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하루에 5.5명 '이것'으로 죽었다,
100명 중 1명도 감옥에 안 갔다

[20-20 / 산업재해 ①] 2005∼2019 산업안전보건법 재판 7946건, 징역형은 단 42건

등록 2020.07.27 07:07수정 2020.07.27 07:19
5
원고료로 응원
창간 20주년 기획 '지나간 20년, 앞으로 20년(20-20)'을 선보입니다. 2020년 현재, 2000년을 돌아보며 2040년을 그리려 합니다. 사회 각 분야별로 지난 20년 동안 성과는 무엇인지, 그럼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또 무엇인지,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가 마흔 살이 됐을 때 좀 더 나은 사회가 되려면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 기대하겠습니다.[편집자말]
a

2016월 5월 31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현장에 붙어 있던 추모 쪽지들. 당시 시민들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권우성

 
고공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이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다. 떨어져서 부서지고 으깨진다.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은 땅을 치며 울부짖고 노동을 관리하는 정부관리가 와서 손수건으로 눈물 찍어내는 시늉을 하고 돌아가면, 그 다음 날 노동자들은 또 떨어진다. 사흘에 두 명꼴로 매일 떨어진다.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2019년 5월 14일 한겨레 칼럼. '아, 목숨이 낙엽처럼')

김훈 작가의 글이다.

그의 말이 맞다. 고용노동부 공식 집계로만 매해 2000여 명의 사람들이 일하다 목숨을 잃고 있다. 2019년에는 2020명(하루에 5.5명꼴)이, 2018년에는 2142명이 산업재해로 생을 마감했다.

이 같은 문제는 20년째 반복되고 있다. 2000년에 2528명이, 2001년에 2748명이 일하다 죽었다. 2009년에야 2000명을 밑돌았다. 사망자수는 1916명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추세가 2017년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2018년부터 또 다시 2000명 선을 넘고야 말았다.

노동계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추정한다.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망자까지 합하면 그 죽음의 숫자는 2400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김 작가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일하다 죽는 비극이 반복되는 원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산업재해로 돌아가신 사람들이 이 나라의 돈이 많고 권세가 높은 집 도련님들이었다면 이 문제는 진즉 해결되었다.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식이 떨어져 죽었으면 이것을 당장 해결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해결 안 한다. 계급적인 억압적 구조가 작용되기 때문이다. (2019년 9월 27일 생명안전시민넷이 연 '생명안전 시민이야기 마당'에서)

돈과 권력 있는 자들은 "재벌을 압박하고 정치권력·행정능력을 동원해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했을 테지만, 산업재해로 돌아가시는 분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교육을 잘 못 받고, 돈도 빽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불평등 구조가 20년 넘도록 산업재해 사망이라는 비극이 지속되는 이유라고 했다.
 

2000년~2019년 산업재해 사망자수 - 고용노동부 집계 ⓒ 이주연

 
추락, 폭발, 압착, 중독, 질식... 2019년에만 2020명
 
추락, 폭발, 매몰, 붕괴, 압착, 중독, 질식…으로 노동자들의 몸이 으깨지고 간과 뇌가 땅위에 흩어지고 있습니다. 기업주는 이 무수한 죽음에 대해서 소액의 벌금을 내는 것으로 책임을 모면하고 있습니다. (2019년 6월 18일, 김훈 작가의 호소문 '우리는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나라를 원한다')

또 다시, 그의 말이 맞다.

<오마이뉴스>가 대법원에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을 어긴 혐의로 1심 재판이 열린 사건 가운데 90% 가량의 피의자가 벌금형을 받거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유기징역형을 받은 사례는 채 1%도 안됐다.

구체적으로, 지난 해 산업안전보건법을 어겨 1심 재판이 진행된 사건은 총 705건이다. 이 중 벌금형을 받은 사례가 525건(74.47%)으로 가장 많았다. 집행유예가 102건(14.47%)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 중 유기징역은 단 2건(0.28%)에 그쳤다.

