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개혁의 모델, 혁신학교 운동

교육개혁의 진앙지, 혁신학교

등록 2020.07.17 11:17수정 2020.07.19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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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수영 컨퍼런스에 참석한 김상곤 교육부총리(2018. 4. 20) 교육혁신 도시 경기도 오산 원동초등학교에서 열린 수영컨퍼런스에 참석할 당시 김상곤 교육부총리(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김상곤 교육감을 이어 진보교육감으로 당선된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수영 체험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자기주도성을 키워가는 모습에 환호하며 격려하는 모습. ⓒ 경기도 교육청

   
혁신학교 운동은 2009년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하였다. 혁신학교 운동은 신자유주의 교육으로 망가진 학교교육을 재건하고 입시경쟁교육으로 황폐화된 학교 교육을 치유하려는 운동이다. 한 마디로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다.

2009년 5월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200개가 넘는 시민사회단체 연대기구인 '경기희망교육연대'가 출범했다. '경기희망교육연대'는 진보 단일 후보로 김상곤(한신대 교수)을 밀었다. 김상곤 후보는 40.81%를 득표해 기존 경기도 교육감을 제치고 제14대 경기도 교육감으로 당선된다. 전국 최초 '진보'의 이름으로 당선된 김상곤 교육감은 무상급식과 함께 혁신학교 운동을 실천에 옮겼다.

'혁신학교'라는 용어는 김상곤 진보교육감이 출마할 즈음, 함께 교육정책을 구상했던 송주명 교수(한신대)가 처음 끌어온 개념이다. 학교야말로 가장 우선적으로 시급히 변화해야 할 공간이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혁신학교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물론 '혁신'이라는 용어는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교육부가 2006년 공영형 혁신학교를 쓰면서 처음 도입된 표현이다.

공영형 혁신학교는 미국의 혁신학교인 차터 스쿨(Charter School)을 모방한 것이다. 그러나 혁신학교 운영주체와 교육과정, 학교장과 교사임용, 그리고 학생선발과 교과서, 학생평가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은 차이는 크다. 그럼에도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창의성과 집단지성, 그리고 다양한 잠재력 개발을 통해 공교육 정상화를 지향하는 미래형 학교이자 학교혁신의 모델을 추구했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최초의 혁신학교는 2009년 경기도 광주군 남한산초등학교이다. 남한산초등학교는 2001년 학생 수 26명으로 폐교 위기에 내몰렸다. 남한산성 도립공원에 위치한 작은 학교로 학생 수 급감이 폐교의 주된 요인이었다.

폐교에 직면한 당시 뜻있는 사회운동가와 교육운동가들이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에 팔을 걷어붙였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공부방 운동을 하며 도시빈민운동을 실천하던 활동가가 당시 전교조 경기지부에서 활동하던 교사에게 연락을 하였다. "남한산초등학교가 폐교 직전인데 학교장이 성남에서 전학을 오면 받아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남한산초등학교는 2000년대 초 시작된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미 한국 사회는 90년대부터 산골 분교 등 작은 학교들이 통폐합되는 운명에 직면했다. 당시 제도권 교육에 회의적인 사람들 중엔 몸소 대안교육운동을 실천했다. 90년대에는 폐교된 시골 분교를 사들여 대안학교를 열었다. 최초의 대안학교인 경남 산청군 간디학교(1997)와 전남 담양 한빛고등학교(1998), 전북 무주군 푸른꿈고등학교(1999)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도시 속 거대학교와 과밀학급을 반교육적인 환경으로 규정하고 오히려 작은 학교에서 참된 교육을 구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2000년대 초 시작된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은 90년대 대안학교 교육운동의 정신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은 학령인구의 감소와 이농현상으로 폐교 위기에 내몰리면서 시작된 운동이다. 전라남도의 경우 지난 10년 간 30개 시골에서 작은 학교들이 폐교됐다. 그러면서 9만 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줄어들었다. 부득불 전남 화순군 아산초등학교에서는 교육청 지원을 받아 낡은 교사 관사를 허물고 전학 온 학생 가족들이 머물 수 있는 사택을 지어주었다. 그러자 전국 각지에서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콩나물시루 같은 도시 과밀학급과 입시경쟁교육으로 번창한 사교육에 넌덜머리가 난 대도시 젊은 부모들이 몰려든 것이다. 물론 사택은 무료로 제공되었다. 심지어 전남교육청에선 지난 해 5월부터 스쿨버스 대신 '에듀 택시'를 도입했다. 교육청이 택시회사에 지원금을 주어 학생들은 시간과 요금 불편 없이 등교한다. 전남지역 130개 넘는 학교에서 700여 명 학생들이 시골 작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전교조 위원장 출신 장석웅 교사가 전남교육감으로 당선되면서 펼친 정책이다.

