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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 할아버지의 이 말에 다시 주먹밥 싸기 시작했다

하루에 무려 1200인분... 코로나에도 '한 끼' 책임지는 밥퍼나눔운동본부

등록 2020.07.29 07:53수정 2020.07.29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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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도시락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 김남희


"할아버지, 아까 도시락 받아 가셨잖아요."
"아니여. 나 방금 왔어!"
"아까 가져가셨잖아요. 어어, 또 가져가면 안 돼요. 다른 분들도 다 먹어야죠!"
"이것만 먹고 어떻게 하루를 버텨~ 하나만 더 줘!"



이미 도시락을 받아놓고 다시 받아가는 할아버지와 이를 막으려는 봉사자가 실랑이를 벌인다. 이곳은 다일공동체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의 앞마당이다.

봉사자는 할아버지의 손을 단호히 쳐내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줄을 서는 사람들 중에는 '밥퍼'에서 나눠주는 한 끼로 하루 종일을 버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도시락을 못 받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 그도 어쩔 수 없다.

"저희도 더 드리고 싶죠. 지금은 코로나19로 주변 무료급식소가 문을 다 닫았어요. 그나마 저희는 지금 식판 배식이 아니라 도시락을 드리고 있어요. 그 때문에 한 끼라도 대접할 수 있죠. 밥퍼가 근처에서 유일하게 배식하는 곳이라 여기에 오는 분들이 많이 늘었어요. 가뜩이나 음식이 모자라는 상황이라 한 분에게 도시락을 두 개씩 드리기는 어려워요."

"등골 휘는 자식에게 미안해서..."
 

자원봉사자가 할머니에게 도시락을 건네주고 있다. ⓒ 김남희


지난 21일과 23일, 밥퍼 현장을 찾았다. 코로나19 때문에 밥을 나누는 복지시설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현재 동대문구의 규모 있는 급식소 중에 식사를 제공하고 있는 곳은 밥퍼 밖에 없다.

자신을 비교적 '어린 축에 속한다'고 소개한 한 70대 할아버지도 원래 다니던 곳이 문을 닫아 밥퍼로 온다고 했다. 이렇듯 찾는 사람이 늘어, 코로나19 이전보다 400인분가량의 음식을 더 만들고 있다. 매일 약 1200명의 노인이 밥퍼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그중에 한 분인 김○○(81) 할머니는 30분을 기다려 도시락을 받아갔다. 김 할머니는 맨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비닐 봉투에서 꺼낸 도시락은 주먹밥이다.

"나는 여기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와. 아들이 병 걸릴까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하는데도 꼭 와. 내 병원비 때문에 등골이 휘는 자식들한테 미안해서, 밥 한 끼라도 내 손으로 먹으려고… 늙어서 자식들 고생시키는 게 더 불편해."

밥퍼에 오는 이들 중에 김 할머니처럼 자녀가 있는 경우도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든 자녀들을 보며 짐이 되기 싫어 이곳에 온단다.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나눠준 주먹밥. ⓒ 김남희


한 봉사자가 시계를 보더니 저만치에서 걸어가는 할머니 한 분을 불러 실내로 모셔간다. 봉사자는 능숙한 손길로 할머니를 의자에 앉혔다.

"할머니, 이리 와요. 눈에 약 넣어야지. 자 눈 크게 뜨고, 약 떨어트릴게요."

봉사자는 능숙한 손길로 세 가지 안약을 순서에 맞춰 정확히 할머니의 눈에 떨어뜨린다. 안약을 넣은 할머니가 찔끔 눈물을 흘린다. 이 할머니는 눈병을 앓고 있다. 그녀는 인지능력도 떨어지고 혼자 살고 있어 제때 안약을 넣기도 힘들다. 그래서 밥퍼 봉사자가 때맞춰 할머니의 눈에 안약을 넣어준다. 이런 이들은 약을 챙기는 일까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몇몇 할아버지들은 도시락을 나눠주는 시간 이전부터 밥퍼 앞마당에 앉아 있다. 그중 한 할아버지는 아침 7시가 되기도 전에 이곳에 도착한다.

"집에 혼자 있으니까 영 좀이 쑤시고 심심하더라고. 그런데 여기 오면 친구들이 많거든. 그러니까 아침 일찍부터 나와버렸지. 여기 나보다 멀리서 오는 사람도 많아."
 

할아버지의 집은 마석. 청량리에 위치한 밥퍼까지 오는데 전철로 꼬박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말동무를 만나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은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선다. 문을 닫은 경로당을 대신해 밥퍼의 앞마당이 할아버지들의 회담장이다.

'밥퍼'를 멈출 수 없었던 이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준 도시락을 들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 김남희


밥퍼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정부가 사회복지시설 휴관 조치를 내렸던 지난 2월에는 여타 다른 무료급식소처럼 문을 닫았다. 밥퍼가 활동을 시작한 지 3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메르스 사태 때도 문은 안 닫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나라에서 문을 닫으라는 거예요. 그것도 무기한으로… 당황했지만 일단 휴관 권고에 따라 문을 닫고 어르신들 동향을 살폈어요."
 

김미경 밥퍼나눔운동본부 부본부장은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어떤 할아버지의 말 한마디 때문에 밥퍼의 문을 다시 열었다고 말했다.

