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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궐선거 무공천' 주장한 전재수 "노무현이라면 어떻게 했겠나"

[인터뷰] "당장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민주당, 오거돈·박원순 사태에 책임져야"

등록 2020.07.20 07:52수정 2020.07.20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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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부산 북·강서갑)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 남소연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명분을 틀어쥐고 가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던 것 아닌가. 끊임없이 손해 보는 장사를 했지만 늘 명분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큰 정치를 할 수 있었다. '내년 보궐선거에 후보를 안 내면 문재인 정부 후반기가 힘들어질 것 같다', '정권 재창출도 어려워질 것 같다'고 하면서 단기적인 손익에 얽매이면 자칫 더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부산 북강서갑)의 경고다. 성폭력 사건 후 오거돈 부산시장·박원순 서울시장이 차례로 낙마하면서 치러지게 된 2021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이 후보를 내는 게 적절하냐는 논란과 관련해 전 의원은 "사태에 책임이 있는 민주당은 공천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 의원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충격적이고 상상하기 어려운 잘못을 저질러놓고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후보를 내고 선거를 치르는 무책임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전 의원은 "설령 민주당이 후보를 내고 내년 4월 당 소속 단체장을 거머쥔다고 해도 그 해 12월부터는 대통령 선거·지방선거 국면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실질적인 임기도 8개월 여 남짓일 뿐"이라며 "사실상 후보 공천의 실리도 없다"고도 했다.

민주당 당헌 96조 2항에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전 의원은 최근 당권에 도전한 김부겸 전 의원 등 일각에서 "필요하면 당헌을 개정하겠다"고 시사한 데 대해서도 "후보를 내기 위해 당헌까지 바꿔야 한다는 점 또한 당에 큰 부담"이라며 "176석 민주당이 오만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라고 경계했다.

"성폭력 반복된 민주당,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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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인 전재수 의원이 내년 4월로 예정된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남소연


- 지난 9일, 성폭력 혐의로 피소된 박원순 서울시장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일련의 과정을 어떻게 봤나.
"민주당의 일원으로서 할 말이 없다. 물론 박 시장을 가해자로 확정하기에는 아직 절차와 과정이 남아있다. 그러나 박 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 사실상 가해자라고 볼 수 있는 정황들이 있었다. 특히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은 입이 열 개라도 국민들께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치인이 아닌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는 아쉬움과 절망감도 든다. 높은 도덕적 품격을 가지고 있을 거라 예상했던 지도자들의 연이은 잘못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 힘들었다."

- 부산 민심은 어떤가.
"안 좋다. 이미 지난 총선 때부터 안 좋지 않았나(지난 20대 총선 때 부산에서 6석을 얻었던 민주당은 이번 21대 총선에서 3석밖에 얻지 못했다). 176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수가 국민들께 오만함으로 비쳐지는 순간 끝이다. 당내 기강이 해이해졌다고 비쳐질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


- 2018년 3월 안희정 충남지사, 불과 석 달 전인 2020년 4월 오거돈 부산시장에 이어 이번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까지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의 낙마가 잇따르고 있다. 뭐가 문제인가.
"저도 왜 민주당에서 계속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해 여러분께 자문을 구해봤지만 아직 명확히 설명하는 분을 만나진 못한 것 같다. 부산의 예를 든다면 정치 환경이 조금 느슨해졌던 게 아닌가 한다. 2018년 지방선거 이후 부산시의회 의원 46명 중 41명이 민주당이다. 박 시장 같은 경우도 180석에 가까운 압도적 다수당을 차지할 수 있는 여론 지형이 배경으로 있었다.

민주당의 내면을 이루고 있는 부분 중 하나인 계몽주의나 선민의식에서 문제를 찾아볼 수도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늘 대의를 위한 일, 정의를 위한 일이라고 여기다가 정작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들에 소홀했고, 그 과정에서 모순이 생길 수 있었지 않나 싶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 시장 사망 후 6일만인 지난 15일에야 갑작스런 서울시정 공백 사태에 대해 직접 사과했다. 집권 여당으로서 공식 사과가 너무 늦었다는 지적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공감한다. 장례 절차가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측면이 아니라 국가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거대 집권 여당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그런 비판이 가능하다고 본다."

