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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서 만난 택시기사, 그가 DJ에 인색한 이유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 (55)] 제15 대통령 김대중 ③

등록 2020.07.20 16:50수정 2020.07.2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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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의 요람지, 목포 시가지로 코로나 여파로 한적했다. ⓒ 박도

 
목포로 나가다
 

소년 김대중은 하의보통학교 4학년 때 목포로 나갔다. 하의도에서 '강경호'라는 배를 타고 3시간가량 물살을 갈라 목포에 도착했다. 뭍은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다.

김대중은 목포공립제일보통학교(현 목포북교초등학교)에 전입학했다. 부모님은 목포에서 여관을 운영했다. 전학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신문사 주최의 글짓기 대회에 입상했다. 그 일로 학교 안팎에서 주목받았다. 

김대중은 목포공립제일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5년제 목포공립상업학교에 입학했다. 1943년 12월, 목포상고를 졸업한 김대중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전남기선주식회사라는 해운회사에 취직했다.

1944년 여름, 회사 사무실 밖으로 한 젊은 여성이 양산을 쓰고 지나갔다. 하얀 피부에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겼으며 흰 원피스 차림이었다. 여름 햇살은 눈부셨지만 그는 더 눈이 부셨다. 첫눈에 반했다. 목포에서 그렇듯 세련되고 아름다운 여인을 본 적이 없었다. 수소문해 보니 목포상고 동급생 차원식의 누이동생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 집에 자주 놀러갔다. 끈질긴 구애로 1945년 봄에 결혼했다. 곧 해방이 되었다
.
 

목포 앞 낙도의 등대. ⓒ 박도

  
해방 후 김대중은 건국준비위원회 목포지부에 가담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미·영·소 3국 외상회담의 신탁통치 소식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좌파, 우파, 중도파 등 모두 반대했다.

그런데 해가 바뀌자 여운형의 중앙인민위원회와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은 돌연 신탁통치를 지지하고 나섰다. 애초 김대중은 신탁통치를 반대했다. 하지만 미국·소련의 위세를 등에 업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는 것보다 굴욕적이긴 해도 신탁통치를 받으며 뭉쳐 있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은 남한 단독 임시정부 수립을 시사했다. 김구는 여전히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남한 단독정부 수립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좌파 박헌영은 미 군정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 무렵 국론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사분오열돼 있었다. 김대중은 좌우합작을 표방하는 신민당에 입당했다. 하지만 당원 일부가 공산당을 추종하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곧 발을 뺐다.

  

옛 목포공립제일보통학교(현 목포북교초등학교) ⓒ 박도

 
회색의 시대

1946년 10월 1일, '대구 10. 1 사건'이 터졌다. 그 여파로 김대중은 무참히 두들겨 맞고, 첫 딸까지 잃는 불운을 겪었다. 그 사건 이후 김대중은 현실문제에 관심을 접고, 조그마한 배 한 척을 구입하여 목포해운공사를 설립했다. 목포와 부산, 군산, 인천 등 연안 항구의 화물을 운송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사업은 순풍에 돛 단 격이었다.


김대중은 사업 번창으로 어느새 목포 유지가 됐다.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가입치 않았다. 국민보도연맹은 좌익운동을 하다가 전향한 사람들로 조직된 반공단체였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정부는 군인과 경찰을 동원하여 이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1948년 4월 3일, 이른바 '4.3 사건'이 일어났다. 제주도민들이 단독정부 수립 반대로 봉기를 일으킨 것이다. 이승만 정부는 '4.3 사건'을 진압코자 여수 14연대를 동원했다. 그러자 이들 병력 중 상당수가 동족을 죽일 수 없다는 명분으로 10월 20일 반란을 일으켰다. 부역자 색출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수없이 희생당했다. 그 무렵 남북 경계선인 38선을 따라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제주 '4.3 사건'으로 여수‧순천 사건이 촉발됐고, 이들 사건은 6.25전쟁을 부르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피의 일요일'이 스멀스멀 다고 오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백성들은 그런 재앙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 <김대중 회고록> 제1권 41~69쪽 축약

  

목상고등학교에 세워진 김대중 선생 표지석 ⓒ 박도

 
 

옛 목포공립상업학교(현 목상고등학교) ⓒ 박도

 
목포

나는 7월 4일 오전 11시, 신의도 포구에서 목포행 여객선에 올랐다. 올 때와는 달리 갈 때는 객실로 가서 눈을 붙였다. 객실에서 1시간 남짓 지낸 후 갑판으로 나가자 그새 여객선은 목포항이 보이는 곳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갑판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남해 다도해를 완상했다.

