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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논란' 겪은 한국사회, 보수라는 이름의 '종교'

[주장] 현충원 안장 논란, 에밀 뒤르켐의 종교사회학을 통해 읽다

등록 2020.07.21 10:44수정 2020.07.2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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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 다섯번째) , 주호영 원내대표(왼쪽 여섯번째) 등이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고 백선엽 장군 영결식에서 헌화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 공동사진취재단

 
백선엽 전 육군 대장이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그러나 백선엽 전 대장의 현충원 안장은 여전히 논쟁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보수정치 세력은 백 장군의 6.25 전쟁 활약을 조명하며 그가 없었다면 현재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반면 진보정치 세력은 그의 친일 전력을 지적하며 현충원에 안장될 기본적 자격도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인물 한 명에 대해 상반된 주장이 있던 사례는 많지만, 백 전 대장의 경우처럼 대립이 첨예하게 이뤄진 경우는 드물다. 특히나 보수정치 세력인 미래통합당은 당 지도부와 중진들까지 나서서 백 장군 역사적 가치를 강조했으며 과거 MB 정부부터 백 전 장군 재조명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왔다.

두 진영 간 논쟁의 본질은 무엇이며, 보수정치 세력이 백 전 대장 재조명에 이렇게나 큰 노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백선엽 현충원 안장 논란의 본질은 한국 보수정치 세력이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내부적 연대 의식을 고양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숭배하는 자신들의 사회를 숭배하는 행위

이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제시할 수 있는 학자와 이론이 존재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캠과 그의 종교사회학 이론이 그것이다. 뒤르캠은 자신의 저서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를 통해 종교의 본질을 연구했다. 뒤르캠이 연구 대상으로 삼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토템숭배 사상을 관찰했을 때, 원주민들은 신성하게 생각하는 대상으로서의 토템(동·식물 등)을 숭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토템이 상징하는 자신들 씨족사회 그 자체를 숭배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뒤르켐은 펼친다.  

구체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씨족들은 자신들 씨족이 숭배하는 토템을 스스로와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뒤르켐은 주목한다. 예를 들어 한 씨족은 자신들의 씨족이 한 동물이 변신해 시작됐다고 믿는다. 이 씨족은 자신들 기원으로 상정하는 동물을 토템 상징물로 여기는데, 씨족 개인들은 자신들이 숭배하는 토템 상징인 그 동물 요소를 자신들이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씨족 구성원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해당 동물이 갖는 신성성을 숭배한다. 그 동물이 가진 신성성을 현 씨족 구성원들이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즉, 씨족 구성원들은 숭배하는 동물의 신성성을 믿음과 동시에, 이를 공유하는 자신들 씨족 자체를 신성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결국 뒤르켐은 토템종교의 근원에는 자신이 속한 씨족 사회를 숭배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것이 종교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신성한 대상을 숭배하는 게 아닌, 자신이 속한 사회를 숭배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라고 뒤르켐은 주장하는 것이다. 


상징을 찾는 한국 보수정치, 백선엽에 대한 추모와 숭배 사이

뒤르켐 주장을 백 전 육군대상 현충원 안장 논란에 적용해보면 이번 논란의 본질도 파악할 수 있다. 한국 보수정치 세력은 백 전 대장을 추모함으로써 백선엽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보수정치 세력, 즉 자신들 자체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백 전 대장이 그 대상이 된 이유는 그가 한국 보수정치 세력이 가지고 있는 요인과 중첩된 지점이 많은 인물이라는 점이 주효했다고 본다. 즉, 뒤르켐의 종교사회학 관점으로 보면 백 전 대장에 대한 보수정치 세력의 추모행위는 일종의 '종교 행위'인 것이다.

백 전 대장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는 일제강점기 만주군으로 활동한 친일 인사로 볼 여지가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백 전 대장은 6.25 전쟁 공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을 구했다는 반공 상징으로 볼 지점도 존재한다. 그는 군사정권 당시 건설부 장관이며, 현재는 큰 규모 건물을 보유한 자산가임과 동시에 사학재단의 일가이기도 하다.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성장주의 신화 요인도 갖춘 인물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보수정치 세력 맥락과 맞닿아 있다. 보수정치 세력은 6.25 전공·반공주의를 통해 그의 친일 행적 논란을 주변부로 밀어내었다. 이들은 6.25 뒤 건설 중심 성장주의를 핵심 가치로 상정해 대한민국 경제성장 주역이 본인들임을 강조한다. 부차적으로 그들은 성장주의에서 자신들 능력으로 성공해 사학재단 일원이 됐으며 동시에 자산가가 됐다는 점을 자랑스레 여긴다.

한 마디로, 백 전 대장은 한국 보수정치 세력 상징을 모두 지닌 인물이다. 한국 보수정치 세력은 그를 성역화하고 상징화하면서 본인들 자체를 정당화, 혹은 성역화하는 전략을 취한다는 게 이번 백 전 대장 현충원 안장 논란의 본질이라고 본다. 

보수정치 세력의 종교화 전략, 성공인가 실패인가

그간 보수정치 세력의 종교적 상징은 반공주의와 성장절대주의 상징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반공주의'를 이어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산업화'란 영광의 상징을 이어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 모두 정치적 시민권이 사실상 박탈됐다. 그에 따라 보수정치 세력은 새 상징이 필요했고, 급하게 찾은 대상이 백 전 대장인 것이다. 

다만 보수정치 세력의 위와 같은 시도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백선엽이라는 인물 자체의 과오도 국민 질타를 받고 있지만, 반공주의와 성장주의라는 상징 자체가 이제는 한국 사회에서 숭배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정치 세력이 꾸준히 해온 백 전 대장 재조명이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그 방증이며, 더 나아가 극우 유튜버들과 협조했던 보수정당들에 대한 전 국민적 질타가 또 다른 증거이다.
  
2016년 20대 총선 이후 보수정치 세력은 4개의 전국단위 선거에서 모두 참패했다. 과연 한국 보수정치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그 시작에는 보수정치라는 세력을 쇄신하고 연대 의식을 창출해낼 수 있는 새로운 종교적 상징 채택이 선결과제가 될 것이다.
#백선엽 #정치 #종교 #보수 #뒤르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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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사회복지학 학사 졸업. 사회학 석사 졸업. 사회학 박사 수료. 현직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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