"한 할아버지가 그러더라고요. 배고파 죽겠다고. 병 걸려 죽으나 굶어 죽으나 똑같으니 다시 밥 좀 달라고. 그 말을 듣고 나니 이렇게 가만히 휴관이나 하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식판 급식 대신 도시락을 나눠주고, 현장에서 방역 수칙을 철저지 지키면서 밥퍼 활동을 다시 시작했죠."

그러나 운영을 재개하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밀려 닥쳤다. 일단 봉사자의 업무량이 늘었다.
 
"자, 다시 움직입시다!"


밥퍼 자원봉사자 김세훈(32)씨는 이 말을 듣고 10분도 채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선다. 도시락을 나누어주기 시작한 지 30분 만에 미리 만들어둔 도시락이 다 떨어져 도시락을 더 만들어야 한다. 40명씩 오던 봉사자 수를 방역 때문에 20명으로 줄였기 때문에 제대로 쉴 틈이 없다. 그럼에도 김세훈씨는 "여기서 일하면 몸은 고되지만 그보다 더 큰 걸 얻어가는 것 같아 괜찮다"고 말한다.

음식량은 늘고, 후원금은 줄고
 

자원봉사자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나눠줄 도시락을 만들고 있다. ⓒ 김남희


"할아버지, 마스크 꼭 끼셔야 해요."

밥퍼 앞마당의 한편에선 노재완 밥퍼나눔운동본부 주임이 맨얼굴의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건네고 있다. 마스크를 나눠주는 그의 손이 마냥 넉넉하진 않다. 현재 밥퍼는 마스크 등 방역에 필요한 물건을 충분히 구매할 만한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비축해둔 마스크가 거의 다 떨어진 상태예요. 다행히 얼마 전 누군가 대량의 마스크를 후원해줘 오늘은 조금이나마 여유가 있었어요. 앞으로가 문제죠. 언제 또 마스크 후원이 들어올지 알 수 없잖아요. 마스크 때문에 매일이 전전긍긍입니다."
 

이날은 후원이 없어 여분의 마스크와 손소독제 등을 넣은 응급지원키트를 만들지도 못했다. 모든 비용을 후원금으로 충당하는 밥퍼는 최근 코로나19 때문에 후원금이 줄었다. 마스크나 응급지원키트 속 용품을 구매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운영 자체도 이어가기 쉽지 않은 상태다.

"정기 후원금 말고도 목돈이 들어올 때가 있어요. 보통 회사에서 단체 봉사를 왔다가 후원금을 주고 가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단체 봉사가 거의 없어요. 그 외에 모든 후원의 손길도 줄어들었어요. 만드는 음식량은 늘고, 비싼 도시락 용기까지 사야 하는 마당에 정작 후원금은 줄어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전기요금이나 수도세 내기도 빠듯한 상황이에요."

밥퍼의 운영이 어려운 건 내부 사정 때문만은 아니다. 김미경 본부장은 "전염병 때문에 사람들끼리 만나지 말라는대 자꾸 한 곳에 사람들을 불러들인다고 주변에서 민원이 자주 들어온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밥 한 끼가 지닌 힘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밥퍼는 결코 다시 문을 닫을 생각이 없다. 김 본부장은 그 이유를 밥퍼가 나눠주는 도시락의 가치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밥 안에는 한 끼 식사보다 더 큰 가치가 있어요. 밥퍼가 도시락을 나눠주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게 되는 건 물론이고, 그 자식들도 부모가 밥퍼에 와서 한 끼라도 먹을 수 있으니 안심하고 일터에 갈 수 있게 됩니다. 결국 밥퍼가 어려운 어르신들의 식사를 제공하는 건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에게도 긍정적인 힘을 주는 일인 거죠. 그러니 절대 밥퍼의 활동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녀는 밥퍼가 맡은 궁극적인 역할이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자식이 있어 나라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진짜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죠. 밥퍼는 그런 분들을 돕고 돌보는 일을 합니다.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의 빈틈을 민간에서 채우는 거죠."

그리고 이를 제대로 해내려면 국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에선 저희를 비롯해 이런 역할을 수행할 만한 충분한 역량을 갖춘 센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활동을 뒷받침해줄 국가의 지원이 부족해요. 국가에서 민간 무료급식소가 활발히 활동할 수 있게끔 제도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녀는 바쁜 업무 때문에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국가 재난 시기 독거노인과 가난한 노인을 직접 만나서 돕고 있는 민간단체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마스크 등 기본 방역 물품은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

하루를 한 끼로 버티는 이들에게 무료급식을 멈추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들에게 밥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을 민관이 찾아야 한다. 만약 밥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생긴다면 하루에만 1200명씩 찾아오는 노인들은 어떻게 될까?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밥퍼를 다녀오는 길에 봉사자 김세훈씨가 "더 큰 걸 얻어가는 것 같다"고 말한 게 자꾸 떠올랐다. 밥퍼나눔운동본부는 일단 7월 말까지 도시락 나눔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는 코로나19의 확산 정도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7월이 되기 전에, 8월이 되기 전에, 그리고 12월이 되기 전에 더 많은 사람이 더 큰 것을 얻어갈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밥퍼 #밥퍼나눔운동본부 #자원봉사자 #무료급식소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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