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은 존귀하다

생명수호, 시민들도 나서자

등록 2020.07.28 10:05수정 2020.07.2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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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의 재발견


이젠 시장 갈 일 별로 없다. 길을 가면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쇼핑을 한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이런 날이 올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무엇이든 양면은 있다.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것도 있기 마련이다. 가상공간 쇼핑은 시용(trial)이 불가하다. 오감이 무용지물이다. 눈에 보이는 것마저 사진과 실물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실패할 확률도 높다. 치명적 약점이다.

그런 게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부스터 슈트라는 거였다. 솔직히 그게 뭔지도 몰랐다. 그냥 겉보기에 흔한 트레이닝복 같았다. 유명 브랜드였는데 80%나 세일을 하고 있었다. 마침 그런 게 필요했다. 바로 주문했다. 며칠 후 택배가 도착했다. 생각과 달랐다. 안감이 고무로 된 땀복이었다. 반품은 귀찮고 언제라도 입지 않겠냐 싶어 그냥 옷장에 처박아 두었다.

건강보조식품도 있었다. 정작 필요한 건 자양강장제였다. 그런데 막상 집에 온 건 생판 낯선 분말 영양제였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키 성장 발육영양제라 했다. 그러고 보니 제품이름에도 'cm'가 있었다. 이 나이에 웬 키? 기가 막혔다. 반품하려 했지만 그만 시기를 놓쳤다. 냉장고 깊숙이 넣어두고 까맣게 잊고 지냈다.

이번 달 들어서면서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체중이 6kg이나 불었다. 마치 애라도 든 양 배가 볼록 솟았다. 동네 공원을 뛰기로 했다. 당장 운동할 때 입을 게 필요했다. 옷장 속의 땀복이 생각났다. 여름이라 덥기는 하겠지만 운동효과야 더 있겠지 싶었다. 어차피 다이어트 겸 하는 운동이니 오히려 안성맞춤이라 생각했다.

새벽에 나가려니 허기를 채우고 열량을 보충해 줄 것을 찾았다. 자칫 영양실조 걸릴 수 있다. 예전에 그랬던 경험이 있어 잘 안다. 냉장고를 뒤져 보았다. 문제의 성장 발육제가 눈에 뜨였다. 설명서에 적힌 대로 우유에 타서 한 봉투 먹어 보았다. 달콤하고 고소한 미숫가루 맛이었다. 양도 꽤 됐다. 든든할 성 싶었다. 키도 클 줄 누가 아나 싶기도 했다.


예상대로였다. 땀복은 그냥 운동복하곤 차원이 달랐다. 그야말로 땀이 비 오듯 했다. 체중이 쑥쑥 내리는 것 같았다. 영양제 가루는 기대 이상이었다. 맛도 좋았지만 열량이 꽤 높은 것 같았다. 두 시간 가까이 운동했는데도 전혀 배고프지 않았다. 심지어 갈증도 없었다. 몸무게는 빠지고 키는 크는 것 같았다.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의 출현이 임박한 듯했다.

생명 수호,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

애물로만 여겨졌던 두 제품이 그렇게 제 쓸모를 찾았다. 세상 쓸모없는 물건은 없다는 말은 만고에 옳았다. 우리 어머니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쉬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알았다. 그건 그냥 남 주기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필요 없지만 잘 두면 언젠가, 어디선가 쓸 모가 생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건 경륜이고 삶의 지혜다.

사람은 어떨까. 사람도 다 제 나름대로의 쓸모가 있는 걸까. 저 마다의 종교는 그렇게 여기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그게 맞는 것 같다. 한낱 물건들이 그럴진데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지 않겠나. 이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스스로 해야 할 몫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그 평범해 보이는 일도 실은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 소명이다.

사람은 죽는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게 태어난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게 소명일 수는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있다. 꽤 많다. 특히 우리나라가 그렇다고 한다.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고란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면서, 예방책을 내놓고, 캠페인을 벌여도 별무소용인 모양이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생각하면 참 딱하고 안타깝다.

최근에도 그런 소식이 잇따랐다. 어느 누구의 죽음이 그렇지 않겠는가마는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와 한 여성운동선수의 죽음은 특히 안타깝다. 그들은 타인의 학대와 폭력 끝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아니다. 그저 중요하다니, 그걸로는 모자라다. 생명은 존귀하다. 존중 받아 마땅하고 더없이 귀하다는 뜻이다. 아무도 생명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희롱해서도 안 된다. 심지어 당신 자신일지라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죽음을 생각할 만큼 지치고 힘든 분들은 무엇보다 외로울 거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은데 들어줄 사람이 없고, 혼자있는 듯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그럴 때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한결 나아지기 마련이다. 나라에서 '자살예방센터'를 운영하고 '자살예방상담전화'를 운영하는 이유다. 민간 분야에서도 '생명의 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도 소기의 성과는 나오지 않고 상황은 악화일로다. 몇 번씩 전화를 해도 통화가 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는 여전하다. 예산과 인력 부족 때문이다. 그 문제야  새삼 얘기 할 것도 없다. 앞으로 정부가 잘 해 주기를 바란다. 다만 나는 그냥 스쳐 넘어갈 수도 있지만 한번쯤은 생각해 볼만한 한두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먼저 상담전화의 통합이다. 현재 정부가 운영하는 자살예방상담전화는 1393번이다. 민간이 하는 생명의 전화는 1588-9191이다. 자살예방센터가 운영하는 정신건강상담 전화는 1577-0199고, 보건복지상담은 129번이다. 이유야 있겠지만 이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 모든 걸 통합해서 운영하면 상담 희망자들이 외우기도 쉽고, 대기시간도 짧아지지 않을까 싶다.

관련기관과 상담전화의 명칭도 다시 생각해보자. 기업이나 제품명 따위를 짓는 것을 그쪽 업계에서는 네이밍(naming)이라 한다. 그거 참 중요하다. 기업과 제품의 운명을 좌우한다. 네이밍할 때 지켜야 할 원칙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부정적 연상'은 피하자는 거다. 좋지 않은 뜻을 가진 단어를 굳이 이름에 넣을 필요는 없다. 밝고 긍정적인 게 한결 좋다.

그런 차원에서 '자살예방센터'와 '자살예방상담전화'라는 명칭을 바꿔보면 어떨까. '자살예방'이라는 기관의 확고한 목표와 의지의 천명은 좋다. 하지만 '자살'이라는 단어를 자꾸 입에 올리면 은연중에 붙어버린다. 부정적 연상이 이어진다. 대신 '생명존중'이라는 말로 대체하면 어떨까. 말을 하면서 생명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강한 의식도 심어 줄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쓸데없는 참견이라면 버려도 좋다. 중요한 건 사람의 생명은 존중받고 지켜줘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말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몫을 다할 수 있도록 지켜 주는 건 인간 된 도리다. 나라에 맡기고 수수방관할 게 아니다. 우리도 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더 이상 억울하고 한 맺힌 죽음이 있어선 안 된다. 생명은 정말 존귀하다.
#생명 #쓸모 #자살예방 #생명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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