언제 이곳을 다시 오겠는가. 이즈음은 매사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일기일회'(一期一會)란 말처럼. 모든 게 다 소중한 만남이 아닐 수 없다.

여객선은 오후 1시 10분 무렵 목포항에 닻을 내렸다. 나는 배에서 내린 즉시 택시정류장으로 가서 대기 중인 운전기사와 상의했다. 목포북교초등학교, 목상고등학교를 거친 다음 목포역으로 가자고. 기사는 흔쾌히 승낙하면서 그곳이 김대중 전 대통령 연고지임을 잘 알고 있었다. 

먼저 목포북교초등학교로 갔다. 교문 옆에는 '제15대 대통령 후광 김대중 선생 출신학교(30회)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돌비석이 서 있었다. 카메라로 교정을 담은 뒤 곧장 택시에 승차했다.

10여 분 지난 후 택시는 목상고등학교 정문 앞에 섰다. 교문 옆에는 역시 '제15대 대통령 후광 김대중 선생 출신학교'라는 돌비석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김대중 동산'과 김대중 동상도 서 있었다. 그날은 비가 내린데다가 주말이라 두 학교 모두 고즈넉했다.
  

목상고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김대중 동상 ⓒ 박도

 
국토의 임자는 모든 생명체다

택시기사의 김대중 대통령 평은 인색했다. 그는 목포인들의 평은 점차 시들하다고 말했다. 그 까닭을 묻자 재임 중 목포를 위해 해 놓은 게 없단다. 목포인들은 수십 년 동안 김대중을 밀어줬건만 재임 중 변변한 공장 하나 유치하지 못했다는 불평이었다. 택시기사 한 사람의 의견이 전 목포인을 대변하는 건 아닐 테다. 하지만 나는 그 얘기를 듣자 몹시 씁쓸했다.

전두환 생가마을 경남 합천에서도 주민들은 똑같은 불평이었다. 일부일 테지만 이 나라 주민들은 자기 고장 발전에만 혈안이 돼 있다. 그저 내 땅, 내 집 값만 오르면 입이 벌어진다. 토지공개념과 같은 획기적인 큰 변화 없이는 가족주의, 지역주의, 빈익빈 부익부의 사슬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사실 국토는 그 나라에서 태어난 모든 생명체의 것이다. 네 것, 내 것이 있을 수 없다. 그야말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인생이 아닌가. 기득권자들이 토지 공개념 깉은 사회주의 사상을 부추기고 있다.

나는 두 학교를 둘러본 뒤 목포역 앞에서 택시기사와 작별했다. 그때 시간은 오후 2시 30분이었다. 무궁화 호로는 그날 원주 도착이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래서 KTX로 익산으로 간 다음, 역시 같은 KTX로 서대전역에 가는 환승 열차표를 샀다. 드넓은 중국대륙을 보름 동안 누벼도 싱싱하던 내 몸은 '세월 앞에 장사없다'는 말처럼 이제는 1박2일 답사에도 지쳤나 보다.

목포역 대합실 옆 김밥 집에서 요기를 한 다음, 익산행 열차에 올랐다. 익산역과 서대전역을 거쳐, 갈 때의 역순으로 원주로 갔다. 내 집으로 돌아오자 밤 10시를 조금 넘었다. 긴 여로의 피로가 해일처럼 덮쳤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대중 회고록> 등 수십 권의 참고자료와 동시대 신문 및 여러 사람들의 증언으로 썼습니다.
#김대중 #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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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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