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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로 벽 긁어대던 조이, 결국 파양을 결정했다

지자체의 '독거노인-유기견 결연 사업' 확대... 사후관리-제도적 지원 필요

등록 2020.07.23 14:07수정 2020.07.2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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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과 반려동물. 언뜻 보기엔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존재가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정부는 독거노인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독거노인-유기견 결연 사업'을 하는 등 반려동물 양육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은 둘을 연결해주는 것에서 그칠 뿐, 사후 관리가 되지 않는다.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은 독거노인과 반려동물은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정부의 관리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잘 키워보려 했지만, 반려견에게도 못 할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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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반려 동물 결연사업을 통해 조이를 만났으나 사료비와 미용비, 예방 접종비 등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매달 지급되는 정부 지원금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최씨는 이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조이를 파양했다. (해당 사진과 무관함) ⓒ unsplash

   
강원도 속초에 거주하는 독거노인 최아무개(73)씨는 속초시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입양한 슈나우저 조이(6)를 파양 보냈다. 원인은 관리 불가능. 최씨는 속초시가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한 마리 당 최대 24만 원을 지원하는 독거노인-반려동물 결연사업을 통해 조이를 만났다. 입양 첫날, 최씨는 속초시의 지원으로 근처 동물병원에서 조이의 동물 등록과 각종 예방 접종을 무료로 받았다. 당시 조이의 입양 과정을 도왔던 속초 유기견 센터 봉사자는 "보호자께서 조이를 잘 키워보려는 의욕이 남다르셨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원금만으로 조이를 키우는 일은 불가능했다. 지원금은 한시적이었던 반면, 사료비와 미용비, 예방 접종비는 주기적으로 소비됐다. 매달 지급되는 정부 지원금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최씨는 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신체적 어려움도 뒤따랐다. 슈나우저는 견종 특성상 최소 30분 이상의 충분한 산책이 필요하지만, 2년 전 골다공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이어오던 최씨에겐 체력적인 부담으로 다가왔다. 목욕은 이 주에 한 번, 자식 내외가 찾아올 때만 시켰다. 주기적으로 산책을 하지 못한 조이는 땅에 머리를 비비거나, 벽을 긁어대는 스트레스성 행동을 보였다. 조이를 입양한 지 두 달, 최씨는 파양을 결정했다. 최씨는 "잘 키워보려고 했지만 아이에게도 못 할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독거노인-유기견 결연 사업' 확대... 사후관리 필요

지자체는 독거노인들이 겪는 외로움과 우울증을 완화해주기 위해, 독거노인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을 권장한다. 광주광역시, 대구광역시, 강원도 속초시 같은 경우 지방 자치 단체는 3년 전부터 '독거노인-유기견 결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시도 지난해부터 비슷한 유기동물 입양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구시는 2015년 한시적으로 입양 사업을 진행했다.

2021년부터 경기도 지자체도 이 사업을 진행한다. 서울시도 "노인과 반려동물간의 유대가 심리적 안정감에 도움이 된다"며 '유기동물-취약계층 이어주기 사업'을 실시 중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책이 '결연 사업'에만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사업을 시행하는 지자체들은 반려동물을 위한 사료비, 의료비 등을 지원한다고 했지만, 대부분 일회성 지원에 그친다.

경기도 도우미견 나눔센터에서 유기견을 입양하는 독거노인은 한 해 1300여 명이지만, 현실적으로 입양자가 반려견을 잘 키우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분양 이후 관리가 거의 이루지지 않기 때문이다. 6개월 간격으로 이루어지는 전화와 문자 체크가 전부인 지금, 반려동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독거노인들에게 양육 교육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반려동물 교육에 대한 지원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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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과 반려 동물, 언뜻 보기엔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존재가 독이 되고 있다. ⓒ unsplash

지난 6월,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을 찾았다. 불암산 자락에 있는 마을은 입구부터 인적이 드물었다. 골목길을 따라 굽이굽이 들어가 보니 지붕이 위 벽돌과 판자가 부서진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서울 중계동 백사마을 독거노인은 대다수가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 "외로우니 개라도 키워보라"는 주변의 제안에 덜컥 입양을 결심한 탓이다.


이들은 제대로 된 지식 없이 반려동물을 입양해 방치하고 있어 서로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충분한 지원과 교육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결연 사업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기자에게 "사람에게 쓸 돈도 없는 상황이다"며 독거노인 반려동물 교육 지원 사업에 대해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반려동물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이 없는 독거노인들은 무조건 자신을 희생한다. 김성호 성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러한 행동들이 오히려 독거노인-반려동물 모두에게 좋지 못하다고 말한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 임대 주택에 사는 홀로 사는 김미연(79, 가명)씨는 건강이 악화됨에도 반려견을 홀로 남겨둘 수 없다며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 그는 "내가 가면 우리 강아지는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며, 입원 치료를 권유하는 요양보호사의 말을 듣지 않고 있는 상태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독거노인들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반려동물 지원과 노인 복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김성호 교수는 "인간과 동물이 정서적 유대감이 형성되면 둘을 따로 떼어 놓고 문제에 접근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독거노인들은 자신보다 반려견을 더 먼저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들이 제대로 된 지식 없이 반려견과 함께 사는 경우 둘다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반려동물 교육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결연 사업에만 집중한다면, 위와 같은 사례처럼 독거노인-반려동물 모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며 우려를 표했다.

해외처럼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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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설립된 미국 최대 노인 복지 기관 JASA는 반려동물의 건강이 노인 복지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인지하고, 반려동물 관리에 보다 폭넓은 지원을 하기 위해 프로그램 PETS(Pets and Elder Team Suppot Project)를 실행하고 있다. ⓒ unspalsh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높은 해외의 경우, 이미 정부에서 노인 복지와 반려동물 복지를 연결한 복지 사업 HAB(Human Animal Bond)을 진행하고 있다.

1968년 설립된 미국 최대 노인 복지 기관 JASA(Jewish Association Serving the Aging)가 대표적이다. JASA는 반려동물의 건강이 노인 복지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인지하고, 반려동물 관리에 보다 폭넓은 지원을 하기 위해 프로그램 PETS(Pets and Elder Team Suppot Project)를 실행하고 있다.

기관은 독거노인이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소속 사회복지사를 노인의 집을 직접 방문케해 반려동물 양육을 돕는다. 매달 필요한 예방접종과 건강 검진을 알리고, 반려동물에 질병이 발견되면 직접 수의사에 전달해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회사가 반려동물 양육에 대한 지식을 교육하고 직접적인 지원을 해주면서, 노인들이 반려동물을 키울 때 얻는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약 8천여 명의 취약계층 노인이 지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2020년부터 서울남부자활센터는 '반려동물돌봄' 사업을 시작한다. 이 사업을 통해 노원구는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독거노인들의 양육 교육도 지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사업을 확대하기까지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김영희 사업추진 대표는 "사업을 확대하려면 예산이 필요한데 서울시에서 지원을 받지 못해 자체적으로 펀드를 조성해 운영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성호 교수는 "세계적으로 HAB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독거노인과 반려동물을 연결하는 복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려동물 지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부터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해당 글쓴이는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활동하는 봉사자입니다.
#반려견 #반려동물 #독거노인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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