- 이 대표가 사과와 함께 성인지 교육 강화를 언급했지만 과거 비슷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반복된 얘기였을 뿐이다. 별 실효성 없는 대책 아닌가.
"아직 당 차원의 구체적인 재발방지 대책이 발표되진 않았고,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 그간 성 관련 문제에 있어 피해자 중심주의에 서왔던 민주당의 전통과 가치를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재발방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그런 시스템을 체화해야 한다. 곧 발표가 있지 않겠나."

-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을 맡고 있다. 오거돈 부산시장 성폭력 건은 4.15 총선 전에 일어났지만 총선 이후인 4월 23일에야 오 시장의 자진 사퇴로 세상에 알려졌다. 총선 전엔 정말 몰랐나.
"전혀 몰랐다. 사후에 알아보니 부산시 쪽은 선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당을 비롯한 그 어디에도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하더라."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다"
    
- 보궐선거 얘기로 넘어가자. 오는 2021년 4월 7일 보궐선거 때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모두 뽑게 돼 당장 민주당이 보궐 선거 후보를 내는 게 맞냐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 13일 부산시의회 기자간담회 때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은 후보를 안 내고 다음 선거 때 제대로 해보는 게 맞다"고 발언했는데.
"크게 세가지 이유다. 먼저 대의의 측면에서 사태의 책임이 있는 민주당은 보궐 후보를 내면 안 된다. 사실 얼마나 충격적이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건가. 시간이 좀 지났다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공천하고 선거 뛰는 일을 언제까지 반복할 수 있을까. 이번 참에 악순환의 고리를 한 번 끊어야 한다. 전례를 만들어놓는다면 앞으로 우리 당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두 번 다시 후보를 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다른 정당에선 공천할 수 있겠나. 어려울 거다. 하나의 새로운 정치 문화가 생기는 거다. 역사적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둘째는 사실상 실리도 없다. 설령 내년 4월에 시장을 당선시킨다고 해도 실질적인 임기는 8개월 가량에 불과하다. 그 해 12월부터는 본격적인 대선·지선 국면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업무 보고 한 번 받고 현장 방문 몇 번 하면 끝이란 얘긴데 무슨 큰 이득이 있나.

셋째는 아예 이번에 확실하게 죽어야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지금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 시선이 어떤가. 아무리 사고를 치고 난리가 나도 반성한다고 해놓고 나중에 말이 달라지고, 책임지겠다고 해놓고 무슨 책임을 졌는지 애매모호해진다는 것 아니겠나. 그걸 이번에 깨야 우리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실 거다."

- 2018년 당선된 오 시장은 1995년 지방선거 도입 후 23년만의 첫 민주당 소속 부산시장이었다. 힘겹게 얻어낸 결실임에도 무공천 주장을 하는 건 악화된 부산 민심이 반영된 건가.
"어차피 후보 내봐야 지는 선거일 테니 내지 말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부산 민주당으로서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 일어났고, 아예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만들자는 취지다."

-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도 내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인가.
"같은 맥락에서 서울시장 후보도 안 내는 게 맞다."

"후보 내려면 당헌까지 바꿔야... 176석 민주당, 오만해보여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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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인 전재수 의원이 내년 4월로 예정된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남소연


