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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캐나다의 여름 음식은 상상 밖이다

[여름의 맛] 간편함과 야외 활동에 중점을 둔 아이스캡과 스모어

등록 2020.07.30 08:52수정 2020.07.3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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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얼음이 동동 낀 육수를 들이켜면 머리끝까지 쨍한 느낌이 드는 냉면, 땀을 한 바가지 쏟아내면서도 온몸이 든든해지는 느낌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삼계탕... 누구에게나 '여름' 하면 떠오르는 소울 푸드가 있습니다. 유난히 긴 장마와 더위 때문에 지치는 요즘, 읽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여름의 맛'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오마이뉴스에서 '여름의 맛' 기획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무더운 여름을 나기 위한 각 나라 혹은 지역의 특색 있는 음식들을 소개하려는데 캐나다의 여름 음식에 관한 기사를 써줄 수 있는지 물어왔다.

이걸 어쩐다, 그저 웃음만 났다. 특색 있는 여름 음식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것이라 하니 여기저기서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모여들 것 같았다. 거기에 나도 한 편 보태고 싶은데… 정말이지 보탤 거리가 없었다.

여름이면 한국에서는 '여름 특선메뉴', '여름 별미', '시원한 OOO' 같은 문구들이 발길을 유혹하지만, 캐나다에선 여름이라고 특별한 메뉴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을 본 일이 없다.

평소에도 특정 나라의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면 어딜 가나 스테이크, 햄버거, 샌드위치, 샐러드, 파스타 등 똑같은 메뉴 일색이다. 한국은 집 앞에만 가도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모를 만큼 다양한 재료와 요리법의 음식들이 즐비한데, 이곳은 메뉴에도 미니멀리즘을 적용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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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여름 별미, 아이스캡. ⓒ 김수진


그런 캐나다에서 더위를 식혀줄 최강자라면... 내가 대뜸 "여름엔 '아이스캡'이지!" 하니 "옳소!" 남편이 맞장구친다. 팀홀튼(Tim Hortons)이라는 캐나다 국민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여름에 판매하는 '아이스캡(Iced Capp)'은 '아이스 카푸치노(Iced Cappuccino)'의 줄임말인데, 그냥 차가운 카푸치노가 아니다.

카푸치노와 슬러시의 만남이라고 할까. 마법의 가루라도 넣었는지 입에 쫙쫙 달라붙는 달달한 커피를 얼려 아주 곱게 갈아놓은 듯한 맛이다. 이 음료를 처음 맛보신 엄마가 "딱 내 입맛!"이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던 기억이 난다. 많은 이들이 다이어트의 적이라며 눈을 흘기면서도 끊지 못하는 아이스캡은 무더운 여름날 당 충전과 함께 땀이 쏙 들어가게 해주는 한국의 팥빙수 같은 존재다.

그런데 주절주절 늘어놓고 보니 참 초라하다. 물냉면, 비빔냉면, 김치말이 국수, 콩국수, 물회, 삼계탕, 초계탕, 오리탕, 장어구이 등 한국의 여름음식은 언뜻 떠오르는 것만 해도 열 손가락이 꽉 찰 정도인데, 캐나다의 여름음식이라고 생각해낸 것이 겨우 커피라니.

아무리 그래도 캐나다에도 여름에 많이 먹는 음식이 있지 않냐고 다그친다면… 그래, 역시 답은 바비큐다. 여름날 저녁이면 가까운 공원이나 뒷마당에서 솔솔 풍기는 바비큐 냄새를 흔히 맡을 수 있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 같은 육류 외에도 감자, 옥수수, 버섯, 토마토, 파인애플까지 굽고 또 굽는다. 패티와 소시지를 구워 햄버거와 핫도그를 만드는 간단한 바비큐를 즐기기도 한다.

