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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사태의 기원, 2015년 국회 속기록에 생생

[사기펀드가 된 사모펀드 ②] 규제완화 자본시장법 개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등록 2020.07.27 07:47수정 2020.07.27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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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펀드, 옵티머스 펀드 등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의 파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사태의 원인과 대책을 2회에 걸쳐 조명해볼 예정입니다. 두 번째로 사모펀드 사태로 이어진 자본시장법 개정안 입법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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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본관 전경 ⓒ 남소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우리 (정무)위원회 안으로 제안하고자 하는데 이의 없으십니까?"(정우택 당시 국회 정무위원장)
"없습니다."(일부 정무위원)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정 위원장)

지난 2015년 4월 30일, 국내 사모펀드 전반의 규제를 대폭 풀어주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허무하게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어선 순간이다.

사모펀드는 은행·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아 주식과 채권, 기업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해 운용하는 펀드를 말한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공모펀드와는 달리 사모펀드의 경우 비공개적으로 투자자를 모집한다. 그런데 당시 규제 완화를 통해 사실상 사모펀드를 공모펀드처럼 운용할 수 있는 물꼬가 터졌다.

이 같은 규제 완화로 인한 투자자들의 피해는 약 5년 뒤 폭발적으로 터져나왔다. 지난해 10월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의 파생결합펀드(DLF) 환매(계약해지) 중단 사건이 그 시작이었다. 투자자 3243명의 돈 7950억원이 묶였고, 당시 절반 가량이 손실될 것으로 예측됐다. 

비슷한 피해는 또 다시 불거졌다. 라임자산운용이 기획하고 신한은행 등이 판매한 라임펀드와 관련해 개인 4035명, 법인 581개사의 돈 1조6700억원이 묶여버린 것이다. 또 국책은행인 기업은행도 초고위험상품인 디스커버리펀드 판매로 물의를 빚었다. 다른 금융사에서도 독일헤리티지 파생결합증권(DLS), 이탈리아헬스케어 등을 판매해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문제의 시작

전문가들은 이번 사모펀드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지난 2015년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규제 완화를 꼽고 있다.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는 "사모펀드 문제의 단초가 된 자본시장법 개정은 권투시합으로 치면 상대를 때리는 것이 허용된 상황에서 칼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카카오뱅크 대표)은 앞서 지난 9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2015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사모펀드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당시 금융위원회의 잘못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사모펀드 사태를 초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어떻게 국회를 통과했을까. <오마이뉴스>는 2014년 11월부터 2015년 4월까지의 정무위 전체회의,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을 살펴봤다.


2014년 9월 5일 박근혜 정부는 사모펀드 규제체계 개편방안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 장벽을 낮춰 금융산업과 벤처산업을 활성화하겠다며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네 가지 내용이 개정안의 핵심이었다. 첫째 사모펀드의 설립규제를 사전등록제에서 사후보고제로 바꾸고, 등록만으로 전문사모집합투자업을 신설할 수 있게 했다. 둘째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적격투자자 개념을 확대 적용해 5억원 이상이면 직접투자가 가능하도록 했다.

또 일반 공모펀드 재산의 5% 내에서 사모펀드 투자를 허용하는 등 일반투자자의 사모펀드에 대한 간접투자를 일부 허용했다. 다시 말해, 일반투자자가 공모펀드에 투자했어도 이 돈이 사모펀드에 흘러들어갈 수 있게 했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사모펀드 운용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하나의 펀드에서 여러 자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펀드의 종류별로 적용되는 주요 투자대상에 대한 의무투자비율(50%) 폐지한 것.

국회에서 개정안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가 처음 이뤄진 것은 지난 2014년 11월 25일 정무위 전체회의다.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현 외교부 국제금융협력대사)은 관련 규제 완화안에 대해 "손실 감수 능력이 있는 적격투자자에 한해 사모펀드에 대한 직접투자를 허용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개괄적으로 설명했다.

