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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수돗물에서 유충이 발견되고 벌어진 일

물 끓여 먹고 필터 설치해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 언제까지 '각자도생' 해야하나

등록 2020.07.24 12:59수정 2020.07.2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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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수돗물 유충 발생과 관련해 인천 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들이 청라배수지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 인천시


위기는 처음에는 남의 일처럼 시작된다. 얼마 전, 인천 어느 동네에서 수돗물 유충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물속에 산다는 유충이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우리 집까지 올 리는 없으니까. 그런데 남 일이 내 일이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무슨 폐렴이 돌고 있다며?'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코로나19가 우리 곁에 와 있었듯이 말이다.

우리 동네 수돗물에서 유충이 발견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화성 이웃 아파트에서 유충이 발견되자마자 이 문제는 내 일이 되었다. '우리 어렸을 때는 냇물의 개구리알도 먹고 자랐다'라고 옛 추억까지 소환해가며 애써 현실을 긍정하려 했지만, 사진으로 본 그놈은 생각보다 징그러웠다.

게다가 이 놈은 우리가 늘 쓰는 수돗물에서 나왔다지 않는가. 2~3mm에 불과한 이 유충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마셔 버리는 것도 끔찍하지만, 양치를 하다가 유충이 내 치아 사이에 낀다거나, 샤워를 하다가 유충이 내 머리카락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온몸이 근질거렸다.

'... 나방파리는 잔류염소가 적합한 상수도 공급 체계에서는 살 수 없고 배수구, 하수구 등 주로 습한 곳에서 서식하며, 뜨거운 물이나 베이킹 소다를 정기적으로 배수구 등 서식지에 부어 주면 박멸이 가능합니다.'

우리 시의 유충 관련 안내문이 지역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이 안내문은 짧은 분량에 많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발견된 벌레의 이름은 '나방파리'이며 상수도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인천에서 발견된 깔따구와도 다르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동네의 상수도관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수도에 산다는 '나방파리'가 어쩌다 아파트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출몰했을까? 이 두 줄의 문장을 아무리 뜯어봐도 내가 궁금한 그 중간 과정은 생략되어 있었다. 어쨌든 각 가정에서 알아서 열심히 이 놈을 처리하라는 말로 이해했다. 

안내문의 내용대로 뜨거운 물을 배수구에 몇 번 부어봤다. 그러나 그것으로 유충에 대한 찝찝함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은 생수를 사 먹는 것이었다. 우리 집은 그동안 보리차를 끓여 먹고 있었다. 수돗물은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고 그 덕분에 플라스틱 쓰레기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환경 보호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내 입에 당장 유충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대용량 생수를 묶음으로 들여놓긴 했지만, 아까운 생수로 양치를 하거나 샤워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 또한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문득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 각개전투에 임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처 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는, 어린 자녀를 둔 지인들에게 생존 전략을 공유하자며 연락을 해 보았다.  

각자도생의 멀고도 험한 길

그들은 유충 출몰 초기에 모두들 한 번쯤은 해 보았던 방법부터 소개해 주었다. 그것은 '수돗물을 받아 놓고 유충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기'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시간과 체력의 소모가 심하고 매우 원시적이라서 전략 실행 당사자에게 '내가 뭐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을 주었다. 

비슷한 방법으로 '모든 물을 한 번씩 끓였다가 쓰기'가 있다. 이 방법은 요즘 날씨가 삼복더위라는 치명적인 단점까지 갖추는 바람에 빛의 속도로 사라졌다. 두 방법 모두 한 번 해본 사람은 있어도 계속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가 새롭게 떠오른 방법은 '아파트 관리실에 자체 필터링 시스템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하기'이다. 역시 전략은 진화한다. 유충이 아파트 저수조에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신문 기사의 내용으로 비추어 볼 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실제로 입주민들의 니즈에 빠르게 대응한 몇몇 아파트에서는 단지 내 정수시스템에 대한 안내문을 붙여 주민들의 불안을 잠재워 주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아파트는 몇 날 며칠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라면? 안타까워하거나 분노에 차 오를 필요는 없다. 이럴 때는 다른 전략으로 재빨리 갈아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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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 ⓒ pixabay


관리사무소의 공고문을 포기한 사람들이 선택한 전략은 '수도 필터 설치'이다. 아파트 물탱크에서 못 막으면 우리 집 수도꼭지에서라도 막아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수도 필터를 구입하려고 했다가 다들 두 번 놀란다고 한다. 한 번은 필터의 비싼 가격에, 또 한 번은 우리 집에 수도꼭지가 이렇게나 많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싱크대와 세면대에만 설치하면 되겠지 했다가 샤워기를 깜빡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다가 무심코 세탁기와 식기 세척기까지 수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동시에, 집안에 있는 모든 수도에 필터를 장착하려면 2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는 것도 함께 알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 필터는 주기적 교체 비용까지 추가되므로 경제적으로 매우 부담이 된다.  그러나 돈 몇 십만 원 아끼려다 유충이 우리 목구멍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들 앞 다투어 필터를 구입하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힘겹게 각자도생하고 있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다

이러다가는 이웃집을 방문할 때 "혹시 님 집에 수도 필터는 설치하셨나요?"라고 묻거나, 외식하러 갈 때 "이 식당은 정수기 물로 음식물을 조리하나요?"라고 물어봐야 하는 날이 곧 오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품절'이라고 쓰여 있는 화면을 하염없이 새로 고침 했던 것처럼, 생수와 필터를 사고 싶어도 못 사는 날이 올까봐 두렵기도 하다. 

불안이 의심을 낳고 그 의심이 우리의 일상을 파괴하는 경험을 우리는 또다시 하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 미세먼지 때문에 문을 꼭꼭 닫고 있어야 하고, 코로나19 때문에 집콕을 해야 하고, 수돗물 유충 때문에 생수를 사다 날라야 할까?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옆 사람과 마음껏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처럼, 우리는 수도꼭지를 세차게 틀어 그 물로 라면을 끓여 먹어도 불안하지 않았던 이전의 소중한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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