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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클럽발 코로나... '신의 한수' 뒤엔 그가 있었다

[코로나19와 인권활동가 ①] 이종걸 친구사이 활동가

등록 2020.07.22 07:38수정 2020.07.22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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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기는 우리 사회에서 배제되고 차별받아온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었습니다. 인권활동가들은 차별의 현장에서 함께해왔습니다. 코로나 이후 사회를 인권 사회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현장에 있는 인권활동가들의 고민이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19 인권단체 지원을 위한 긴급 모금 인권ON' 캠페인(https://www.onhumanrights.or.kr)을 진행하고 있는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소장이 인권활동가들과 만나 인터뷰한 글을 연재합니다. [기자말]
코로나19 상황이 벌써 반년째 지속되고 있다. 마스크는 이제 필수품이 되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버스도, 지하철도 타지 못한다. 실내에서도 많은 인원이 모이는 모임은 하기 어렵다. 실외에서도 거리 두기는 필수다. 코로나19 이후 낯설면서도 익숙해진 풍경이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혹시 감염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확진자가 되면 2주 동안 격리될텐데 무엇을 준비해야 하지? 내가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어 다른 이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중에도 사람들은 일을 해야 하고 밥을 먹어야 한다. 아프면 쉬라고 하지만 말이 쉽지 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른 이유로 활동을 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을 만나야 하고, 얘기를 들어야 하고, 회의를 거듭하며 활동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 인권활동가들이 있다. 그들을 만나 코로나19 이후로 달라진 활동과 고민을 들어보기로 했다.

첫 번째 인터뷰 대상자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이종걸 사무국장을 만났다. 지난 5월 초 연휴 기간 직후 터진 이태원 클럽 사태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들어보고 싶었다. 지난 6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묘동에 있는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만나 얘기를 들었다. 

26년 동안 이어진 '정모'도 못하고
 

이종걸 활동가가 속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1994년에 창립한 성소수자 인권단체이다. ⓒ 김민환

   
먼저 코로나 이후 달라진 점이 있냐고 물었더니 "정모(정기모임)을 올해 들어서 지난 6월 27일에 처음 했다"라고 답했다.

정모는 이 단체에서는 특별하다. 친구사이는 1994년에 창립된 국내 최초의 성소수자 인권 운동 단체이다. 친구사이는 20여 년 동안 매달 주로 마지막 토요일마다 열어온 정모를 건너뛴 적이 없었다. 정모에서는 활동을 공유하고 안건을 논의하며, 서로의 안부도 묻고, 새로 온 신입회원 소개도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었던 이들이 주말에 함께 모여 같은 정체성을 지닌 이들끼리 편하게 만날 수 있었던 자리였다.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살던 이들에게 정모는 해방감을 주지 않았을까? 친구사이는 단순히 친목 모임을 넘어 단체의 뿌리이고 줄기인 이러한 정모를 오랫동안 사수해왔다. 그런데 총회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이 모임을 올해 6월에 처음 한 것이다.


"매달 열리는 (정모를) 2월부터 5월까지 다 못했어요. 그래서 간만에 모였는데 27명 정도가 왔어요. 사무실 옥상에서 플라스틱 의자를 깔고 거리두면서 모임을 했죠."

페이스북 라이브로 비대면 온라인 회의도 시도를 해봤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얼굴 보고 만나는 것보다 못하다. 친구사이에는 다양한 소모임이 있다. 아마도 가장 많이 알려진 게 게이합창단 '지보이스(G-VOICE)'다. 
  
"지보이스는 지금 공연을 준비하는 상황인데 연습실 잡기가 쉽지 않아요. '마린보이'는 수영장을 이용해야 하는데 수영장이 다 폐쇄되어 있는 상황이라 모임을 못 하고 안산 둘레길 산책이나 하고 있어요."
  
모이고 싶은 욕구가 강하지만, 모임이 두렵기도 하다. 이들이 모이는 걸 두려워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동성애자들이 에이즈를 퍼트린다'는 잘못된 편견으로 혐오 대상이 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낙인 받은 경험이 있기에 혹시 게이들이 모여서 감염이 확산되었다는 소리가 나올까봐 코로나19 상황에서 노심초사였다.

코로나19 이후에 이종걸 활동가는 아침 출근 시간을 한 시간 더 당기고, 좋아하는 술도 가급적 입에 대지 않는다.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서 집 근처 경춘선 숲길을 걷는다. 이 상황을 자신이 건강하게 버텨내야 게이 커뮤니티를 지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터질 게 터졌다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이종걸 활동가. 지난 5월 초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상담하고 방역 당국과 소통하고 언론 대응을 하는 등 다급한 상황을 보냈다. ⓒ 김민환


그런데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을 때 결국 '터질 게 터지고야' 말았다. 지난 5월 초 황금연휴 기간이 끝나고서다. 방역당국도 초긴장했던 그 순간을 이종걸 활동가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태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업장들이 전반적으로 문을 열게 되는 시기였죠. 그런데 5월 6일 오후 11시 해당 클럽이 SNS 계정을 통해 클럽에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사실을 알렸어요. 커뮤니티 익명 게시판에서 조롱이나 비난이 있었고, 다음 날 오전 7시경에 국민일보에서 이태원 게이 클럽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기사를 내보냈죠. 그 보도 이후로 40여 개 인터넷 언론에서 같은 기사를 계속 인용해 가지고 기사가 나왔고."