이에 진정구 정무위 수석전문위원(현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대체로 타당하지만 적정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짧은 소견을 남겼다. 첫 회의는 이렇게 종료됐다.

최소투자금 5억원 고수하던 정부, 몰래 시행령 손봐
 

제329회 국회(정기회) 제2차 법안심사소위(2014.12.1) 회의록 갈무리. ⓒ 국회


이후 2014년 12월 1일 열린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좀 더 상세한 논의가 이어졌다. 사모펀드 최소투자금액 기준이 쟁점이었다. 금융위는 당초 개정안에서 적격투자자의 최소투자금액을 1억원 이상으로 하고 대통령령으로 5억원으로 규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 쪽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새누리당 소속 김용태 법안소위원장은 "(증권)업권에서 5억원은 너무 세다...(고 한다)"며 말 끝을 흐렸고,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2016~2017년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손실 감내 능력이 있는 기관투자가나 법인·개인으로서 5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사람에 대해서만 헤지펀드와 사모펀드(PEF)에 직접 투자할 수 있도록 제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래와 같은 대화가 오갔다. 
 
김용태: 부위원장님, 5억원이 너무 세다고 시장에서 반응하면 조금 더 조율할 이런 (여지가) 있어요?
정찬우: 그것은 일단 5억원 정도 해놓고 그 다음에 투자자 보호를...
김용태: 시작을 해놓고 나중에 문제가...(있다면 수정하겠다는 것인가.) 알겠습니다. 좋아요. 다음.

새누리당 쪽이 증권업계 입장을 대변하면서, 규제를 추가로 더 완화해달라고 요청한 셈이다. 이 같은 압박 탓인지 결국 정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일방적으로 사모펀드 최소투자금액을 5억원이 아닌 1억원으로 결정했다. 

당시 법안소위원으로 참여했던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법 자체의 문제보다는 그 뒤 이뤄졌던 시행령상 규제 완화가 더 큰 문제"라며 "(정부 초안대로 5억원으로 설정할 경우) 시장 활성화를 위해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하려는 것이 나쁜 일이라 보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회에서 정부 시행령 개정까지 챙기지 못한 것이 실수인데, 당시 국회 임기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다"며 "법에서보다 시행령에서 규제가 더 많이 풀렸고, 이후 자산운용과 관련해 아무런 규제가 마련되지 않아 현재의 사모펀드 사태가 불거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에서 진행된 각종 회의와 관련된 기록은 현재에도 국회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정부의 시행령 개정에 대한 기록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이처럼 시행령이 개정된 이후 은행 등 판매사들은 과거의 경우 전문투자자로 분류되지 않았던 약 1억원의 자산을 가진 고객들에게도 사모펀드를 팔 수 있게 됐고, 피해는 속출했다.

지난해 10월 금감원 중간검사결과 자료에 따르면 DLF 피해자 가운데 1억원대를 투자한 개인투자자가 전체(3004명)의 65.8%로 대다수였다. 또 3억원 미만의 경우 전체 피해자의 83.3%에 달했다. 만약 정부 초안대로 사모펀드 최소투자금액이 5억원으로 설정됐다면, DLF 피해자가 이보다는 더 적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정무위에서는 또 사모펀드 설립 규제를 사전보고제에서 사후보고제로 전환하는 문제도 다뤘다. 하지만 관련 논의는 짧게 이뤄졌고 정부안대로 사후보고제로 결론을 냈다. 결국 설립 규제 완화는 사모펀드 운용사 난립으로 이어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사모 전문 운용사는 217곳으로 집계됐다. 앞서 2015년 말에는 19곳에 불과했다.

