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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인간의 기본 욕구마저 충족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발칙 건강한 책방] 레슬리 도열의 '무엇이 여성을 병들게 하는가'

등록 2020.07.28 13:06수정 2020.07.2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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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 도열은 건강이 여성을 기준으로 다뤄지지 않음을 지적하고, 한편 여성의 건강에서도 제3세계와 북미유럽 간 차이에 주목하는 동시에 여성 건강의 공통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한울아카데미.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지만, 수백만 여성들은 이를 충족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중략) 이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자연적 현상이 아니다."(p.24) 

여성의 건강, 특히 여성노동자의 건강을 고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혹은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할까? 여기에는 어떤 딜레마 내지는 여러 가지 고민의 지점들이 존재한다. 한 작업장에서 남성노동자들보다 유독 여성노동자들의 건강이 위협받는다면 그것은 '여성' 몸의 취약성 때문일까? 아니면 작업장의 설비, 작업방식, 안전이 남성 노동자를 표준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일까?

후자의 문제를 지적할 경우 이것이 몸의 취약성으로 인식되지 않기 위해선 어떤 방식의 비판이 필요할까? 또 성인지적 관점에서 건강불평등을 비판하기 위해 '여성 건강'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여성 내부의 다양한 차이들을 충분히 포함하지 못할 때, 우리는 대표적인 '여성'이 되지 못하는 여성 집단이나, 성별 이분법에 포함되지 못하는 성소수자의 건강 문제를 어떤 식으로 제기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버려 나가는 데 필요한 것은 한 사회의 구성원과 집단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요인과 해당 집단의 특수성 간의 연관성과 상호작용을 충분히 밝혀내는 일일 것이다. 

차이에 주목하기

우선 건강이란 언뜻 몰성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건강과 건강을 둘러싼 담론, 그리고 의학적 지식들이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되고 발전되어 왔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의학적 치료, 임상의학, 약물 실험과 복용 기준에서 성차가 고려되기보다는 남성 신체가 기준이 된다. 또한 몸에 대한 지식은 모든 젠더에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이 건강 개념을 건강에 대한 정보와 지식, 의료적 지원에 대한 접근권, 재생산에 대한 자율권, 몸에 대한 스스로의 결정 권한과 통제의 문제 등으로 확장했을 때, 더욱 여성의 몸과 건강 문제가 여성 스스로에게도 얼마나 소외되어왔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남성 중심적으로 분석되고 고려되어온 '건강'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우리는 '여성 집단'이 받아온 차별을 제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사회 구성원이 건강하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의료적 지원, 국가 정책, 임상실험이나 의학 분야의 연구에서 성인지적 관점이 부족하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성별에 따른 건강 불평등을 비판하기 위해서 '여성'의 건강 문제를 제기할 때, 여성 내부의 다양성과 차이가 간과될 위험이 있다. 남성 간의 차이가 존재하듯이 여성 집단에서도 젠더, 계급, 생애주기, 직업적 특성, 섹슈얼리티에 따른 다양한 차이들이 존재한다. 이 경우에 필요한 것은 여성 간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불평등이 배제한 집단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와 차이의 양상들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일이다.

섹스, 재생산, 가사노동, 임금노동에서의 차별과 그로 인한 건강 문제가 한 집단에서 나타나는 양상이 다르더라도, 이러한 불평등을 양산하는 억압의 공통점을 분석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공통의 문제 제기하기 
 
   
이런 측면에서 <무엇이 여성을 병들게 하는가>의 저자 레슬리 도열은 이 문제의 복잡한 측면들을 잘 드러내 준다. 주요하게는 계급, 빈곤, 출신국가 등으로 인한 여성 내부의 차이에 주목하면서 3세계와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서구 국가에서 나타나는 여성 건강 문제를 비교한다. 각 국가 간의 여성들이 경험하는 건강 문제는 젠더에 근거하는 격차만큼이나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면서도 도열은 여성으로서의 "공통의 경험"을 통해 여성의 보편적인 건강 문제를 밝힌다. 즉, 우리는 "아픔의 문화적 상대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도 질병과 사망의 사회적 분포를 측정"(p.31)할 수 있어야 한다. 차이를 인식하고 분석하면서도 공통의 문제를 드러내기, 이런 작업은 여성 건강 문제를 드러내는 방식뿐 아니라 여성 연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한편, 여성의 건강이 지속적으로 배제되어왔던 사회적 맥락에서 이 균형을 다시 맞추려고 할 때 강조되는 것은 여성 고유의 건강 문제라고 여겨지는 재생산 영역에서의 건강이다. 그래서 재생산 영역의 건강을 고려하기만 하면, 여성 건강 문제가 충분히 다루어졌다고 문제를 오도할 위험이 있다.

물론 여성의 재생산과 관련된 문제들, 특히 건강 문제들이 일터와 사회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로써 다루어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건강'을 다루는 기준과 시각 자체가 불균형하다면, 여성 건강의 문제를 재생산 영역에서의 건강만으로 한정할 수는 없다. 즉 '여성 건강'을 재생산 문제로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적 관점을 통해서 건강을 보는 시각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이신 김지안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7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무엇이 여성을 병들게 하는가 (반양장)

레슬리 도열 (지은이), 정진주, 김남순, 김동숙, 박은자, 송현종, 이희영, 지선미 (옮긴이),
한울(한울아카데미), 2010


#건강불평등 #건강다양성 #레슬리도열 #여성연대 #공통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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