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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안 돼도 좋으니 더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했는데..."

[나의 꿈은 '노동자'입니다 ⑨] 이태성 한국발전산업노조 한전산업개발 발전본부 사무국장

등록 2020.07.17 20:20수정 2020.07.1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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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지식인, 혹은 스타들의 목소리만 넘쳐나는 속에서 진짜 이 사회의 주인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살려내고자 합니다. 노동자 개인의 삶을 인터뷰하면서, 어릴 적 꿈과 직장을 구하는 과정, 일터에서의 보람, 힘든 점,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의식의 변화 등을 중심으로 진솔한 삶을 기록합니다.[기자말]

'비정규직 대표 100인 기자회견'에서 김용균 사망 소식 전하는 이태성씨 2018년 12월 11일, 이태성씨는 태안화력에서 김용균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비정규직 대표 100인이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막 열릴 참이었다. 이씨는 이 자리에서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 이태성

    
"2014년에 친한 동생이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어요. 태안화력에서 함께 일하다가 승진해서 보령화력으로 갔는데, 거기서 그 사고를 당했습니다. 사고 나기 일주일 전에도 통화를 했는데... 조금 있으면 딸이 백일이 되니까 보령에 와서 술 한잔하자고 했어요. 그때 그 동생 나이가 서른한 살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노조 일을 하고 있었는데, 노조는 그런 사망 사고가 나면 사실을 알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싸워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고작 위로금이나 걷고 있었어요."

한국발전산업노조 한전산업개발 발전본부 사무국장 이태성씨, 그가 이렇게 긴 직함을 가지게 된 것은 한국전력공사의 복잡한 하청구조와 관계 있다. 한전은 효율성 제고라는 명분으로 1990년대부터 발전소 설비정비, 운전 업무를 외주화하기 시작했다. 그가 근무하는 한전산업개발은 발전사의 9개 하청 업체 중 하나다.

하청업체들은 원칙적으로 3년마다 공개 입찰을 하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회사는 입찰에서 떨어질까 봐 산재가 발생할 때마다 사고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고, 사고 원인을 노동자 개인의 과실로 돌렸다. 하청노동자들은 회사가 입찰에서 떨어지면 직장을 잃는다는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기에, 2014년 동료의 죽음 앞에서도 이태성씨와 노조는 무력했다.

"제가 1998년도에 입사했는데, 20년째 작업 환경이 변하지 않았어요. 저와 동료들이 일하는 작업장은 초속 5m로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석탄 가루로 앞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컴컴한 곳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4km 정도의 거리를 왕복하며 안전 점검을 하고 탄가루 치우는 일을 하고 있어요. 컨베이어 벨트가 도는 속도가 빨라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갈 위험이 있기에 접근 방지 펜스와 자동제어 스위치를 달아줄 것과, 시야 확보를 위해 조도를 높여달라고 계속 요구했지만 회사는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2년 전인 2018년 김용균 사망사고 이후에야 펜스와 조명이 설치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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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 발전소 내부 ⓒ 이태성

 
3년마다 입찰을 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이태성씨가 근무하는 동안 실제로 태안화력에서 공개 입찰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3년마다 재계약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회사는 비용 절감의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 위험한 근무 환경은 20년 이상 방치되었다.
  
그러다가 2016년 12월 31일에 태안화력에서 처음으로 입찰이 나왔다. 노조의 반대를 우려해서 어수선한 연말연시에 입찰을 진행한 것이다. 그리고 한전산업개발은 이 공개 입찰에서 떨어졌다. 태안화력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 전원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낙찰받았던 기업들이 숙련된 인력을 다 채울 수가 없어서 차례로 낙찰을 포기했다. 결국 3순위였던 한전산업개발이 다시 낙찰을 받고 직원들은 회사에 남았다.

"발전소는 1급 보안시설로 폐쇄된 공간이에요. 발전소 출입을 위해서는 신원확인을 하고 서약서를 써야 할 정도로 출입도 통제되죠. 전쟁 나면 타격 1번이 될 만큼 국가의 존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가 기간산업입니다. 국민의 생명 안전과도 직결되고요. 그런데 여기에 민간기업의 이윤추구라는 개념을 끌고 들어와 민영화와 외주화를 한 겁니다.

노동자가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서,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가능할까요? 외주화 결과 20년 30년씩 노후된 시설이 안전 설비도 없이 방치되고, 근무 조건이 열악해서 수많은 산재가 발생했고요. 더 심각한 것은 그런 현실을 '입찰에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숨겨왔다는 거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도 받아왔고요."

  
한전산업개발 발전노조는 2016년 입찰을 저지하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소 민영화의 문제점을 지적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2017년 11월에 태안화력에서 또 보일러 밸브에 머리가 끼여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담당자들은 태안화력방재센터에 사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다친 노동자는 구급대원의 안전조치 또한 받지 못했고, 구급 차량이 아닌 협력 업체 소장의 차로 이송됐다. 입찰에서 감점 요인으로 작용하는 산재 사고를 은폐하기 위함이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노동자의 죽음 막아야
  

산업사회에서 '공기'와 같이 필수적인 '전력'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비용절감과 효용성 제고라는 명목 아래 다치고 죽어가는 하청 시스템은 반드시 바뀌어야만 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발전분야 비정규직 연대회의'가 만들어졌다.