90년대 시골에서 시작한 기숙형 간디학교, 한빛고등학교. 푸른꿈고등학교 등 대안학교 운동은 2001년 남한산초등학교의 작은 학교 운동으로 이어졌고 2000년대 중반엔 경기도 일산 다산학교(2003), 성남 이우학교(2003), 파주 자유학교(2005) 등 사립 도시형 대안학교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렇듯 2009년 경기도 진보교육감이 처음 시작한 혁신학교 운동은 90년대 대안학교 운동 - 2000년대 작은 학교 운동 - 도시형 대안학교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전개되었다. 급기야 대안학교와 작은 학교 운동에 스며들었던 교육 이념을 공교육 전반에 혁신학교 운동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실제로 혁신학교 운동은 공교육 개혁의 선도적인 학교이자 모델학교로서 출발하였다. 학교교육이 추구해야 할 교육 본연의 가치를 학교공동체를 통해 현실 속에 구현해 냄으로써 상처받은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교육운동으로 출발했다. 다시 말해 혁신학교 운동을 통해 학교를 혁신함으로써 교육공동체 전체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공교육 개혁의 롤 모델학교가 혁신학교이다.

그리하여 혁신학교의 새로운 개혁의 바람을 일반 공교육에 확산시키려는 사회운동으로 혁신학교는 일종의 파일럿 스쿨(pilot school)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따라서 혁신학교 운동은 공교육 체제의 근간을 뒤흔들고 교육지형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정책이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만든 혁신학교 홍보 자료 학생자치와 프로젝트 학습, 그리고 교사의 열정과 학부모 참여로 학교교육을 혁신할 수 있다는 혁신학교 포스터(출처 : 서울시 교육청) ⓒ 서울시 교육청

     
혁신학교 운동은 입시경쟁교육으로 피폐해진 교육현장을 치유하고 학생들의 자율성과 자주성을 존중함으로써 행복한 삶을 지향한다. 당연히 학생자치활동이 보장되고 존중되며 교육과정 역시 학생들의 참여와 토론, 발표가 주를 이루게 된다. 또한 학생들로 하여금 다양한 체험활동을 경험하도록 교육과정을 구성한다.

나아가 기존 수직적인 관료주의 학교문화와 국가주의 교육행정에 찌든 학교현장을 개혁하고 교사에게 교직에 대한 자긍심을 안겨주기 위한 교육개혁을 학교현장에서 전개해 나갔다. 교사-학생-학부모가 교육의 실질적 주체로서, 그리고 학교를 아이들의 삶이 있는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혁신적인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혁신학교는 윤리성, 전문성, 창의성, 민주성 등 네 가지 기본 가치를 근간으로 학교를 운영한다. 윤리성은 교사-학생 구성원 상호 간 존중과 배려의 윤리공동체를 지향한다. 전문성은 교사 개인의 성장을 통해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교 공동체 전체의 공동 성장을 추구한다. 창의성은 학생의 성장과 계발을 돕기 위해 교육과정의 자율적 구성과 다양화를 추구한다. 마지막으로 민주성은 교사-학생-학부모의 자율적인 참여와 교류, 그리고 소통을 통해 수평적인 학교 문화의 정착과 민주적인 학교 공동체를 지향한다.

2009년 남한산초등학교를 비롯해 13개 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한 것을 시작으로 2011년엔 43개교 확산되었다. 2016년 현재 경기도에선 초등학교 214개교, 중학교 140개교, 고등학교 49개교 총 403개교가 혁신학교로 지정, 운영되고 있다. 혁신학교로 지정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가운데 입시교육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고 따라서 교육의 본질에 깊이 천착할 수 있는 초등학교가 53%로 혁신학교의 절반을 넘는다.

2009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전개된 혁신학교 운동은 2010년 곽노현 진보교육감이 당선되면서 서울형 혁신학교운동이 시작되었다. 2011년엔 광주 빛고을 혁신학교가 탄생했고 2012년엔 강원도 혁신학교인 행복학교가 시작되었다. 2013년엔 전남 혁신학교인 무지개학교가 출발하였고 2014년엔 전북 혁신학교가 탄생하였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학생들 희생으로 진보교육감이 대거 진출하였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13개 교육청에서 진보교육감의 탄생은 혁신학교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2018년도 지방선거에선 보수적인 울산광역시를 포함해 14개 시도에서 진보교육감이 탄생하였다. 그런 흐름 속에 2018년도엔 보수교육감이 있는 대구, 경북조차 혁신학교 운동에 동참함으로써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 모두 혁신학교를 운영, 실천하고 있다. 바야흐로 공교육을 개혁할 수 있는 진앙지이자 교육개혁의 거점학교로서 혁신학교 운동은 그 역할을 톡톡히 자임하고 있다.

