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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으로 꼽히는 독일 주택정책... 진짜 주목해야 할 부분

독일 사회주택의 명과 암

등록 2020.07.20 14:38수정 2020.07.2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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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송파구 신천동 파크리오 아파트. ⓒ 연합뉴스


7월 15일 국회에서 개최된 부동산 당정협의 회의에서 진선미 의원은 "주택이 더 이상 투기 대상이 되지 않고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이 좌절되지 않고 실소유자가 안정적 주거를 유지하도록 국회와 정부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여서 "양질의 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구체적인 수치와 시기를 명시해 국민에게 설명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충분한 홍보 방안을 마련해달라"는 주문을 했다. 결국 저렴한 양질의 주택의 공급을 통한 주거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말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의 1997만 9천 가구 중에 1123만 4천 가구만이 주택을 소유하여 주택 소유율이 56.2%에 머물고 있다. 특히 가구주가 30세 미만인 경우는 11.3%, 40세 미만의 경우는 42.1%만이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다. 또한 1인 가구의 경우는 29.1%만이 그리고 한부모와 미혼 자녀가 있는 가구는 49.3%만이 집을 소유하고 있다. 그 나머지 조건에 해당되는 가구는 모두 평균 주택소유율(65.2%)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현재 약 870만 가구가 집이 없다.
 
한편으로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2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219만 2천명으로 전체의 15.6%에 달한다. 이 가운데 2채는 172만 1천 명(12.3%), 3채는 28만 명(2%), 4채는 7만 4천 명(0.5%), 5채 이상은 11만 7천 명(0.8%)이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모두 1채를 제외한 나머지 집을 판다고 가정하면 약 700만 채의 집이 시장에 나오게 된다. 이 물량을 단순히 평균 주택가(2억5천6백만 원)로 계산해 보면 약 1792조 원에 이른다. 2018년 예산 429조 원의 4배에 이르는 돈이 자기가 살고 있지 않은 집에 묶여있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물량으로도 무주택 가구의 수요를 다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200만 채 정도의 집을 추가로 신축해야 한다. 더구나 1인 가구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상황이라 집의 수요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본격적인 인구 감소는 2050년 이후에나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집 수요는 꾸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시장에 집이 나와도 현재 무주택자들이 다 소화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평균 주택가 2억5천6백만 원은 주택 자산 가액 10분위 표에서 7분위에 해당되는 비교적 높은 금액이다. 2018년 근로자 평균 연봉 3634만원의 7배가 되는 액수이다. 특히 서울의 소득대비 중위주택 집값(PIR)은 2019년 기준 21.1이다. 평균 연봉을 21년 모아야 약 9억인 서울의 중위 주택을 구매할 수 있다는 소리이다.
 
결국 기존의 주택 거래 활성화가 아닌 공공임대주택의 보급만이 합리적인 대안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공공임대주택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에는 약 126만 호의 공공임대주택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저렴한 것이 영구임대주택이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 임대료 10만원 미만의 조건이다. 그러나 대부분 전용면적 40m2 이하로 거실 겸 방 1개, 작은 방 1개, 그리고 화장실과 주방이 전부이다. 양질의 주택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나마 겨우 21만 채 정도만 확보된 것이 현실이다. 대책은 무엇일까? 좋은 집을 많이 지어 무주택자에게 저렴하게 보급하는 것뿐이다.
 
좋은 집은 단순히 그 크기와 건축 자재의 질과 건설업자의 양심으로만 세워지지 않는다. 국가의 바른 정책, 사회의 건전한 이념, 개인의 도덕성이 더해져야 비로소 좋은 집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여러 요소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법과 제도를 포함한 주택 정책이다. 여기에 독일이 자주 모범 사례로 인용되곤 한다.

독일의 주택 시장은 오랫동안 매우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왔다. 2008년의 금융위기로 전세계에 경제 위기가 왔을 때도 독일은 부동산 시장만이 아니라 경제 자체에서도 심각한 타격을 받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43% 정도인 낮은 자가 보유율이 이러한 긍정적인 결과를 낳은 것이다. 주택 시장의 안정은 국민들의 자가 보유 욕구를 억제했는데 그러한 안정은 독일 특유의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 제도의 운영을 바탕으로 가능했다. 이러한 사회주의적 요소와 자본주의적 요소가 조합된 사회적 시장경제가 주택 시장에서 그 특성을 잘 발휘한 것이 바로 독일의 부동산 시장의 안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독일 특유의 사회주택(Sozialwohnung)이다.