발전 노동자들은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의 국회간담회를 시작으로 기자회견과 국회의원 면담을 이어나가며, 정규직화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이태성씨는 노조 사무국장으로 이 모든 과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2018년 12월 11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기다리던 그는 전날 밤 태안화력에서 김용균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비정규직 대표 100인이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막 열릴 참이었다. 이씨는 이 자리에서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관련기사: "취임 초 문 대통령 행보에 펑펑 울었는데 지금은..." http://omn.kr/1ex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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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비정규직 대표 100인 기자회견에서 이태성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한전산업개발 발전본부 사무국장은 "오늘도 또 동료를 잃었다"라며 울먹였습니다. ⓒ 민주노총

   
"저는 오늘 동료를 잃었습니다. 정규직 안 돼도 좋으니 더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했는데 꽃다운 젊은 청춘이 또 목숨을 잃었습니다."
   
김용균은 12월 10일 밤, 혼자 일하다가 석탄을 이송하는 설비에 끼어 사망했으며 발견되기까지 4시간 동안 방치됐다. 2019년 작성된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노동자 수는 39명이고, 부상을 포함한 사고 발생 건수는 428건에 이른다. 그리고 2018년 이후 현재까지 사망 사고만 3건이 더 발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산재 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약했으나, 최근 5년간 산재 사고의 97%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김용균 사망 이후 올해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어요. 28년 만에 처음으로 개정되었습니다. 개정된 법안에 '위험 작업은 2인 1조'라는 조항이 담겼지만, '위험 작업'의 기준이 명시되지 않아서 여전히 혼자 일하는 곳도 있고요. 이 법은 재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9년 12월 12일 '당정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 발표'로 한전산업개발을 공기업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발표하였다. 한전의 상시적 업무인 발전소 설비정비, 운전 업무를 원청이 직접 관리하고 책임지도록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이 요청이 있은 지 7개월이 지나고 있는 현재 시점까지 현실적인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태성씨는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지 570일이 넘어가는 현재에도 김용균의 동료들은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덧붙여 집권 여당이 약속을 지키고, 노동자가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을 당부했다. 김용균 사망 이후 하루하루 날짜를 세면서 천막농성부터 일인 시위까지 노동자들은 아직도 거리를 지키고 있다.
  
당당하고 차별받지 않는 노동을 위하여
  

“가족의 힘이 없었더라면, 사실 여기까지 못 왔을 겁니다.” 힘들어하는 이태성씨의 모습에 안타까워 하면서 노조활동을 반대했던 가족들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했다. 딸들은 집회현장에도 함께 하고 아빠를 존경한다며 위로한다. 아내도 "열악한 노동현장을 알리는 당신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발전소 현장이 바뀌고 있다"며 신뢰를 담은 응원을 해주고 있다. ⓒ 이태성

 
태안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엔 어촌 특화사업을 해보고 싶어 했던 이태성씨는 1992년 태안에 건설된 화력발전소에 1998년 12월 한전산업개발로 입사해 화력발전소 운전 분야에서 일해 왔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자라나 학창 시절에는 막연히 '노조는 과격하고 불온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그는, 비정규직의 부조리를 겪고 동료들이 다치고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변해갔다.
   
2019년 이태성씨는 '허위사실을 무차별적으로 언론에 유포해서 회사의 명예를 실추했다' 하여 원청 정규직 노조 관련자로부터 명예 훼손 혐의로 고발당했다.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경찰서에 가서 몇 시간씩 조사받고 마음고생을 했다. 조사 결과 '기소 의견 없음'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관련 기사: "노동자가 김용균 대책위 노동자 고발... 의도가 다분하다" http://omn.kr/1j8rl)

"가족의 힘이 없었더라면 사실 여기까지 못 왔을 겁니다."
  
힘들어하는 이태성씨의 모습에 노조 활동을 반대했던 가족들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했다. 딸들은 집회 현장에도 함께 하고 아빠를 존경한다며 위로한다. 아내도 '열악한 노동 현장을 알리는 당신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발전소 현장이 바뀌고 있다'며 신뢰를 담은 응원을 해주고 있다.
   
"정규직은 위험한 일을 시켰을 때 거부권이 있지만, 비정규직은 없어요. 이것도 변해야 합니다. 사람을 소모품처럼 다뤄서는 안 되죠. 노동자의 목숨이 깃털은 아니거든요. 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법 제정으로 기업들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나 '비정규직 사용제한법' 같은 것들이 제정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기업은 엄히 처벌해야 하고, 비정규직이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쓰는데 악용되는 일도 막아야 합니다."

이태성씨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를 '무임승차'라고 비난하는 시선에 대해, 특히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들은 지금 당장 거부감이 있을지 모르지만, 정규직화는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일임을 알아줄 것을 당부했다.   

"대한민국 국민의 90%는 노동하는 사람들인데, 왜 어떤 노동의 가치는 천박하게 인식되는 걸까요? 특히나 우리 생존에 필수적인 생산직 노동을 더 그렇게 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요. 우리나라도 노동교육을 의무화하고 어릴 때부터 노동은 소중하고, 나는 기업이 주는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내 당당한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한다는 사실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기업과 노동자는 평등한 계약관계라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노동자가 마치 기업의 소유물처럼 인식되고 있으니 이건 아주 잘못된 거죠. 우리나라는 10년째 OECD국가 중 산재 사망률이 1위라고 해요. 경제 대국인 나라에서 불명예스러운 일입니다."
#태안화력 #한전산업개발 #한국발전산업노조 #이태성 #김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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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노동 인권, 공교육, 미혼부모,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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