물론 혁신학교 운동에 대한 반발과 저항도 만만치 않다. 혁신학교가 학생들의 학력을 저하시킨다는 근거 없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연유로 입시경쟁이 치열한 대도시 고소득 계층이 몰려 있는 지역에선 혁신학교가 들어서는 걸 원치 않는다. 원치 않는 걸 넘어서서 혁신학교 지정이나 설립에 대해 거세게 반발한다.

학군이 나빠지고 주변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거라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2018년 11월 서울시 강남 3구의 하나인 송파구 주민들이 가락동 헬리오시티 단지 내에 초·중학교 혁신학교 지정에 거세게 반발한 적이 있었다.

본래 혁신학교가 처음 시작할 2010년 전후 시기엔 대체로 교육 소외 지역인 농산어촌 지역과 도시 변두리 신설되는 대단지 아파트 내에 혁신학교가 지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 지역에서 수행된 혁신학교 교육활동에 대해서 교사,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는 높았다. 특히 전문성 신장을 위한 교원학습공동체 활동과 학생자치 활동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서울형 혁신학교 운영 결과, 학교운영 혁신으로 민주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모습은 일반학교에 미친 영향 가운데 가장 컸다. 그럼에도 고소득 계층 집단 거주지에서 보인 혁신학교 지정에 대한 거센 반발은 교육개혁에 대한 저항의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 개혁을 주도했을 때 항상 제기된 논쟁이 학생들의 학력 저하 논란이었기 때문이다.

70년대 고교평준화 정책도 그러했고 80년대 초 도입된 대학 졸업정원제 시절에도 학력 저하 논란이 반복되었다. 90년대 교육 다양화 정책과 열린교육 정책 시절에도 그러했고 2000년을 전후해 여러 줄 세우기 교육개혁을 시도한 김대중 정부 이해찬 교육세대에서도 학력 저하 논란은 계속되었다. 혁신학교 운동 10년이 지났지만 검증되지 않은 학력 저하 논란은 교육개혁 저항 세력에 의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불필요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혁신학교 운동은 공교육 개혁의 대안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 되고 있다. 교사-학생-학부모로 대변되는 교육 주체의 자발적 참여를 높이고 의사결정과정에서 민주성과 공개성, 그리고 학교운영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크게 향상시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교육과정 구성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학생 참여와 체험활동을 중시하며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학교문화 건설은 혁신학교 운동 이전에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수직적인 관료제 문화에 찌든 학교사회를 수평적인 대등한 관계로 정립해 나가고 학교라는 생활공간을 교사와 학생들의 '삶이 살아 숨 쉬는 민주적인 교육공동체'로 재구조화하는 혁신학교 운동은 누가 보아도 교육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학교장 1인에게 집중된 의사결정권을 교사회의의 토론과 의사결정으로 전환시키고 학생 참여형 프로젝트 수업과 학생 자치활동을 극대화하는 모습은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혁신학교 운동은 근거 없는 학력저하 논란을 잠재우는 순간, 전국 단위 모든 학교에 급속히 확산될 가능성을 충분히 함축하고 있다. 한 마디로 혁신학교 운동 10년의 성과는 토론이 있는 학교문화와 의사결정의 민주주의 실현, 그리고 학교구성원의 대등한 인간관계의 구현과 존중과 배려의 학교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소중한 교육적 성과를 일궈내었다.
 

민주시민교육 학술대회에서 교육부장관의 축사 장면(2018. 10. 27) 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 국민주권시대 <민주시민교육의 현황과 과제> 학술대회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지지하며 축사를 하고 있는 유은혜 교육부장관 ⓒ 하성환

 
더구나 2017년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로 '민주시민교육' 확대를 제시했다. 2018년 1월 교육부에선 교육부 직제를 개편해 '민주시민교육과'를 신설했다. 그리고 2019년엔 '민주학교'를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이른바 '민주학교'는 혁신학교 운동 1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거점학교이다. 아이들이 행복한 공간이자 민주주의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학교를 재구조화하기 위한 정책적 시도이다. 모두 혁신학교 운동 1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그 정신을 계승하려는 교육개혁운동이다.

자사고, 자공고로 대표되는 학교선택제와 외고, 과학고, 국제학교 등 특권교육의 폐해를 일소하고 신자유주의 학교정책을 근본에서 뒤집는 교육개혁이 혁신학교 운동이다. 그 혁신학교 운동의 성과를 이어받은 실험학교가 '민주학교'이다. 대안학교 운동(90년대) - 작은 학교운동(2000년대) - 혁신학교 운동(2010년대) - 민주학교(2020년대)로 이어지는 공교육 전반을 개혁하고자 하는 장대한 흐름이 이제 국가 정책으로 구현되고 있다.

요컨대, 교육개혁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혁신학교운동은 제도권 안팎에서 실천된 수많은 시행착오와 교육개혁 운동에 대한 성찰을 통해 획득한 역사적 산물이다.
#혁신학교 #공교육개혁모델 #작은학교 #대안학교 #민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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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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