즉, 2019년 한 해 동안 2020명이 사망하고 10만 9242명(고용노동부 통계)이 다쳤지만, 같은 기간 산업안전보건법 위한 혐의로 피소된 피의자 가운데 징역형을 선고받은 건 고작 2건이었던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대법원 사법연감을 통해 15년 치 재판 결과를 훑어본 결과도 궤를 함께 했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1심 형사 재판은 총 7946건 열렸다. 이 가운데 5482건(68.36%)이 벌금형을 선고 받았고 1000건(12.58%)이 집행유예를, 251건(3.16%)이 선고유예형을 선고 받았다. 무죄도 465건(5.85%)으로 집계됐다. 징역형은 15년 동안 고작 42건(0.53%)뿐이었다.

같은 기간 동안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2만9881명(고용노동부 통계 합산)이다.
 

2019년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1심 재판 결과 ⓒ 이주연

 
뻔한 결말

산업재해 관련 주요 사건들의 판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1) 2010년 9월 7일 새벽 2시 경, 충남 당진시 KISCO 홀딩스 계열사인 환영철강 직원 김아무개씨가 쇠를 녹이는 작업 중 실수로 발을 헛딛고 섭씨 1600도의 쇳물이 흐르는 전기용광로에 빠져 사망했다. 그의 죽음을 다룬 기사에 누리꾼 '제페토'는 댓글로 추모시를 남겼다.
 
그 쇳물 쓰지 마라.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자, 하게.

회사 측 관계자는 "쇳물이 있을 때 용광로 가장자리에 올라가서는 안 되는 게 기본이다, 그 사람이 가서는 안 될 곳을 갔기 때문에 벌어진 사고"라며 '개인 과실'을 주장했다고 한다. 비난 여론에 밀린 회사는 유족에게 위로금과 장례비 등을 지급하며 마무리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2) 2012년 9월 27일, ㈜휴브글로벌 경북 구미공장에서 불산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불산 탱크 위에서 작업하던 근로자가 에어밸브 손잡이를 열다가 실수로 사고를 당했다. 공장 근로자 5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당했다. 인근 지역에도 가스가 퍼져 농작물이 죽고 가축이 가스 중독 증상을 보였다. 안전관리책임자는 현장 관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관련, 대구지법은 2013년 9월 ㈜휴브글로벌 회사 대표 허아무개씨에 대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3) 2017년 11월 9일,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현장 실습을 하던 고교생 이민호군이 기계를 정비하던 중 컨테이너에 깔려 숨졌다. 사고 당일 이군은 혼자 일했으며 이군이 기계에 깔리고 몇 분이 흘렀음에도 동료 직원들은 사고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2020년 6월 열린 항소심에서 제주지방법원은 업체 대표 김아무개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4) 2018년 10월 20일, 제주 삼다수 공장 직원 김아무개씨가 페트병 생산 기계를 수리하던 중 기계에 몸이 끼어 사망했다. 김씨가 기계 수리에 들어갈 당시 기계 운전을 자동으로 정지하는 장치가 해제돼 있었고, 해당 기계가 노후 돼 오류가 자주 발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4월 제주지법은 업무상 과실치사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제주개발공사 전 사업총괄 상임이사 구아무개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공장 간부 박아무개씨와 강아무개씨에게 각각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5) 2016년 5월 28일,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이에 용역업체 은성 PSD 직원 김아무개씨가 끼어 사망했다. 김씨는 당시 혼자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2019년 11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정원 전 서울메트로 대표에게 벌금 1000만 원이 선고됐다. 2019년 8월, 은성 PSD 대표 이아무개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노동자들이 끼어 죽고, 용광로에 녹아 죽고, 깔려 죽었지만 책임자는 벌금을 냈을 뿐이다.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사람들이 날마다 우수수우수수 낙엽처럼 떨어져서 땅바닥에 부딪쳐 으깨지는데, 이 사태를 덮어두고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자는 것인가. 앞으로 나갈수록 뒤에서는 대형 땅 꺼짐이 발생한다. (2019년 5월 14일 한겨레 칼럼. '아, 목숨이 낙엽처럼')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것일까.
 

(사)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이 원·하청 대표들의 처벌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대전지검 서산지청에서 벌이고 있다. ⓒ 신문웅

 
#산업재해 #산재 #산업안전보건법 #김훈 #살인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