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가 열어준 '꼬평'을 소개합니다

부천 '모지리'에 39번째 꼬마평화도서관이 들어서다

등록 2020.07.19 20:18수정 2020.07.19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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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부천 중동시장에 있는 마을공동체 모지리(지혜를 모으는 마을)에 서른아홉 번째 꼬마평화도서관(아래부터 꼬평)이 문을 열었습니다.
 

꼬마평화도서관 명패달기 왼쪽 꼬평 살림지이 정채현님과 모지리 이장 김영주 님이 명패를 달고 있다. ⓒ 변택주


이 소식이 남다른 것은 서른일곱 번째와 서른여덟 번째 꼬평에 이어 신혼부부 나진우씨와 김현지씨가 오순도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내놓은 결 고운 평화 책으로 열리는 꼬평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그동안 꼬평 문을 열 때마다 <한국사편지세트(5권)>을 꾸준히 기증해온 박은봉 작가가 보낸 <한국사편지세트>와 <고추장을 담그는 아버지>, <실크로드 세계사>에다가 그림 치유를 하는 강인경 작가가 보낸 그림책 <나무명상>, <자음꽃씨>, <생각하는 사람>, <숨>이 더해져서, 십시일반으로 평화 책을 모아 평화도서관을 열겠다는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 뜻이 오롯이 담긴 개관식이라 더욱 빛났습니다.
  

개관 축하 공연 고등학교 2학년 모지리 주민 정도현 님이 통기타를 치며 '톰보이'를 부르고 있다. ⓒ 변택주

 
개관식은 모지리 마을 주민 열서너 사람이 모인 가운데 고등학교 2학년 정도현님이 통기타를 치면서 '톰보이'를 부르며 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내가 라면을 먹을 때>와 <나는요,>를 함께 읽었습니다.


그다음이 정말 중요한데요. 모지리에는 그림책을 돌아가면서 소리 내어 읽고, 그림을 그리거나 형상을 만들어 느낌을 나누고, 마음 깊숙이에 똬리 틀고 있는 걸림돌을 넘어서는 글과 그림을 나누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날이 마침 그날이었는데, 어린왕자 다섯 번째 꼭지 '바오밥 나무이야기'를 나눠 읽으며 어떻게 해야 저마다 마음에 자리 잡은 바오밥 나무를 없애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과거형으로 써서 나눴습니다.

이 꼭지에서 어린왕자는 "좋은 식물에는 좋은 씨가 있고, 나쁜 식물에는 나쁜 씨가 있어. 그 가운데 하나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땅속에 잠자코 있지. 처음 자라날 땐 수줍어하며, 사랑스럽게, 해코지하지 않고 해를 바라보며 자라. 이 가지가 무나 장미 덤불이라면 마음대로 자라나게 할 수 있지만, 나쁜 식물이라면 빨리 뽑아내야 해"라고 말합니다. 바오밥 나무는 뿌리를 넓고 굵게 뻗어서 어린왕자가 사는 별을 망가뜨릴지도 모를, 나무로 나옵니다

모지리 사람들은 콧등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도 하고 눈물을 찍어내고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마음을 나눕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살아가는 데 거추장스러운 것이라면 뿌리째 뽑아 버려야 시원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모지리 사람들은 마음에 응어리진 것을 뿌리 뽑겠다고 달려들지 않고, 가만가만 살살 달래가며 살겠다고 합니다. 뭉클했습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갈림길에 섭니다. 우리는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은 고를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어린왕자를 읽고 마음 나누기 모지리 주민이 어린왕자를 읽고 설치미술이나 그림을 그리고 마음 속에 바오밥 나무 지우는 글을 읽고 있다. ⓒ 변택주

 
모지리는 명상가이며 미술가인 김영수님과 그림 그리기와 그림책 읽기로 사람 보듬는 김영주님(모지리 이장)이 어깨동무해서 만든 동아리입니다. 모지리를 대표하는 시도 있는데요.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내가 어리보기가 되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는다. 저보다 못한 놈이라고 으스대면서. 내가 어리보기가 되면 마음씨 좋은 동무가 모인다. 불쌍한 동무를 아우르겠다며. 내가 어리보기가 되면 약삭빠른 동무는 다 떠난다. 도움받을 건더기가 없다고. 내가 어리보기가 되면 참으로 바보는 다 떠나고 참다운 동무만 남는다. 내가 어리보기가 되면 세상이 하늘나라로 보인다. 그냥 이대로가 좋으니까."


<바보 이반>에 나오는 말을 다듬었습니다. 어리보기는 어릿어릿해 똑똑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바보 또는 머저리라고도 부르는데요. '모지리'는 머저리를 일컫는 전라도 바닥나기말입니다. 이처럼 '모지리'에는 빈구석이 많다고 여기는 이들이 어우렁더우렁 모자란 데를 서로 메워간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바보 이반에 나오는 얘기를 곱씹다 보니 우리가 너나들이 어리보기가 되면 세상이 하늘나라처럼 평화로울 것 같습니다.

모지리는 집에서 만든 음식을 하나씩 갖고 와서 나눠 먹기도 하고, 커다란 방석을 깔아 놓고 마음 가는 대로 눕거나 앉아서 하모니카를 불기도 하며, 시를 읊고 책을 나눠 읽으며 얘기꽃 피우는 '개똥쇠똥 수다방', 우리 민화를 그리며 어울리는 '날나리 민화반', 몸을 깨워 살리는 '굼벵이 태극권', 누구나 화가가 되어 전시할 수 있는 '못그린 미술관'처럼 서로서로 북돋우며 살리는, 작아도 큰일이 날마다 소복소복 쌓이는 마을입니다.
 

못그린 미술관 초대전 '얼음배' 얼음배 작가 김영주 님이 물에 빠졌으니 건져 주지 않는 마을 사람들 마음을 읽고 마음이 놓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 변택주

 
종이 줍는 할머니가 화가로 데뷔하는 초대전을 열어 얘깃거리가 되기도 한 못그린 미술관에는 모지리 이장 김영주(개똥이)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린 그림 '얼음배'가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시내를 뒤덮은 얼음이 녹아서 떨어져 나온 얼음 조각을 타고 놀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며 비명을 지르는 개똥이를 동네 사람들이 구해줄 생각을 하기는커녕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한참을 소리 지르며 울다가 아무도 호들갑을 떨지 않는 모습을 보며 '아, 내가 안전하구나' 하는 믿음이 생겨 멋쩍게 일어서서 나왔다고 얘기하는 개똥이는 너와 나를 갈라 세우지 않는 '우리'라는 말에 믿음이 담겨있다며 웃습니다.

건물 2층을 빌려서 쓰는 모지리 사람들은 임대료도 십시일반 모아서 내는데요. 이곳을 찾아 "늘 모자라 어디에 끼어들기가 머쓱했는데 모두가 모자란다니 마음이 놓인다"라며 몸과 마음을 쉬는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바보 셋, 문수 지혜'라는 절집에서 내려오는 말이 떠오릅니다. 문수보살은 절집에서 슬기롭기로 으뜸인 분인데요. 어리보기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면 문수보살에 버금가는 슬기로움이 나온다는 말씀이지요.
#꼬마평화도서관 #결혼축하 평화도서관개관 #지혜를 모으는 마을 #마음평화 #어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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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 바라지이 “2030년 우리 아이 어떤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은가”를 물으며 나라곳곳에 책이 서른 권 남짓 들어가는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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