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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박원순 사건 '방조범' 수사 가능해도 처벌 가능성 낮아

피고소인 사망해도 방조 혐의 수사 가능... 박 전 시장 성추행 혐의 먼저 입증해야

등록 2020.07.25 11:27수정 2020.07.2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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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검증 사실] 박원순 전 시장 사망했는데 '방조범' 처벌 가능할까?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으로 성추행 의혹 사건 수사가 벽에 부딪힌 가운데, 서울시 관계자들 방조 혐의 수사와 처벌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건 진상 규명을 하려면 수사기관의 강제수사가 불가피한데, 방조죄 수사 과정에서 박 전 시장 성추행 혐의에 대한 수사도 이뤄질 수 있어서다.

'강제추행 방조'는 피해자가 아닌 제3자가 고발한 사건이다. 강용석 변호사 등이 진행하는 보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아래 '가세연')는 지난 7월 10일과 16일 서정협 권한대행과 전직 비서실장을 비롯한 서울시 관계자들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 방조 혐의 등으로 서울지방경찰청에 잇달아 고발했다.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 법률대리인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변호사도 지난 22일 2차 기자회견에서 "주된 행위를 한 사람이 사망했다고 해도 그 행위를 방조한 사람이 현존하는 이상 수사해서 혐의가 밝혀지면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과연 박 전 시장이 사망했음에도 강제추행 방조 혐의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이뤄질 수 있을까?

[사실확인 ①] '정범' 사망해도 '방조범' 수사 가능

박 전 시장이 사망해 직접 수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박 전 시장에 대한 성추행 고소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할 가능성이 높다. 남은 건 서울시 관계자에 대한 강제추행 방조 혐의 고발 사건 수사다.


일단 경찰은 방조 혐의 수사를 진행하면서 논란이 되는 점들을 검토해 가겠다는 입장이다. 김창룡 신임 경찰청장도 지난 2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방조범 수사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법 규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철저히 수사해 진상이 규명되도록 하겠다"라고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오마이뉴스>는 23·24일 구정모·오민웅·이수연 변호사 등 법률가 3인과 형법학자인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전화와 이메일로 법률 자문을 구했다. 법률가들은 대체로 '정범(피고소인)'이 사망하더라도 방조범 등 공범 수사는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면서도, 실제 방조범이 기소되거나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었다.

구정모(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공소권 없음'은 피고소인이 사망해서 수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지 피고소인이 무죄라는 의미는 아니다"라면서 "방조범이 성립하려면 정범의 범행 성립을 전제로 하지만, 정범이 사망해도 방조죄 성립 여부를 확인하는 수사는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구 변호사는 "일반 사건의 경우 정범이 사망해도 수사하면 증거가 많이 나오는데 강제추행 특성상 증거가 없는 사례가 많다"면서도 "정범 사망이 방조범 성립 여부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어서 정범이 사망하더라도 수사 가능하고 수사 결과에 따라 처벌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변호사회(아래 여변) 공보이사를 맡은 이수연(큰길 법률사무소) 변호사도 "피고소인이 사망해 '공소권 없음' 결정이 돼도 방조범은 별개로 수사와 처벌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범(교사범, 방조범 등)은 정범에 종속된다는 '공범종속성' 판례를 들어, 정범이 사망해 방조범 처벌이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오민웅(삼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정범과 방조범을 함께 수사하고 재판을 받는 도중 정범이 사망했다면 방조범 처벌도 가능하겠지만, 이번 사건은 정범 수사가 불가능한 상황이고 방조범은 정범에 종속된 종속범인데 방조죄 성립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오 변호사는 "방조죄는 판결문에 정범을 설시하게 돼 있어 정범에 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보통 정범을 수사해야 방조범 수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정범 소재 탐지가 안 돼 수사가 안 되는 경우 방조범은 기소 중지한다"고 밝혔다. 실제 박근혜 정부 당시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문건 사건'도 지난 2018년 군과 검찰이 함께 수사를 진행했지만 핵심 피의자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외국으로 도피해 박 전 대통령 등 주요 피의자들이 기소 중지된 상태다.

형법학자인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24일 이메일 인터뷰에서 "방조범은 정범(박원순 전 시장)을 전제한 공범의 형태여서 정범이 성립해야 하고 그 정범의 위법한 행위가 확인, 확정되어야 한다"면서 "소송법적으로 정범의 공소사실이 있어야 그 공소사실에 대해 방조의 공소사실이 특정될 수 있으므로 정범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어 기소가 이뤄져야 한다, 이것은 대법원 판례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하 교수는 "법적으로 피의자가 사망했으므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돼야 하고, 따라서 정범의 범죄사실이 확인되지 않아서 기소할 수 없고 기소하지 못하면 방조범의 공소사실을 특정할 수 없고 혹시 기소하더라도 공소사실 불특정으로 공소기각 판결을 내릴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구정모 변호사도 "정범이 죽어도 방조범 처벌이 법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지만 강제추행의 경우 적극적인 작위 방조를 처벌한 사례는 있어도, 부작위 방조를 처벌 사례는 거의 없다"라고 밝혔다.

