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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외나무다리라면 원수라도 화해하겠네

[세상을 잇는 다리] 조화로운 개방과 폐쇄를 연출하는 영주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등록 2020.08.15 20:41수정 2020.08.1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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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누군가 자신의 등을 밟고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존재다. 또한 모든 것을 이어주는 존재다. ‘이음과 매개, 변화와 극복’은 자기희생 없인 절대 이뤄질 수 없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옛 다리부터, 최신 초 장대교량까지 발달되어 온 순서로 다룰 예정이다. 이를 통해 공학기술은 물론 인문적 인식 폭을 넓히는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기자말]

무섬마을 전경 서천이 내성천에 합류하여 본류를 이뤄 무섬마을을 휘감아 도는 전경. 드넓은 모래사장이 지천이다. 사진 하단 중앙에 S자 외나무다리가 우측 중단에 一자 외나무다리가 보인다. ⓒ 네이버블로그_geoho


영주시에서 남쪽으로 곧게 흐르는 서천이, 내성천과 무섬마을 북쪽에서 합류한다. 두 강이 만나 물이 급격히 불어나면서 내성천 본류를 이룬다. 구불구불 흐르는 내성천은 아름다운 곡류하천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동·북측 산을 중심축으로 물이 휘감아 돌아, 마을을 섬처럼 가둬 놓는다. 강가 양안엔 반짝이는 모래가 지천이다. 수정처럼 맑은 물이 긴 혀를 내밀며 흐른다. 흙과 바위를 깎아내고 다시 쌓아올려, 그림 같은 풍경을 빚어냈다.


무섬마을은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의 다른 이름이다. '물 위에 떠 있는 연꽃모양의 섬 같은 마을'을 처음엔 '물섬'이라 부르다 '무섬'이 되었다 전한다. 수도리(水島里)란 지명은, 무섬을 한자로 바꿔 쓴 것에 불과하다. 일제 강점기 흔적으로 보인다. 우리 땅 곳곳 아름답던 우리말 지명이 이때 사라져갔다. 그렇게 사라진 곳이 이곳 무섬마을 뿐일까?

무섬마을은, 우리네 전통 마을에서 이상적인 입지라고 여기는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철저히 따르고 있다. 동·북측엔 적당한 높이의 산이 마을 등허리를 받쳐주고, 남·서측엔 아담한 평지가 펼쳐져 있다. 특이하게 농토는 거의 없다.

금빛 모래가 지천으로 깔린 강가엔 제방을 빙 둘러 쌓았다. 북-서-남면으로 맑은 강물이 휘감아 흐른다. 가옥은 마을 남·서측에 배치되어 있고, 좌향(坐向)은 남서향과 남동향이다. 자연이 내어 준 지형에 최대한 순응한 얌전하면서도 앙증맞은 모양새다.

용이 날아오르는 것 같은 다리
 

무섬 외나무다리 여름풍경 내성천 드넓은 모래사장에 유련한 곡선의 외나무다리가 설치되어 있는 아름다운 모습. 금빛 모래사장에 드문드문 잡풀이 자라고 있다. 내성천 육화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 영주시청


무섬 외나무다리는 내성천을 길게 가로 지른다. 강 건너 남·서측 탄산리를 잇는, 길이 150m의 제법 긴 다리다. 높이 나는 새처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유려한 S자 모양을 하고 있다. 마치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양새와 닮아 있다.

다리는 수면을 중심으로 물위와 물속으로 각각 50cm씩 드러나 있다. 상판 역할을 하는 널판 넓이는 30cm 내외, 길이는 2m 내외다. 이런 단위구조물을 하상에 박아 끝을 잇대어 연달아 가면서, 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절해 다리를 가설했다. 이런 방식으로 긴 S자 형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무섬은 오랜 전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수수한 마을이다. 전통한옥이 잘 보존되어 있고, 이름난 일부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은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 집성촌이다. 유가의 전통 관습은 개방과 폐쇄의 적절한 조화에 있다. 전통한옥도 개방과 폐쇄를 동시에 추구한다. 솟을삼문을 통과하면 바깥 담 안으로 하나의 세계가 구축된다. 그중에 사랑채는 밖으로 열려있는 공간이다.

