려 하고 있다. 시오름에 우리 보다 먼저 왔다가 내려가려나 보다. 살짝 길을 비켜준다.
 

시오름 정상 한라산이 훤히 보이는 시오름 정상 ⓒ 신병철

 
시오름은 숫오름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한자로 웅악(雄岳)이라고 했단다. 한라산이 저 멀리 보인다. 해발 757.8m로 상당히 높으나, 비고는 118m로 별로 높지 않다. 정상은 아주 좁다. 한 그루 나무가 지키고 있다. 별로 크지 않은 나무이지만, 뿌리가 대단하다. 바람에 뽑히지 않으려고 사방으로 길게 뿌리를 뻗었다.  

두런두런 끼리끼리 이야기가 굴러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이어간다. 무슨 이야기였는지 아무 기억이 없어도 이야기는 끝이 없다. 길만 끝이 없는 게 아니다.

시오름 정상에서 한라산이 훤히 보인다. 한라산이 잘 보이라고 한라산 쪽 나무들을 좀 잘라냈다. 한라산 정상을 구름이 막고 있더니 내려가려고 하니 싹 걷혔다. 예의있는 구름이다. 한라산까지 숲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도 상당히 넓다고 우리는 입을 모은다. 역시 한라산은 보는 곳에 따라 너무 다르다.

좁은 정상을 우리들이 접수했다. 다들 치유의 숲 길이 너무도 환상적이란다. 이런 공원이 있어 제주에 사는 게 너무 좋단다. 누군가 뉴욕의 센터럴파크보다 더 좋단다. 거긴 넓기만 하지 이렇게 숲과 다양한 길이 많지 않단다. 반대쪽에서 한 팀이 올라왔다. 방 빼 주고 우린 내려간다.

먼저 놀멍치유숲길로 갔다가 이어 엄부랑치유숲길을 거쳐 오멍숲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갔다. 엄부랑치유숲길에는 엄청나게 큰 나무들이 많다. '엄부랑'은 '엄청난'의 제주말이다. 과거에 이곳에 화전민들이 살았단다. 담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아마도 집터였던 것 것 같다.

화전민이 떠나고 나무들이 자랐다. 올라올 때 보았던 고난의 나무가 또 있다. 더 크다. 삼나무가 제법 자랐다. 태풍이 불어 쓰러지고 말았다. 줄기가 누우니 가지들이 수직으로 섰다. 그 가지들이 줄기인 양 자랐다. 가장 크게 자란 줄기 아래로 뿌리가 내렸다. 한 나무에 줄기가 7개나 되는 이상한 나무가 되었다. 칠형제나무라 불린다. 정말 의지의 삼나무다.
 

칠형제나무 삼나무 가지가 줄기가 되어 생긴 칠형제나무 ⓒ 신병철

 
70대 나그네들이 신기한 나무를 열심히 관찰한다.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쓰러지기 전의 뿌리를 찾고, 새로운 뿌리도 찾아내어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변화에 적응해 간 삼나무의 고난에 찬 삶을 높이 산다.

어린이처럼 나이든 나그네들이 해찰이 심하다. 조금만 신기한 게 있어도 요리조리 뜯어 본다. 서로 궁금증을 말하고 추측하고 정리해서 풀어나간다. 빨리 내려가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지체되었다. 아래 주차장에서 전화가 왔다. 오후 6시에 주차장을 마감하고 문을 닫는단다. 부리나케 내려갔다. 다행히 오후 6시 직전이었다.  

오늘은 멋진 숲길을 걸었으니, 표선으로 가서 옛날 맛을 간직하고 있는 어촌식당에서 자리돔을 먹기로 했다. 제주에 와서 산 지 수 년이 지났어도 자리돔회는 처음 먹어 본 나그네가 그 맛에 감탄한다.

멀지 않은 치유의 숲길에 처음 가보고 우리 모두는 반했다. 항상 가까이 있으면서도 처음 먹어 본 자리돔회를 먹어보고 또 반했다. 반하는 일이 두 번이나 있는 오늘은 정말 보람찬 하루였다.
#시오름 #치유의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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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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