다만 이수연 변호사는 "피의자가 사망하면 일반적인 사건은 종결하지만 이 사건은 중요해서 처벌은 어렵더라도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면서 "진상조사단 절차도 가능하지만 강제수사권이 없어 제대로 확인하려면 수사기관에서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고, 피해자 주장대로 긴 시간 묵인하고 방조했다면 사실 확인이 가능해 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여변은 지난 19일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한 성명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기관의 강제수사를 촉구했다.

[사실확인 ②] 방조죄보다 직무유기죄 성립 가능성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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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비통한 심정 금할 길 없어” 박원순 서울시장의 유고로 시장 권한을 대행하게 된 서정협 행정1부시장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브리핑실에서 향후 계획을 포함한 입장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이렇듯 방조 혐의 수사의 한계 때문에 서울시 관계자들의 직무유기 혐의 수사가 더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구정모 변호사는 "방조죄는 강제추행의 경우 정범 범행이 반드시 입증돼야 하는데, 직무유기는 강제추행 여부와 별개로 피해자가 성추행 피해를 호소했는데도 관리자가 매뉴얼에 따라 적절하게 조치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에는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태훈 교수도 "방조범 처벌은 불가하고 성희롱이나 성추행 등 신고를 받아 처리해야 할 시청 내부 담당자가 있다면 신고나 상담을 받고 적극적인 처리를 하지 않은 경우에 직무유기죄는 성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서울시는 '서울시 성희롱 성폭력 예방지침'과 '서울시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 등에 따라 성희롱·성폭력 피해자가 고충 상담원이나 인권담당관에게 상담․고충을 신청하면 지체 없이 상담에 응하고, 피해자가 원하면 시민인권보호관이 30일 이내에 조사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가해자로 지목된 박 전 시장이 기관장이어서 피해자가 정상적인 경로를 거치기 어려웠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오민웅 변호사는 "직무유기죄가 성립하려면 피의자 직무 범위에 속해야 한다"라면서 "피해자에게 (박 전 시장 성추행 관련) 이야기를 들은 비서나 서울시 관계자들 직무 범위에 그 문제를 해결하는 업무가 속하는지 따져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오 변호사는 "모든 형사범은 고의범이어서 방조범들이 (박 전 시장 성추행)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거나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사실 여부를 수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확인 ③] 방조 혐의 수사로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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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을 방임·묵인했다며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가 서울시 관계자들을 고발한 사건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17일 오후 고발인인 가세연의 강용석 변호사가 조사받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으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방조 혐의 수사를 계기로 박 전 시장 성추행 혐의에 대한 수사도 이뤄질 수 있을까? 방조 혐의 입증을 위해선 박 전 시장 혐의 수사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가세연에서 서울시 관계자들을 방조 혐의로 고발한 것도 처벌보다 경찰에서 박 전 시장 혐의를 강제수사하게 만들려는 '우회 수단'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수연 변호사는 "고발인(가세연)이나 일부에서 그렇게(박 전 시장 혐의 수사 우회 수단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주변 사람들 역할도 컸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방조죄 수사도 의미가 있다"면서 "주변 사람들이 분위기를 조장했다면 피해자 입장에선 '내가 너무 민감한 거 아냐', '가만있어야 하는 거 아냐'라고 받아들일 수 있고 피의자도 (성추행에) 무감각해지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민웅 변호사는 "박 전 시장 수사를 못 하는 상황에서 유력한 증거도 없다 보니 계속 경찰에서 수사하는 상황을 만들려고 관련자를 방조죄로 처벌하라는 게 아니겠나"라면서 "정범에 대한 유력한 증거가 없다면 방조죄를 입증하는 건 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구정모 변호사도 "일단 경찰이 방조 혐의 수사는 할 수 있겠지만 정범 직접 수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상당한 난관이 예상된다"면서 "당장 경찰이 박 전 시장 휴대폰 압수수색 영장 없이도 비밀번호를 알아내 그 내용을 살펴볼 순 있지만 증거로 쓰려면 유족 등의 동의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이수연 변호사도 "정범 사망으로 수사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서울시청 직원들 가운데 범위를 줄여 피해자와 같은 범주에서 근무한 사람들 위주로 수사한다면 사건의 실체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공소시효가 만료된 '화성 연쇄 살인 사건' 범인 이춘재씨 수사 사례를 들어, '공소권 없음'에도 진상 규명을 위한 강제 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하태훈 교수는 "공소시효가 경과해 공소권 없음 판단을 한 경우는 공소시효가 남은 범죄를 찾아 수사, 기소할 수 있었지만, 박 전 시장 사건은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라서 법리적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검증 결과] '방조범' 수사 가능, 박 전 시장 혐의 입증 안 되면 처벌 가능성 낮아

<오마이뉴스>에서 법률 자문한 변호사들과 형법학자 의견을 종합하면, 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사망해 '공소권 없음' 처리돼도 강제추행 방조 혐의로 고발된 서울시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는 가능하다.

다만 '방조범'은 정범(박 전 시장)에 종속된다는 '공범종속성'에 입각한 대법원 판례를 볼 때, 박 전 시장 범죄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조범이 기소돼 처벌까지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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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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