지난 몇년 간 집세 수직 상승... 더 이상 천국이 아니다
 
그런 독일에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지난 몇 년 동안 부동산 가격과 집세가 급격히 올랐다. 그래서 베를린 시정부의 경우 집세를 5년 동안 동결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런데 바이에른주의 주헌법재판소는 집세를 6년 동안 올리지 말도록 해달라는 시민들의 헌법 소원을 기각했다. 기각 취지는 집세를 제한할 기존의 법제도가 있기에 헌법 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노르드라인베스트팔렌주와 니더작센주에서도 시민들이 집세의 동결을 추진하였으나 역시 법원의 판결로 제동이 걸렸다. 집세는 주정부 차원이 아니라 연방 정부 차원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독일세입자연맹 회장인 시벤코텐(Lukas Siebenkotten)은 성명을 내고 다음과 같이 불만을 토로하였다.

"뮌헨에서 새로 임대차 계약을 맺을 경우 현재 월세는 1m2당 18.31유로이다. 이런 폭리나 다름없는 월세는 상도덕에 어긋나는 것으로 우리 나라 사회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다."
 
18.31유로면 통상적으로 4인 가정이 선호하는 전용면적 83m2(25평)의 집의 월세가 1520유로(약 200만 원) 정도라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전기세 물세와 같은 이른바 부대비용(Nebenkosten)은 제외되어 있으니 실질적 집세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독일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현재 독일 정규직 임금 노동자의 평균 월급여가 3771유로(약 519만 원)이다. 참고로 남성은 3964유로 여성은 3330유로이다. 남성의 평균 급여로 계산해도 부대비용을 제외하고 38.3%나 된다. 게다가 여기에서 평균 49.2%에 이르는 세금과 준조세를 빼고 나면 사실 월세로 월급이 다 나간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이다.

평균 임금을 받는 부부가 자녀 2명과 살아갈 경우 월세를 제외한 가처분 소득이 2000유로가 안 된다. 한화로 250만 원 정도의 돈으로 4식구가 먹고 살아야 한다. 이 독일 부부가 45년간 일하고 받는 월평균 연금은 1441유로(약 198만 원)이다. 절반 이상이 집세로 나가야 할 판이다. 물론 독일에서 뮌헨이 부동산 가격이 가장 높은 도시이니 표준적인 가격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도시도 월세에 큰 자이가 나지 않는다.
 
2015년 이후 독일 부동산 가격은 전국적으로 17.7% 상승하였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베를린의 경우 2014년에서 2019년까지 부동산 가격이 69%나 상승하였다. 특히 2019년과 2020년 사이에는 무려 13.07% 폭등하였다. 현재 베를린의 평균 주택 가격은 1m2당 4578유로(약 630만 원)이다. 전용면적 83m2(25평)의 집의 경우 약 38만 유로(약 5억 원)에 이른다. 평균 임금을 받는 사람이 한 푼도 안 쓰고 10년 동안 모아야 살 수 있는 금액이다. 위에서 예로든 뮌헨의 경우는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2020년 기준 뮌헨의 평균 주택 가격은 1m2당 7644유로(약 1052만 원)이다. 전용면적 83m2(25평)의 집의 경우 약 64만 유로(약 8억 5천만 원)에 이른다. 2019년과 2020년 사이에 9.14%나 상승하였다.
 
도대체 독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현재 독일 주택 시장에서 사회주택(Sozialwohnung)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15년 동안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2006년에 209만4200채에 이르던 사회주택이 2018년에는 117만6500채로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이 추세는 가속화 되고 있다. 사회주택은 일반 건축 업자도 국가의 재정 지원으로 지을 수 있는 대신 의무적으로 30년 동안 저렴한 월세로 임대해야 한다. 그러나 30년의 기한을 채운 집 주인들이 이를 시장에서 거래하면서 그 숫자가 줄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부터 새로운 사회주택 건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2019년 기준으로 30년 의무 기간에서 벗어난 사회주택은 7만 채에 이르는 데 비하여 새로 지은 것은 2만7천 채에 불과하다. 그래서 좌파당의 레이 의원(Caren Lay)은 100억 유로(약 13조 7천억 원)를 투자하여 25만 채의 사회주택을 건설할 것을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레이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독일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약 500만 채의 주택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현재 독일에는 약 4223만5000채의 집이 있다. 그리고 2015년 기준 독일의 약 4천만 가구의 41.4%가 1인 가구인데 이들 가운데 72.4%가 자기 집이 없다. 이들은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 가구 전체 가운데에는 57%가 자기 집이 없다. 이들도 소득의 25% 정도를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거비가 소득의 40% 이상인 가구도 15.6%에 이른다. 집에 관하여 독일은 더 이상 서민들의 천국이 아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경제 부흥 시기부터 부동산 시장의 안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회주택의 개념의 정립은 사실 바이마르공화국 시절부터 시작됐다. 또한 오늘날의 사회주택의 표준적인 틀은 나치 시절에 확립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에서는 국가 주도의 조립식 주택 건설을 통하여 주택 문제를 해결하였다. 반면에 서독에서는 1949년부터 긴급조치로 강제주택관리정책(Wohnungszwangsbewirtschaftung)을 실시해 임대차계약의 유지와 임대료 규정 준수, 사유 주택의 임대 전환을 강제로 시행하였다. 그럼에도 약 550만 채 정도의 주택이 부족하자 1950년 사회주택법을 제정하여 국가 재정으로 1959년까지 매년 32만7000 채의 주택 건설을 추진했다.