외부에서 방문하는 손님들이 사랑채를 무시로 드나든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안채는 철저하게 닫힌 폐쇄 공간이다. 사랑채와 안채를 가르는 중문과 중담이 개방과 폐쇄를 가르는 역할을 한다. 한옥의 참 멋은 이런 개방과 폐쇄가 적절하게 조화된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무섬 외나무다리 또한 개방과 폐쇄가 조화롭다. 마을 곳곳에 그런 흔적들이 묻어난다. 제방 안쪽으로 정갈하게 늘어선 집 대청마루에 서면, 곧장 외나무다리를 바라볼 수 있다. 다리로 들고나는 사람과 물산을 잘 살필 수 있는 배치다. 이때 제방이 절묘하게 경계이자 담장 역할을 맡아 준다.

다리 건너 마을로 들어오는 모든 것이 관찰된다. 그들이 긴 다리를 건너는 동안, 마을에선 다소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들고나는 길흉화복을 선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이를 통해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배척할 건 철저히 배척해 낸다.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겨울풍경 우산을 쓰고 눈 내리는 외나무다리를 건너 무섬마을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 ⓒ 영주시청


마을길도 제방을 중심으로 역(逆) 방사환상형(도시나 촌락의 가로망형상. 중심부에서 종적 연락은 방사선으로, 횡적 연락은 환상선으로 연결한 가로망)으로 구획되어 있다. 둥근 제방 길에서, 각 가옥으로 드나드는 골목을 안으로 오므려 구획했다. 모든 길이 제방을 통해 외나무다리를 향해 모아지고 다시 흩어지는 배치다. 마을 형상과 가옥 배치는 물론, 가로구획에서도 개방과 폐쇄의 조화를 추구한 세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무섬 외나무다리에서 맑은 물이 흐르는 내성천을 바라보고 있자면,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가 절로 떠오른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시는 우리 정서를 가장 잘 읊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려운 말로 '정한적 정서'라 부르나 보다. 정(情)과 한(恨)이 모두 서렸다는 말이다. 누구나 동감하는 쉬운 시어에 음·율이 무척 아름답다. 암울하고 폭압적인 식민지 시대,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계에 살고 싶어 하는 소박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자연에 대한 동경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진가 보다. 장삼이사, 가진 것 없는 백성들이 갖는 소박한 정서다.

무섬을 휘감아 흐르는 내성천은, 김소월의 시가 노래한 정서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표적인 곳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무섬 외나무다리를 건너보자. 건너면서 금빛 모래가 반짝이는 내성천 맑은 물에, 지친 마음 한 자락 살며시 흘려보내자. 넉넉하게 받아 안아 줄 것이다. 무섬마을과 외나무다리는 그런 곳이다.

지금 내성천은 몸살을 앓는 중
 

육화되어 빛을 잃어가는 무섬 부근 내성천 영주댐으로 육화되어 금빛 모래를 잃고 점차 육화되어 가는 내성천 모습. 무섬마을 남측 내성천 건너 편에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 네이버블로그_geoho


하지만 6년 전부터 내성천은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부드러운 모래는 유실되어 사라지고, 굵고 거친 모래들만 남았다. 맨발로 들어서기가 차마 민망할 지경이다. 물은 탁해지고, 드넓은 모래사장 곳곳을 군락을 이룬 흉측한 잡풀들이 차지하고 있다. '반짝이는 금모래'는 눈을 씻고 찾아야 할 정도다.

강이 파여 나가고 모래사장은 빛을 잃어가는 중이다. 영주댐으로 내성천 상류가 막혀버린 까닭이다. 물길과 모래 길이 막히자, 내성천이 급격하게 육화(陸化)되었다. 모두 흐름과 이음을 막아버린 결과다. 단절이고 비극이며 재앙이다. 추한 욕망이 빚어낸 참극이다. 고향을 잃어버린다는 게 꼭 이런 느낌일까?

몇 년 전 영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내성천 보존회'를 구성했다. 강을 지켜내려 힘겹게 싸우며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영주댐은 시작부터 부실이었다. 부족한 사업성을 회피하려고, 4대강에 슬쩍 끼워 넣었다. 완공되어 4년이 지난 2020년 현재, 댐으로서 기능은 전무하다고 본다. 댐에 갇힌 많지 않은 물조차, 녹조를 넘어 흑조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더구나 사질토 지반 위에 댐을 지어, 여기저기 갈라지려는 징후마저 보이고 있다. 결국 철거가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후손들에게 고이 물려주어야 할 산천을 무참히 훼손하는 짓은, 제발 이제 여기서 멈췄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사진을 제공해 주신 영주시청 담당과와 네이버블로그 geoho( 배사마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섬마을_외나무다리 #내성천 #영주댐_4대강 #엄마야_누나야 #내성천_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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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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