- 당내에선 2022년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치러지는 대형 보궐선거를 포기할 수 있냐는 현실론도 있다.
"물론 현실 정치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부산시장뿐만 아니라 서울시장 보궐선거까지 합쳐지면서 더 난감해진 측면도 있다. 내년 보궐선거가 대선 비슷하게 판이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정치의 계절이 앞당겨 온 거다. 정당의 존재 이유 자체가 선거에서 후보를 내고, 승리시키고, 그 후보를 통해 당의 철학과 비전을 행정·예산·법률을 통해 실현시키는 것 아니겠나.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보궐 선거에 후보를 공천하는 건 결국 단기적 이해관계에 집착하는 거라고 본다.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명분을 틀어쥐고 가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던 것 아닌가(전 의원은 노무현 청와대 시절 행정관·청와대 2부속실 실장을 지냈다). 노 대통령은 끊임없이 손해 보는 장사를 했지만 늘 명분을 쥐고 있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큰 정치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의 민주당도 눈 앞에 보이는 대선이나 정부 후반기 국정 주도권에 얽매이다 보면 오히려 스텝이 꼬일 수가 있다. 8월말이 되면 당의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이 부분에 대한 논의의 장이 마련되지 않겠나. 그때도 활발하게 참여하면서 나름의 주장을 해볼 생각이다."

- 당권 주자인 김부겸 전 의원은 15일 "만약 당원들의 뜻이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이라면 필요에 따라 당헌을 개정해 후보를 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무공천 조항인 당헌 96조 2항의 개정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이다. 어떻게 보나.
"당헌을 바꿔야만 보궐 후보를 낼 수 있는 게 맞다.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성폭력 문제가 '부정부패 사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일부의 해석도 있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다. '부패'는 아니라 치더라도 '부정'은 맞지 않나. 게다가 뒤에 '등'도 붙어있다. 특히 민주당은 공천 심사 때도 성 비위를 중대 결격사유로 봐왔다. 만약 후보를 내려면 당헌 개정이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후보를 내는 것 자체도 부담인 상황에서 당헌까지 바꿔가며 후보를 낸다는 건 더더욱 당에 부담이지 않나. 자칫 우리 당이 176석을 갖고 오만해졌다는 식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하는 모습 아닌가."

- 당헌에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무공천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박원순 시장 건은 사안이 얼마 안 됐지만, 오거돈 시장 건은 벌써 석 달이 흘렀다. 오 시장 사건 직후에도 보궐선거 후보 공천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는데도 아직까지 부산시장 공천에 대한 민주당 입장이 나오지 않은 건 무책임한 것 아닌가.
"무책임한 것 맞다. 다만 박 시장 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부산 민주당 쪽에선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방향으로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뤄가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모여서 안건을 상정하고 결론을 내린 건 아니지만 대체적인 합의가 이뤄진 상태였다."

- 또 다른 당권 주자인 이낙연 의원은 보궐선거 공천 여부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데.
"말씀하실 때가 되면 말씀하시지 않겠나. 아마 이 문제에 대해 각 후보들이 어떤 입장을 가지느냐도 당대표 선거 표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의원도 당대표 선거가 끝날 때까지 입장을 유보하긴 어려울 거라 본다. 후보들 입장에선 열성 지지자와 일반 국민들 사이에 여론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어려움도 있을 거다."

- 권인숙 의원 등 당내 일각에선 서울·부산시장 자리가 사실상 성폭력 문제로 공석이 된 만큼 여성 후보를 내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과연 국민들이 진정성 있게 보시겠나.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포장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실 거다. 만약 후보를 내려고 한다면 절차와 규정에 따라 공천하는 게 맞지, 인위적으로 여성 후보를 내는 건 적절하진 않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민주당 소속 후보를 내지 말고 진보 성향의 무소속 시민 후보를 내면 어떻겠냐는 주장도 아주 나쁜 꼼수다. 진정성을 토대로 결단하고 정면 돌파할 일이지 어설프게 포장하거나 꼼수를 쓸 사안이 아니다. 그러다가 두 번 욕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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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부산 북·강서갑)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 의원은 2006년 부산 북구청장 선거와 2008년, 2012년 부산 북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선거에서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떨어지다 3전4기로 2016년 4.13 총선에서 제20대 부산 북·강서갑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20년 4.13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 현재 더불어민주당 부산광역시당 위원장이다. ⓒ 남소연

 
#전재수 #민주당 #박원순 #오거돈 #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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