여기에 더해 270만 채의 주택이 민간에서 건설됐다. 이로써 주택 수요가 충족되었고 인구 증가율도 1%대로 줄어든 1960년대에는 국가 재정 지원을 받은 주택 건설도 급격히 축소됐다. 이리하여 1960년 말부터는 주택 건설이 아니라 빈민층의 주거 안정을 위한 직접 지원 정책을 추진했다. 1971년부터 독일 연방 정부는 세입자 보호 정책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세 감면 정책과 건축 자금 지원을 통하여 특히 자녀가 있는 국민의 주택 구매를 독려했다.

이러한 정책 변화의 여파로 사회주택의 신축은 급격히 줄어들어 1979년에는 10만9000채에 불과하였다. 1980년대에는 더욱 줄어 연간 7만4000채의 사회주택의 신축이 이루어졌다. 독일 정부는 주택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져 더 이상 사회주택의 신축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통일이 되자 구동독지역에서 몰려온 사람들을 위한 집이 부족한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독일 정부는 다시 사회주택 신축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동시에 구동독 지역의 경제적 문제로 생겨난 빈민들의 주택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이를 위하여 무엇보다도 주택 구입 지원과 세금 감면 정책에 많은 예산을 투여했다.

집을 시장에 맡겨버린 결과

그러나 1998년 슈뢰더를 총리로 하는 사민당과 녹색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독일 주택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게 된다. 이른바 시장 친화적인 주택 정책, 곧 집을 부동산 시장에 맡기는 정책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활용해 온 사회주택 정책이 2001년에 거의 폐지되다시피 했다. 그리고 이른바 사회적 주거 공간 지원(soziale Wohnraumforderung) 정책이 사회주택 정책을 대체하게 됐다.

이른바 좌파 정권인 사민당과 녹색당 연정 정권이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통일 비용으로 위협을 받는 재정 건전성을 확보할 필요성 때문이었다. 슈뢰더 총리가 추진한 Agenda 2010 정책, 특히 독일 전통의 사회복지 제도를 근본적으로 뒤집은 Hartz IV는 결국 2005년 총선 참패에 따른 그의 실각을 가져오게 됐다. 그러나 이때에 정부가 특히 가난한 이들을 위한 주택 공급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결과로 현재의 부동산 가격 상승과 빈민들의 주거 불안을 야기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는 슈뢰더(Gerhardt Schröder)를 총리로 하는 사회당과 녹색당 연정 정권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당시 슈뢰더가 영국의 블레어와 더불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실시하였던 여파를 현재 독일 국민들이 당하고 있는 것이다. 재정 적자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슈뢰더 정권은 주택 구매 지원 제도도 완전히 폐지하고자 했다. 2005년에 들어선 메르켈(Angela Merkel)을 수상으로 한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사민당의 이른바 대연정(GroKo) 정부는 그나마 남아 있던 주택 재정 지원 제도를 2006년에 완전히 폐지해 버렸다. 사민당의 이러한 우경화에 염증을 느낀 당내의 중도좌파 정치가들은 2007년 사민당을 떠나 동독 공산당의 후예인 민사당(PDS)과 연합하여 오늘날의 좌파당을 세우게 됐다.
 
사실 부동산을 사회주의 국가처럼 정부가 철저히 통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과거 동구 국가들이 국민의 자가 소유율을 거의 100%에 이르게 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주거 수준의 악화를 가져온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따라 시장에 완전히 맡기는 것은 더 위험하다. 부동산 투기는 빈부 격차 악화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의 기능에 맡기되 국가의 적절한 통제가 필요한 것이 바로 부동산 분야이다.

2008년 경제위기가 서브프라임의 붕괴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이 보여주듯이 신자유주의는 집만이 아니라 주택담보대출도 얼마든지 투기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집은 시장의 논리에 맡겨 투기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런 진실을 미국만이 아니라 사회적 시장경제 제도를 신봉하는 독일의 '실패한' 신자유주의 실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재정건전성과 시장의 논리가 맹목적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리면 맹목적 이윤추구를 지상목표로 삼는 신자유주의만이 판을 쳐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될 뿐이다.

국가가 적절한 간섭을 하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이다. 사회적 시장경제의 이론적 바탕인 사회윤리의 대원칙 곧 연대성과 보조성의 원칙을 지킬 국가의 의무를 소홀히 하여 결국 부동산 시장이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버린 독일을 보고 우리나라도 주택 정책에서 시장의 논리만을 따르면 어떤 결과가 야기되는지를 잘 배워야 할 것이다.
#사회주택 #공공임대주택 #부동산 투기 #사회적 시장경제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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