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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에서 이탈했다가 고발... 그는 왜 스스로 신고했나

[코로나19, 인권을 말하는 이유④] '무관용의 원칙'은 온당한가

등록 2020.07.21 17:00수정 2020.07.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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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인권대응 네트워크는 코로나19를 인권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대안을 제시하는 '코로나19 인권,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문제의식을 담아 글을 기고합니다.[편집자말]
[이전 기사] [코로나19, 인권을 말하는 이유③] '불륜''노래방 도우미'... 그들은 왜 루머에 시달려야 했을까 http://omn.kr/1obr3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자가격리자의 수는 지난 18일 오후 6시 기준 총 3만 3181명이다. 일상적으로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가격리된 상황이고, 그 누적 인원은 약 32만 명에 이른다(6월 12일 기준 32만 4160명).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자가격리 조치 외에도 예방적 격리, 시설 격리, 코호트 격리(동일 집단 격리) 등 다양한 명칭의 격리 조치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또한 자가격리자를 대상으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도록 하고, 전자팔찌(손목밴드)를 부착하도록 하는 등 전자적 감시를 위한 기기도 도입됐다.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앱(App) 화면. 앱을 설치한 자가격리자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스스로 진단하여 매일 2회 자동으로 통보하고, 위치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담공무원에게 알려준다.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위와 같은 격리와 감시 등 강제적 조치는 위반 시 엄중한 처벌을 예정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자가격리이탈자에 대한 '무관용의 원칙'을 발표하고 자가격리자의 이탈 사실이 확인되면 즉시 고발 조치를 하고 있다. 고발 조치 된 자가격리자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79조의3에 따라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격리와 감시는 어느덧 우리의 일상이 돼버렸다. 누구든지 격리와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처벌까지 받을 수 있게 된 상황이다. 누군가는 감염병 위기 앞에 격리와 감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강제조치와 이를 위반할 경우 부과되는 처벌이 감염병의 위기 앞에 시민들이 당연히 수용해야 하는 것이라 말한다. 과연 그러할까.

법적 통제가 부재한 격리와 감시 등 강제조치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르면 기본권을 제한하는 공권력 작용은 법률에 의해서만 허용될 수 있고, 법률에 의한 경우라도 기본권 제한이 필요 최소한이 되는 비례적인 경우에 한해 정당화될 수 있다. 현재 광범위하게 도입·시행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격리와 감시 등 강제조치는 그 자체로 사생활의 권리, 신체의 자유, 이동의 자유 등 기본권을 직접 위협하는 공권력 작용에 해당하므로, 그 조치가 법률에 의하지 않거나, 의하더라도 기본권의 제한이 비례적이지 않다면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가령 정부가 도입한 전자팔찌(손목밴드)는 시민단체 및 전문가들로부터 법률상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는 전자팔찌를 동의하는 경우에 한하여 부착한다며 법률상 근거 없이도 그 부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자팔찌의 부착은 그 본질이 부착자의 신체의 자유 및 사생활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의로서 허용될 수 있는 조치라 보기는 어렵다. 


나아가 정부가 전자팔찌의 부착을 거부하는 경우 시설격리 등의 불이익을 예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동의를 자발적 동의라 보기도 어렵다. 즉 정부가 도입한 전자팔찌는 강제적 조치로서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법률상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헌법에 위배되는 공권력의 작용이라고밖에 평가할 수 없다.
 

질병관리본부 자가격리 대상자 및 가족·동거인 생활수칙은 자가격리이탈자가 전자팔찌(손목밴드)의 부착을 거부하는 경우 불이익을 예정하고 있다. ⓒ 질병관리본부

 
한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격리조치의 법적 근거가 되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제1급 감염병이 발생하거나', '감염병 전파를 막기 위하거나,'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경우'만을 격리조치의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결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격리 조치는 격리되는 사람들의 기본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려 없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하에서 상세히 살펴보듯이 복수의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 노인 등이 수용돼 있는 시설을 '코호트 격리'라는 명칭의 격리 조치를 통해 광범위하게 봉쇄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게 향하는 강제조치의 피해

