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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국장 맡아 고군분투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 / 8회] 조선에서 일본이 이익을 갈취하려 하자, 이시영은 이와 같은 작태를 용납할 수 없었다

등록 2020.07.15 17:35수정 2020.07.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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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오적(왼쪽부터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의 모습(대구 조양회관 전시 사진) ⓒ 조양회관

 
이시영은 37세에 외부 교섭국장에 임명되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몇 달 전이다.

외부대신은 을사오적이 된 박제순(朴齊純)이었다. 1883년(고종 20)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중국 톈진에 종사관으로 파견되었다가 귀국, 이조참의ㆍ참판ㆍ한성부윤 등을 역임했다. 이어서 중추원 의관ㆍ외부협판 등을 거쳐 1905년 외부 대신이 된 인물이다. 1858년 생이어서 이시영보다 11년 연상이다.

외부에서 당장의 현안은 일본과 영국이 맺은 영일동맹의 문제였다. 러시아의 동진을 견제한다는 이유로 두 나라는 1902년 동맹을 맺고 영국은 중국에 있어서, 일본은 조선에 있어서 이익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미국과 일본의 '가쓰라ㆍ태프트밀약'의 일본과 영국판이다. 1905년에 영ㆍ일 두 나라는 다시 공수동맹을 맺고 조선에서 일본이 이익을 갈취하러 들었다.

이시영은 이와 같은 작태를 용납할 수 없었다.

조선은 영국과 척진 일이 없었다. 오히려 영국 동양함대가 1885년 (고종 22) 4월 13일 군함 6척, 상선 2척으로 갑자기 전라도의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다. 러시아의 세력을 견제한다는 생뚱한 이유였다. 조선정부는 영국 부영사와 청국주재 영국 대리공사에게 항의하는 한편 엄세영과 독일출신의 외교고문 묄렌도르프를 일본에 파견, 교섭케했다. 또 러시아가 청국에 사건중재를 하여 2년여 만인 1887년 2월 영국함대가 거문도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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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조선에서 벼슬을 한 뮐렌도르프(한국식 이름으로는 목인덕).

 
이시영은 외부대신 박제순과 상의하고 영국 공사를 불러 영국정부의 행위를 논박하는 문서를 전달하고, 영국 공사는 이 문서를 본국으로 발송하였다.

"우리 나라가 귀국에 대해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고, 더구나 양국이 우호 협조하자는 조약까지 체결했다. 차제에 동양평화를 파괴하고 한영조약에 위배되는 모든 성명은 곧 취소하기 바란다."

영국 공사는 중국어에 능통하고 박제순도 중국어를 잘하였으므로 의사소통이 잘 되었다. 수일이 지나자 영국 공사가 외부에 찾아와서 사과의 말을 하고는, 귀국의 공문은 곧 본국에 전보로 전달하였으며 회답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설명하였다.

일본인 누마노는 이런 내용을 알지 못하고 있었으나 어느 신문에, 한국 외부에서 모종의 비밀 공문이 영국으로 갔다는 의문의 기사가 게재되자 외교계에는 이상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하였다. 여하튼 자기들에게 불리한 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한 일본인들은, 그 후로 선생을 크게 주목하게 되었다. (주석 5)


당시 대신 박제순을 비롯하여 외부의 간부들은 주변국들의 강약에 따라 자신의 거취나 이권에 눈이 멀어 기울어가는 국운을 붙들려하지 않았다. 이시영이 영국정부를 질타하는 비밀문서를 보낸 사실이 국내 신문에 보도되면서 일본 영사관에서는 이때부터 그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태프트(좌) 전 미국 전쟁부 장관과 가쓰라(우) 전 일본 총리대신. ⓒ 데니스 하트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두 대륙국가를 제압하고, 영일동맹과 가쓰라ㆍ테프트밀약을 통해 영국과 미국 두 해양국가를 동맹으로 엮은 일본은 궁극의 목표인 대한제국을 먹어삼키고자 본색을 드러냈다. 일본 메이지 정부는 1905년 10월 27일 각의에서 이른바 「한국보호권 확립실행에 관한 각의 결정의 건」을 의결했다. 고무라 외상이 만든 문건을 내각에서 그대로 채택한 것이다. 조선을 병탄시키는, 일본 정부의 최초의 공식문건인 셈이다.

조선에 대한 우리의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은 이미 조정에서 결정된 바이지만 그 실행은 지금이 바로 최선의 시기라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의 결정에 대해 영미 양국이 이미 동의했을 뿐 아니라 그 외의 국가들도 역시 한일 양국의 특수한 관계와 전쟁의 결과를 감안해서 최근에 발표된 영일동맹과 러일강화조약의 명문에 비추어 조선이 일본의 보호국으로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임을 묵인하여…따라서 다음과 같은 방법과 순서에 의해 차제에 이를 결행함으로써 우리의 소망을 관철할 것임.

1. 대략 별지와 같은 내용의 조약을 조선 정부와 체결하고 그 나라의 외교 관계를 전부 우리 수중에 넣을 것.

2.그 조약이 성립됐을 때에는 발표 이전에 영ㆍ미는 물론 독ㆍ불 정부에도 내밀히 통첩할 것. 발표와 동시에 세상에 대해 하나의 선언을 하되 제국이 조선에 대해 보호권을 확립하기에 이른 이유를 말하고 아울러 조선과 열국과의 조약을 그대로 유지하고 조선에 있어서 열국의 상공업상의 이익은 이를 상해치 않겠다는 뜻을 천명할 것.

3. 실행의 시기는 11월 초순으로 할 것.

4. 조약 체결의 전권을 하야시 곤스케 공사에게 위임할 것.

5. 특히 척사를 파견해서 조선 황제에게 친서를 보낼 것.

6. 조선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에게 하야시 공사에게 필요한 원조를 제공하여 본건의 만족한 성공을 기해야 한다는 뜻의 명령을 내릴 것.

7. 경성 주둔을 목적으로 수송 중인 제국 군대를 가급적 본건 착수 이전에 모두 입경토록 할 것.

8. 착수한 다음, 도저히 조선 정부의 동의를 얻을 희망이 없을 때는 최후의 수단을 써서 일방적으로 조선에 대해서는 보호권이 확립됐음을 통고하고, 열국에 대해서는 제국 정부가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아울러 조선과 열국과의 조약을 유지하고 조선에 있어서 열국의 상공업상의 이익은 이를 상해치 않는다는 뜻을 선언할 것. (주석 6)


주석
5> 박창화, 앞의 책, 29쪽.
6> 김삼웅,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 27~28쪽, 시대의 창, 1905.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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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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