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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의 부대 특강, 한 병사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질문할 수 있는 용기] 백 장군 죽음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며... 난 20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등록 2020.07.28 07:06수정 2020.07.28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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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4성 장군이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사는 도시 대전현충원에 묻혔다. 그와 관련한 많은 논란을 보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비록 잠깐 스쳤을 뿐이고 20년 가까이 된 기억이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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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선엽 장군의 영결식이 진행되고 있다. ⓒ 이희훈

 
한 노신사의 특강

나는 2001년 7월에 102보충대를 거쳐 강원도의 한 신병교육대에 들어갔다. 신병 교육이 끝나고 동기들이 자대로 떠날 때 나는 그대로 신병교육대에 배치되었다.

내가 배속된 중대는 신병교육대 내 분대장 교육 중대였다. 이곳은 신병이 아니라 일선에 있는 분대장들을 교육시키는 곳이었다. 아직 노란색 견장을 달고 있던 그 해 가을, 우리 부대로 누군가 특강을 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모든 게 어리둥절한 이등병이었기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지만 선임들과 간부들은 매우 부산했다. 특강 며칠 전부터 부대 내 모든 시설을 청소했다.

특강 당일 신병교육대 내 모든 기간병과 훈련병들이 강당으로 집합했다. 강당 앞 높은 단상에는 강대상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팔걸이가 있는 의자들이 놓였고 거기에는 사단장과 고위 장교들이 앉았다. 이윽고 특강 강사가 들어왔다. 검은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노신사였다. 나이가 많아 약간 구부정하고 걸음걸이도 느렸지만 꼿꼿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강사가 들어오자 사단장이 벌떡 일어났다. 강사가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자 사단장은 크게 구령을 붙이며 경례를 했다. 그리고 나서야 강사의 손을 잡았다. 오래된 일이지만 이 장면은 뚜렷이 기억난다. 하늘 같은 현역 사단장의 절도 있는 경례 장면을 직접 보는 것은 이등병에게 무척 생소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던진 질문

특강이 시작되었다.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국 전쟁 참전부터 시작해서 현존하는 북한의 위협과 국가 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리고 강의가 거의 마무리 될 즈음 사건이 일어났다.

강의를 듣던 병사들 중 한 명이 질문이 있다며 손을 든 것이다. 원래 있던 질의응답 순서였는지 아니면 그 병사가 갑자기 손을 든 것인지는 모르겠다. 강사는 그 병사에게 질문하라고 했고, 그는 일어섰다.

그의 질문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한국전쟁의 영웅으로서 국가를 위한 헌신에 대한 강의 잘 들었다. 하지만 과거 간도특설대 등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강당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나는 그때까지 그 강사가 누구인지, 그리고 간도특설대가 뭔지도 몰랐다. 나중에야 그가 백선엽 장군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약간 당황하며 대답을 얼버무렸던 거 같다. 그리고 행사는 급하게 마무리되었다.

특강이 끝나고 모든 기간병과 훈련병들은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당시 행정병이었던 나는 중대 행정실로 복귀했다. 키는 좀 작았지만 단단한 체구에 까만 피부의 우리 중대장은 그야말로 노발대발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소대장에게 누구를 불러오라고 시켰다.

질문 후

곧 행정실로 호출되어 온 사람은 놀랍게도 아까 질문했던 그 병사였다. 그는 분대장 교육을 받기 위해 우리 중대에 들어와 있던 교육생이었던 것이다. 중대장은 그를 앉혀놓고 면담을 시작했다. 냉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중대장의 목소리는 화를 억누르는 게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등 뒤로 그 목소리를 들으며 가슴을 졸였다.

중대장은 왜 그런 질문을 했냐고 물었고, 그 교육생은 평소 궁금하던 거여서 물어봤다고 했다. 중대장은 한국 전쟁 때 우리가 졌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지 아냐고 했다. 교육생은 한국 전쟁 결과가 어떻든 오늘 질문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중대장의 연이은 질문에 교육생은 이미 모두 예상했다는 듯이 차분하게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런 모습에 중대장은 조금씩 평정을 잃어가는 듯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중대장의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질책이었고, 그가 원하는 답은 '죄송합니다'였다. 하지만 중대장이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폭발해 '너 빨갱이냐?'를 시전했다. 교육생은 과거 친일 행적을 물어보는 게 왜 빨갱이인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중대장은 한숨을 쉬며 교육생을 내보냈다.

행정실을 나가기 전 경례를 하던 교육생을 흘깃 봤다. 그의 군복 가슴에는 '군종(장병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군의 정신전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설치된 병과)'이라는 글자와 십자가가 붙어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십자가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멋있고 거룩한 십자가 중 하나로 기억되었다. 이후 중대장은 여기저기 통화를 했고 대대장에게도 불려갔다. 선임들은 그 교육생이 영창을 갈 거라고 했지만, 아무 일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 역시 처음에는 남들은 다 가만히 있는데 왜 저렇게 나서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군생활을 하면서 그 군종병이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군이라는 조직에서 사단장까지도 깍듯하게 경례를 붙이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질문을 당당하게 던질 수 있었을까?

질문할 수 있는 용기

복학을 했고 졸업 후 취업을 했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질문을 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많은 경우 참았던 것 같다. 분란 일으키지 말자, 어차피 안 바뀐다, 그런 '사소한 거'에 집착하면 더 큰 게 망가진다 등등 이유는 다양했다. 비겁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질문할 용기'가 없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물론 질문도 여러 종류가 있다. 상대방을 비아냥대거나 비꼬기 위해 하는 질문도 있고, 개인적인 불이익이 예상되지만 반드시 해야 하기에 던지는 질문도 있다. 용기가 필요한 질문은 후자이다.

세상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마음 편히 질문할 수 없는 경우를 자주 맞닥뜨린다. 젊은 시절 모든 것을 걸고 권력에 질문을 던지던 사람들이 이제는 오히려 질문을 막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전히 어떤 질문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4성 장군의 사망 소식을 들으면서 그 군종병이 다시 생각났다.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런 질문을 던질 용기를 낼 수 있었는지 꼭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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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 안장식이 15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렸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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