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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지원단체 '욕설' 전화 폭주..."하루 20통 이상, 업무 마비"

'박원순 성추행 의혹' 기자회견 단체들 어려움 호소..."필요한 '폭력 피해' 상담 못할까 우려"

등록 2020.07.24 21:32수정 2020.07.24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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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렸다. 왼쪽부터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 권우성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피해자 측은 지난 13일과 22일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단체인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한 자리였다. 피해자 A씨를 지원하는 이들 단체의 활동가들은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보호와 사건의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기자회견 이후 피해자를 지지하고, 사건의 진상규명에 힘을 실어주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피해자를 조롱하거나, 고소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음모론이 난무하는 등 심각한 2차 가해가 벌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물론 변호인이나 두 여성단체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특히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에는 항의전화가 첫 기자회견 이후 2주 동안 끊이지 않고 있다.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두 단체 활동가들은 "업무에 큰 지장을 주고 있다"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들이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상담 전화를 하는 단체라는 점이다. 항의전화가 길어질 경우 정작 폭력 피해 여성들이 이들 단체의 상담이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인신공격에 욕설... 폭력 상담 전담하는 상담소에까지 항의전화

성폭력상담소의 한 관계자는 하루에 20통 이상의 항의전화가 걸려 와서 업무에 방해가 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특히 욕설과 인신공격에 활동가들이 큰 상처를 받고 있다고 했다.

"'피해자가 4년간 힘들었다면 왜 이제 와서 그런 문제를 제기하느냐', '왜 남자는 지원하지 않느냐', '가해자 입장에서 생각을 해봐라', '왜 (피해자가)부모님한테 도와달라 말 못했냐' 등등의 말씀을 하신다. 활동가에게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고, 저희 말을 안 듣고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경우도 있다. 욕을 하는 경우 전화를 끊겠다고 말하고 끊는데, 또 전화가 온다. 조금 전에 전화 받았던 사람 바꿔달라거나,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말까지 한다." 


이 관계자는 "저희가 계속 설득을 하면 일부 수긍하시는 분도 계신다. 하지만 대부분은 저희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그 자체만으로 상담소 활동을 폄하하고 활동가들을 공격한다"라며 "말로는 '같이 이야기를 하자'고 하시는데, 결국 '저희가 잘못했다'라는 말을 들으려고 전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밝혔다.

조롱과 비아냥이 섞인 항의전화를 계속 받으면서, 활동가들이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여성의전화도 사정은 비슷했다. 여성의전화의 한 관계자는 "1차 기자회견 직후에는 항의전화가 업무전화보다 훨씬 많이 와서 업무시간 내내 전화를 받아야 했다"라며 "특히 사무실뿐만 아니라 폭력 상담을 전담하는 상담소까지 항의전화가 왔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여성 폭력 피해자분들이 피해를 이야기하고 지원받을 수 있는 창구까지 항의전화가 가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봤다. 

"여성폭력 상담소에는 긴급한 전화가 올 때가 많은데, 상담소에 전화가 쏟아지면 정작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과 상담하기 어려워진다. 항의전화로 인해 지원제도를 이용하는 것에 어려움이 생긴다는 것이 피해자 지원 단체로서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성폭력상담소와 마찬가지로 항의전화 내용의 다수는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단체를 공격하는 내용이었다. '진짜 피해가 있었는지 입증해라' '피해자는 어떤 사람이냐' '도대체 뭐하는 단체냐', '다른 사건 때는 뭐하다가 이 사건만 가지고 이러느냐' 등등이었다.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말... '항의'로서의 의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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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왼쪽 첫 번째)가 지난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 기자회견장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고 상임대표(왼족부터),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 공동취재사진

 
피해자 측 2차 기자회견에서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2차 피해' 문제를 지적하며 "피해자와 변호인, 지원단체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 심각해지고 있다"라며 이러한 움직임이 "피해자의 입을 막고, 진실을 부정하고, 피고소인과 관련자들을 비호하려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나아가 송 사무처장은 단체의 입장을 설명하며 "본 단체들이 이 사건을 지원하는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본 사건의 진실이 규명되어 피해자가 일상으로 안전하게 복귀하는 것, 그리고 본 사건의 제대로 된 해결을 통해 직장 내에서 여성들이 대상화, 도구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우리가 구축해온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입장 표명에도 항의전화를 비롯해, 두 단체에 대한 공격은 끊이질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여성단체 활동가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과거에도 이슈에 대해 단체가 목소리를 냈을 때 항의전화가 빗발치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2017년 그림 '더러운 잠'을 비판했을 때는 전화기 선을 다 뽑아놓아야 할 정도였다"고 밝혔다.

그는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 측이 전화해서 항변하는 경우도 있었고, 항의전화에 대응하다가 '어디 여자가 말을 끊어'라는 말도 들어봤다"라며 "시민들이 의견을 제시하거나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단체의 활동 자체를 부정한다거나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만 이야기하는 것은 '항의'로서의 의미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2차가해 #박원순 #여성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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