다급한 상황이었다. 연휴 때 클럽을 다녀간 사람들에 의해서 전국적으로 감염 확진자가 속출하자 방역당국은 초기에 집합금지 명령을 신속하게 발령하고, 다녀간 사람들을 추적했다. 클럽을 다녀간 사람들은 자신의 동선이 공개되는 게 가장 두려우니까 자꾸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관련 기사: 국민일보와 무책임한 언론들이 만든 아수라장 http://omn.kr/1nkk6)

성소수자 단체들은 먼저 긴급하게 '국민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에서 특정 성정체성을 드러낸 기사는 방역에 절대 도움이 안 된다'는 취지의 성명을 냈고, 20여개 단체들이 모여 5월 11일에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대책본부'(이하 대책본부)를 만들어 친구사이에 상황실을 두었다. 그리고 급하게 서울시 방역당국 관계자들을 만났다. 다행히 감염병 관리 담당자가 이전에 HIV/AIDS에 대한 기본 이해가 있어서 말이 통했다.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이종걸 활동가. 지난 5월 초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상담하고 방역 당국과 소통하고 언론 대응을 하는 등 다급한 상황을 보냈다. ⓒ 김민환

  
"대책본부 주요 활동 목표는 커뮤니티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 상담을 하고, 방역 당국과 소통을 해야 했고, 언론 대응을 급하게 해야 했어요. 익명 검사를 서울시가 발표하고 그다음에 경기도에서도 진행이 되었잖아요. 차별과 혐오 없는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이런 메시지가 나왔던 거죠."

그렇게 익명 검사라는 '신의 한 수'는 발 빠르게 움직인 성소수자 단체들의 대응 덕에 나올 수 있었다. 방역당국이 '차별과 혐오는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익명 검사를 보장하겠다고 하자 클럽을 방문한 이들이 진단검사를 자발적으로 받으러 나왔고, 그렇게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매우 다행이었다.

경험이 있는 단체와 활동가들이 없었다면, 그리고 단체의 제안에 방역당국이 호응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을 거다. 그 뒤로 대책본부 상황실인 친구사이 사무실은 상담 전화로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폭주하는 전화는 그만큼 불안한 게이 동성애자들이 이 단체와 활동가들을 믿고 고민을 털어놓았다는 얘기다.

"이때가 사실 인권단체들의 또는 인권활동가들의 '효능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요. 뭔가 대응을 바로 해야 했고, 대응을 통해서 뭔가 변화가 있었고, 그런 변화들을 시민들이 조금은 확인하게 됐죠. 커뮤니티 일원들이 '아, 이래서 인권단체가 필요하구나' 이런 걸 느끼게 하는 데 있어서 사실 중요한 순간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국가의 인권 정책을 만들 때 좀 더 시민들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고 비판해야 되는 부분이 확실히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어요."
 

그는 이런 소중한 경험을 곧 백서로 정리한다고 한다. 다급한 상황에서 경험이 축적된 인권단체와 활동가의 존재가 두드러졌던 경험들이 집약된 백서 하나는 필요할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혐오와 차별 받으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한 성소수자들의 이런 경험은 우리 사회 약자들과 소수자들에게도 공유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백서는 방역 당국에도 꼭 필요할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최소의 장치 
  

성소수자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마음으로 이종걸 활동가가 이태원 ‘킹 클럽’ 앞에서 무지개 리본을 휘날리고 있다. ⓒ 김민환


"이 상황 때문에 우리 스스로를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것들이 아니라, 우리는 서로 더 곁을 주고 공감하고 서로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끔 힘을 내는 상황으로 가야 한다고 계속 이야기 했어요. 커뮤니티 안에서 힘든 분들을 지원하는데 사용해 달라고 기금을 주신 분도 있어요. 그래서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하고자 신청자를 받는다고 모집공고 냈는데, 이 모집이 공개되자마자 확 몰렸어요. 드러내지는 않고 있었지만, 어려웠던 분들이 많았던 거죠."

그러면서 이종걸 활동가는 차별금지법을 최소의 장치라고 강조한다.

"위기 상황이나 재난 상황에서 얼마나 소수자가 취약한지 드러났어요. 차별금지법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본적인 장치인데 그걸 아직도 우리가 못 만들고 있는 거죠. 기본적인 장치에 반대하며, 혐오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들은 문제적이라고 생각해요."
   
차별금지법이 발의되고 제안되고 있는 요즘의 상황에서 이종걸 활동가의 이런 발언은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2003년부터 친구사이에서 활동을 했으니 이종걸은 올해로 18년차 활동가다. 그런 활동가들이 있고, 그 활동가가 속한 단체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어야 사회는 보다 건강해진다. 
 

이태원 ‘킹 클럽’ 앞에서 성소수자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마음으로 친구사이 이종걸 활동가(좌)는 무지개 리본을 휘날리고,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소장은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있다. ‘킹 클럽’은 1964년부터 시작된 오래된 클럽이다. ⓒ 김민환

 
그와 약 두 시간 동안 정신없이 얘기를 나누고 나와 점심을 먹은 뒤 이태원으로 넘어왔다. 굳게 닫힌 '킹 클럽'의 문 앞에 섰다. 그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강제적으로 드러나는 걸 두려워하는 성소수자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마음으로 나는 양손으로 무지개 깃발을 들었고, 이종걸 활동가는 무지개 리본을 휘날렸다.

'킹 클럽'이 언제 다시 문을 열 수 있을지는 아직은 모른다. '킹 클럽'이 다시 문을 열 때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조금은 덜해질까? 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는 날,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더 진보해 있으리라. 사람들이 보다 더 다양한 가치와 존재를 인정하는, 서로 존중하는 세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날을 위해 오늘도 분투하는 이종걸 활동가와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에 박수를 보낸다.
     
*인권재단 사람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권단체, 인권활동가를 지원하기 위한 '인권ON' 캠페인(https://www.onhumanrights.or.kr)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함께해주세요.
#인권재단사람 #친구사이 #이종걸 #박래군 #인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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