법적 통제가 부재한 격리와 감시 등 강제조치로 발생하는 피해는 오롯이 시민들이 부담한다. 특히 더욱 큰 피해를 입게 되는 집단은 격리가 적합하지 않은 환경에 놓인 사회적 약자들이다. 대표적으로 요양 시설 등에 이루어지는 '코호트 격리(동일 집단 격리) 조치는 엄격한 법적 통제 없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시설에 격리되어 있는 사회적 약자들은 격리로 인한 피해를 지속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코호트 격리는 동일한 병원체에 노출되거나 감염을 가진 환자군을 함께 동일한 장소에 격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 시설에 대한 코호트 격리조치는 외부로의 감염병 확산을 방지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설 내 감염병의 확산을 더욱 촉진시킴으로써 격리된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특히 치료환경을 갖추고 있지 않은 수용시설에 이루어지는 코호트 격리조치는 돌이킬 수 없는 참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령 지난 3월 경북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에 대한 코호트 격리조치는 다수의 정신 장애인들을 감염에 노출시키고, 사망에 이르게 한 참사로 이어졌다. 이처럼 엄격한 법적 통제 없이 이루어지는 코호트 격리 조치로 인한 피해가 결국 시설에 수용된 사회적 약자에게 발생하는 것이다. 

열악한 지위에 있는 자가격리이탈자 향한 무관용 원칙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11개 장애인단체가 지난 2020년 2월 26일 청도 대남병원을 비롯한 폐쇄병동에 이루어진 코호트조치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자가격리 또한 마찬가지다. 열악한 환경 놓인 이들에게 자가격리 조치는 더욱 가혹하다. 한 자가격리자를 변호한 적이 있다. 그는 고시원 방에서 이탈했다는 이유로 고발을 당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생존을 위해 이탈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구청 공무원에게 고시원 방이 취사가 불가능하다는 점, 경제적 상황상 배달음식을 주문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설명했지만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이탈 사실을 스스로 신고하고 사람이 없는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소통하던 구청 공무원은 결국 그를 자가격리 이탈자로 분류하고 경찰에 고발했다.

그에 대한 고발은 다행히 검찰 단계에서 불기소처분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그는 수사를 받는 내내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무관용 원칙에 따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한 경찰의 수사 결과와 자가격리 이탈자에 대한 비난 여론을 지켜보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또한 그에게 절실했던 지방자치단체의 생활지원금이나 격리 기간에 대한 지원금 등의 지급도 자가격리 이탈자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보류되어 생계 역시 더욱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이처럼 개별적 사정에 대한 고려 없는 자가격리 조치, 그리고 그 조치를 위반할 경우 적용되는 무관용의 원칙에 따른 고발은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고 있다.

위험이 아닌 피해자

코로나19의 확산과 감염은 개인의 책임이라 볼 수 없다. 감염병에 노출된 사람은 본질적으로 감염병의 피해자이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한다는 명목 아래 코호트 격리, 전자팔찌의 부착 등 필요 이상의 광범위한 격리와 감시 등 강제적 조치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무관용의 원칙에 따라 처벌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방역정책은 결국 감염병의 피해자를 시민으로서 신뢰하기보다 '위험'으로 인식하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강제적 조치의 대상이 되는 사람 모두가 감염병의 피해자로서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시민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격리와 감시 등 강제적 조치를 어떻게 강화할지가 아니라, 그 조치가 감염병 피해자의 기본권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그 조치가 열악한 지위에 놓인 사람을 더욱 열악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닌지, 기본권 제한이 필요한지, 과도하지 않은지 등이 세밀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상 미비한 강제조치의 요건은 보완·개선될 필요성이 있다.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코호트 격리조치는 다양한 강제조치 중에서도 그 발동요건이 법률에 의해 보다 엄격히 통제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자가격리 이탈자에 대한 처벌을 강조하는 정부의 무관용 원칙 역시 재고되어야 한다. 물론 고의적인 이탈 등 일부 법적 제재가 필요한 사안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제재를 위해 처벌을 앞세운다면, 감염병의 위기 속에 적절한 보호와 지원이 보다 필요한 사람들까지도 일률적으로 처벌받는 부당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탈이 발생한 경우 일률적으로 처벌하기보다는 이탈의 사정을 세밀하게 살핌으로써 근원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정책과 법률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가령 자가격리 조치의 대상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확대하는 등의 정책을 통해, 자가격리에 대한 개인의 자발적 참여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서채완 시민기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변호사입니다.
#코로나19 #격리 #코호트 격리 #인권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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