묵살된 규제 완화 반대 목소리

당시 법안 심사 과정에서는 사모펀드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것에 비판의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나왔다.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기준 위원은 사모펀드 거래규모가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규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논의된 시점은 제329회 국회(정기회) 제4차 법안심사소위가 열린 지난 2014년 12월3일이었다. ⓒ 국회

 
2014년 12월 3일 열린 정무위 제4차 법안심사소위에서 김기준 위원은 "우리나라 사모펀드 시장은 침체돼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커졌다"며 "미국 등에선 공모펀드가 훨씬 많다, 금융위가 사모펀드 위주로 금융시장을 발전시키려는 정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사모펀드는 공모펀드와 다르다"며 "공모펀드는 적어도 사회적인 여러 규제 등을 감안하면서 투자하는데 사모펀드는 이익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의견에 새누리당 쪽은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다. 다음은 신동우 위원(새누리당)과 김 위원이 나눈 대화다.
 
신동우: 미국 금융당국에서는 규제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우리가 오히려 지금 규제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시장 형성이 안 되고...
김기준: 규제가 아직은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신동우: 규제가?
김기준: 네, 아직은요. 시장 상황이나 전체 규모를 보면 사모펀드로 인해 피해 사례도 많이 생길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면서 규제를 완화해야지 마구잡이로 완화할 문제는 아닙니다.

해가 바뀌고 2015년 1월 6일 열린 제330회 국회(임시회) 제1차 법안심사소위에서는 공모펀드의 사모펀드 투자 허용 문제를 놓고 공방이 오갔다. 김기준 위원은 "공모재간접펀드가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은 원래 입법예고안에는 없었는데 새로 생긴 조항으로 보인다"라며 "공모재간접펀드를 사모펀드에 간접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꼭 필요한가"라고 따졌다. 공모펀드에 투자한 일반투자자의 돈이 사모펀드에 흘러들어가면 공모펀드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였다.

정찬우 부위원장은 "사모펀드가 수익성이 더 좋아 보이지만, 재산상 요건(최소투자금액 5억원) 때문에 투자하지 못하는 일반투자자들을 위해서"라고 답변했다. 이 과정에서 정 부위원장은 엉뚱한 답변을 하기도 했다. 당시 공모펀드가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없도록 돼 있었는데도 "공모재간접펀드는 현재 재산의 5% 이내에서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김기준 위원이 "현재는 안 되어 있는 거 아니에요? 안 되어 있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라고 재차 확인하자, 정 부위원장은 "(앞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제330회 국회(임시회) 제1차 법안심사소위(2015.1.6)에서는 금융당국이 규제 완화를 이끌기 위해 잘못된 정보로 위원들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국회


정부는 특히 공모펀드의 사모펀드 재투자 규모를 재산의 5%로 제한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당시 안창국 금융위 자산운용과장(현 자본시장조사단장)은 "통상 주식에서는 한 종목을 10% 이상 가지지 못하게 하는 룰이 있다"며 "(5% 룰은) 그보다 훨씬 강화돼 위험이 적기 때문에 정부가 이를 허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2015년 4월까지 3차례 정무위 법안소위가 열렸지만 사모펀드 규제완화와 관련해 더 이상의 추가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2015년 4월 30일 제332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부 쪽 자본시장법 개정안과 의원들이 낸 개정안이 통합된 뒤 대안 법안으로 재탄생해 본회의를 통과했다.

견제장치 없는 금융위 

전문가들은 사모펀드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관련 규제 강화와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21일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로 본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향 토론회'에서 "사모펀드는 거대 전문 투자자들이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투자 대상과 계약 구조를 정하는 펀드인데 이를 벤처산업 활성화의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금융당국의 문제의식 자체가 허황된 것"이라며 "사모펀드 규제가 완화된 뒤 금융사고가 늘었고 이로 인해 투자자들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금융당국이 섣부른 규제 완화로 증권업계 발전을 오히려 저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 교수는 특히 "사모펀드 사태 이후 금융당국은 최소투자금액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엉거주춤 올리는 방안을 내놨다"며 "금융감독의 자율성 확보와 효율성 제고를 위해 금융위를 해체하는 등 감독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위가 정책 기능과 감독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어 견제 장치가 없다"라며 "사모펀드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할 때도 견제 기구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금융위의 정책 기능은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고 금융감독 기능은 독립된 기구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모펀드 #김기준 #김기식 #금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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