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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인은 박 시장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取중眞담] 극단의 현장에서 만난 교훈, 애도와 연대는 만날 수 있다

등록 2020.07.14 07:11수정 2020.07.14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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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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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엄수된 1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고인의 넋을 기리며 분향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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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운구행렬이 1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영결식을 마친 뒤 추모공원으로 출발하기 위해 이동하자, 고인의 마지막 떠나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13일 오전과 오후, 극단의 현장에 있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진행된 이날, 이른 오전부터 서울광장 인근은 조문객으로 붐볐다. 이들은 서울시청을 오간 박 시장의 영정을 바라보며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오후엔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으로 이동했다. 박 시장을 고소한 서울시 직원 측이 기자회견을 통해 고소 후 처음 입을 열어 "피해 사실"을 알렸다.

아침부터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서울광장 분향소에 깊이 고개 숙인 조문객들이 차례차례 방명록에 글은 남겼다. 몸을 돌려 우산을 막 펴든 이들에게 다가갔다. 조의를 표한 이에게 심정을 묻는 일은 굳이 기자가 아니라면 하지 않을,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어렵고 고통스런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픈 이의 심연을 물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에게서 어떤 언어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눈시울이 불거진 조문객의 입에서 '행여 고소인을 비난하는 말이 나오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기우였다. 박 시장을 애도한 이들은 추모 그 자체에 집중했다. 박 시장이 이뤘던 일들을 거론할 뿐, 고소인을 깎아내리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SNS에서 거침없이 벌어지고 있는 피해자 신상털이와 같은 언급은 당연히 들을 수 없었다. 남녀노소 5명을 골고루 만난 결과였다.

발걸음을 조금 옮겨 서울시청 입구 쪽에 섰다. 영결식이 끝난 후 박 시장의 영정이 서울시청을 빠져나왔다. 곳곳에서 오열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열은 분통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런 이들조차 "기레기 XX"를 외칠지언정 고소인을 거론하진 않았다. 때론 박 시장을 과하게 두둔하는 말이 나오긴 했으나 최소한 고소인만큼은 공격하지 않는 선을 지켰다.

물론 한정적으로 시공간을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자가 보고 들은 게 전부가 아닐 순 있다. 하지만 영결식 전후인 13일 오전 7시 40분~9시 40분 서울시청 앞 분위기는 '차분한 애도'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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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렸다. 왼쪽부터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 권우성


조문객들과 마주하며 그러한 걱정을 했던 이유는, 요며칠 고소인을 향한 온라인상 2차 가해를 너무도 쉽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누구라더라, 피해자에게 성추행의 원인이 있다더라 등의 추측성 글이 특정 사진 및 욕설과 함께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 피해자의 변호사가 강용석이란 허위사실이 사실처럼 돌기도 했다. 이번 일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음모론과 이번 일을 정쟁으로 이끄는 과도한 정치화도 서슴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극단은 역으로 극단을 낳았다. 반대편에선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언어로 상대를 공격하고 박 시장의 죽음 역시 조롱했다. 그렇게 지난 닷새 '극단의 과대 대표'된 오염된 말들 속에 살았다.

이날 오후에도 장맛비는 여전히 거셌다. 고소인 측 기자회견이 진행된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은 취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직접 참석하지 못한 고소인의 글을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대신 낭독했다. 글의 말미, 고소인은 이렇게 말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누군가는 이 말의 진정성을 의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가해자로 지목한 이의 명복을 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박 시장에게 애도를 표하는 일과 고소인에게 연대의 마음을 건네는 일은 극단에 위치해 있지 않다. 오전에 서울광장에서 만난 조문객들이 그랬다. 그들은 고소인을 향한 선을 지켰고, 고소인은 박 시장의 명복을 빌었다. 박 시장과 가까웠던 이들도 "애도와 연대는 함께 할 수 있는 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0~10이 있다면 0과 10에 위치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중 대부분은 생각보다 가까이 위치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글의 첫머리를 고쳐야 할 것 같다. 오전, 오후의 현장은 극단이 아니었다.

고소인이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이제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관련기사] 
"시장님 편히 쉬세요" 시민들 박원순 영정 떠나보내며 오열  http://omn.kr/1oagd
박원순 성추행 장소는 시장 집무실 및 내실, 4년간 지속"   http://omn.kr/1oanf
[전문] 피해자의 글 "사과 받고 싶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http://omn.kr/1oa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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