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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가장 현실적인 '바캉스'를 만나다

[기획-여름휴가 대신해 줄 영화] <한낮의 피크닉>(2019)

20.07.30 12:27최종업데이트20.07.3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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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낮의 피크닉>(2018) ⓒ 서울독립영화제

 
2018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제작, 상영된 <한낮의 피크닉>(2019)은 여행을 주제로 각양각색의 여정을 다룬 흥미로운 옴니버스 영화다. <한낮의 피크닉>이라는 전체 제목과 걸맞게 부담없이 가볍게 볼 수 있으면서도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청량함이 돋보인다. 

근교 캠핑장으로 짧은 휴가를 떠났다가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돌아오는 길엔>, 울릉도로 우정 여행을 떠난 20대 남성 청년들의 <대풍감>, 고향친구의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삶의 활력소를 찾게된 30대 프리랜서 여성 노동자의 변화가 돋보이는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까지. 모두 국내 여행, 방콕을 소재로 한 만큼 코로나19로 마음껏 여름 휴가를 즐기지 못하는 현실에 작은 위안을 건넨다. 지난해 개봉한 <한낮의 피크닉>은 IPTV, VOD로 관람할 수 있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가족이 함께한 캠핑의 결말은? 
 

영화 <한낮의 피크닉-돌아오는 길엔>(2018) ⓒ 서울독립영화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기 바쁜 가족이 난생 처음으로 함께 캠핑을 떠났다. 하지만 이미 서로를 향한 불만이 최고조에 달해 있어 캠핑을 다녀온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어 보인다. 

이미 오래전 냉전기에 접어든 중년 부부와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 곁을 떠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자식들의 험난한 동행을 보여주는 <돌아오는 길엔>(강동완 감독)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리얼한 캐릭터와 관계 구도가 강점이다.

가장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매우 허술해보이는 아버지 창수(권해효 분)와 나이가 들어도 철이 들지 않는 남편과 결혼은 커녕 제 앞가림도 하지 못하는 자식들 때문에 홧병 나기 일보 직전인 어머니 미경(김금순 분), 돈 안 되는 인디밴드를 하고 있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음악에 대한 자부심 만큼은 대단한 아들 동원(곽민규 분), 자유분방하게 살고 싶지만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상 엄마 눈치만 보게 되는 딸 향미(윤혜리 분). 마치 살얼음판을 걷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이들의 평화로운(?) 동행은 남편의 바람을 눈치챈 미경의 이혼선언으로 파국을 맞는다. 

하지만 미경의 이혼선언은 뒤에 이어지는 예상치 못한 사고로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고, 다음날 향미의 또다른 비밀을 알게된 미경은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여기에 동원, 향미 남매보다 더 리버럴해 보이면서도 이른 나이에 정상가족을 꾸리며 살아가는 펑크 부부의 등장이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성세대는 젊은세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젊은세대의 눈에 기성세대는 나이만 꽉 찬 꼰대로 보인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서로를 애틋해 하면서도 막상 만나면 싸우기 바쁜 현실 가족의 케미를 보여주는 동시에 세대 간의 섣부른 화합 대신, 따로 또 같이 제 갈 길을 가는 가족의 미래를 암시하는 엔딩이 인상적이다. 같이 있기만 해도 답답함이 밀려오는 가족과의 여행도 서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좋은 자극제가 되는 것 같다. 

순풍을 기다리는 청춘들의 간절한 아우성
 

영화 <한낮의 피크닉-대풍감>(2018) ⓒ 서울독립영화제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신스틸러로 활약한 류경수의 주연작 <대풍감>(김한라 감독)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청춘의 여정을 다룬다. 

극중 류경수가 맡은 재민은 꿈도 없고 미래도 없는 전형적인 헬조선 청년 캐릭터이다. 군대 전역 이후 알바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재민은 어머니의 위암 판정 이후 오래전 소식이 끊긴 아버지를 찾을 겸 친구들과 함께 울릉도로 여행을 떠난다. 

막막한 미래에 답답한 하루를 보내는 20대 남성 청년들의 로드무비에 묵직한 존재감을 드리우는 '대풍감'은 실제 울릉도에 위치한 바위산의 이름이다. 지금에야 울릉도를 대표하는 관광명소 중 하나지만, 과거 육지로 보내는 선박들의 집결지였던 대풍감은 육지로 향하는 바람이 불어올 때 비로소 배들을 떠나 보냈다. 

과연 의도치 않게 섬에 갇혀버린 <대풍감>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을 육지로 한번에 보내줄 순풍을 만날 수 있을까. <대풍감>이 공개된 지 2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 대다수 청년들의 현실은 어둡고 미래는 막막해 보인다. 출발한 곳은 선택할 수 없지만 도착할 곳은 선택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주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태어날 때부터 실패한 인생들은 아니었다고 따뜻한 위안을 건네는 영화는 말한다.

"언젠가는 우리 인생에도 대풍감 같은 것이 있지 않겠어."

기회가 되면 대풍감에 놀러 가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다. 

예고 없이 찾아온 홈캉스... 코로나19에 걸맞은 알찬 휴가
 

영화 <한낮의 피크닉-내가 필요하면 전화해>(2018) ⓒ 서울독립영화제

 
웬만하면 집 밖을 벗어나지 않는 우희(이우정 분)에게 고향친구 영신(공민정 분)이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다. 거의 혼자 지내는 시간들이 많았던 우희는 자신과 달리 활발한 영신 덕분에 졸지에 왁자지껄한 홈캉스를 즐기게 된다. 

한때 가장 절친한 사이었지만 어느 순간 소원해진 두 여성의 짧은 동거를 다룬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임오정 감독)에서 우희와 영신이 멀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영신의 결혼에 있었다. 현실적인 이유로 결혼을 선택했지만 녹록지 않은 결혼 생활에 지쳐버린 영신과 비혼 프리랜서 여성 노동자로 살아남고자 아등바등하는 우희 모두 힘든건 매한가지다.

허나 자기 주관이 분명한 영신과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숨기고 되도록 타인에게 맞춰주려고 애쓰는 우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예상대로 그녀들의 결속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각자의 세계를 충실히 사는 것으로 결론지어지는 듯하다. 

그럼에도 영신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홀로 외딴 섬처럼 지내며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갖지 못했던 우희가 비로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인지하게 되는 긍정적인 계기로 작용한다. 영신 역시 우희와의 짧고 긴 만남을 통해 관성적인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의 현재 상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너무나도 다른 생활 방식과 가치관 때문에 점점 멀어졌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필요함을 느끼고 마주하면서 각자 나름대로의 용기를 얻게 되는 우희와 영신은 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바쁜 현실 속에서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바깥 외출이 유독 망설여지는 요즘, 한동안 소원했던 그리운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는 코로나19 시대에 걸맞은 알찬 휴가 방법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한낮의 피크닉 영화 여행 휴가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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