식사 뒤에 캠프파이어를 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이 캠프파이어를 기다리는 이유의 팔할은 '스모어(s'more)'에 있다. '타닥타다닥' 기분좋은 ASMR을 제공하며 타오르는 모닥불에 새하얀 풍선같은 마시멜로를 굽는다. 요리조리 굴려가며 노릇노릇 잘 구워낸 마시멜로를 크래커 사이에 끼워 꾹 누르면 먹음직스럽게 삐죽 흘러나온다. 초콜릿 한 조각을 함께 끼우는 것도 잊지 않는다.

너무 맛있어서 '조금만 더요!(some more)'를 외치게 되기 때문에 '스모어'(some more를 줄여서 s'more)라 부른단다. 크래커를 아삭 베어물면 '겉바속폭'(겉은 바삭하고 속은 폭신)의 마시멜로와 부드러운 초콜릿의 달콤함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달달한 디저트 좋아하는 캐네디언들에게 딱이다. 나는 아닌 척 말해 보지만 실은 나도 '스모어'라는 이름이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크래커 사이에 구운 마시멜로와 초콜릿을 끼워 먹는 '스모어(s'more)' ⓒ 김수진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이 좀이 쑤셔 못견디는 아이 마냥 자꾸만 밖으로 나가 바비큐와 캠프파이어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캐나다의 겨울은 장장 반 년 가까이 지속된다. 우리가 사는 곳은 미국 국경과 비교적 가까운 남쪽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11월부터 시작된 겨울이 3월까지 이어진다(심지어 4월에 눈이 내리기도 한다!).

나는 분명 한국에서 꽃피는 춘삼월에 결혼했는데 이곳에서 맞는 결혼기념일에는 종종 눈이 내린다. 겨울 평균 기온이 한국보다 많이 낮은 건 아니지만, 아주 추운 날은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기도 하고 체감 기온은 그보다 훨씬 낮아 영하 40도를 밑돌 때도 있다.

추위보다 더 지치는 건 바로 눈. 한국에 살 때는 "와, 첫눈이다! 데이트해야지!" 했었지만 이곳에서는 "오마이갓, 벌써!" 한다. 아침에 눈을 떠 하얗게 변해버린 겨울왕국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에는 낭만 아닌 절망이 스친다. 눈을 치우고 들어오는 남편의 얼굴이 십 년은 늙어 있다.

시야가 뿌예질 만큼 엄청난 눈보라가 몰아치는 스노우스퀄(snowsquall), 땅이나 차에 달라붙어 얼음이 되어버리는 얼음비(freezing rain), 폭설 혹은 혹한 경보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거나 스쿨버스 운행이 취소되는 일도 종종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름아, 오기만 해봐라. 내 원 없이 즐겨주마' 하는 심리가 생길 수밖에. 이곳 사람들이 "뷰리풀 웨더!(beautiful weather)를 외치는 5월부터 10월까지, 특히 6월부터 9월 초까지 여름 곳곳에서 바비큐 냄새가 진동하는 이유다.

아뿔사,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캐나다는 역사가 150년 남짓으로 짧다. 게다가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다 보니 이탈리아, 그리스, 인도, 중동, 베트남, 일본, 중국 등 세계 각지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들이 많은 반면, 막상 '캐나다 음식'이라고 할 만한 것은 몇 안 된다.

그러니 바비큐도 여름의 아름다운 날씨를 누리기 위함이지 거기서 캐나다만의 특별함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그렇긴 하지만 '특색 있는' 여름음식 소개라고 했는데, 아무리 팩트라 하더라도 '캐나다의 여름 음식 바베큐를 소개합니다!' 하려니 어째 좀 민망하다.

'15년을 살았어도 내가 모르는 캐네디언들만의 여름음식이 있을지도 몰라' 작은 희망을 품고 검색을 해 보기로 했다. 'summer menus'로 검색하니 어라, 뭔가 있긴 있다. 요리 잡지와 요리 채널에서 여름 레시피들을 소개해 놓았다. 뭔가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던 나는 아뿔싸, 제대로 뒤통수 한 대를 맞고 말았다.

- 부엌에 있기가 너무 더운가요? 이 음식의 절반은 야외 그릴로 만들 수 있고, 나머지 절반은 전혀 불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 오븐에서 떨어지세요. 이 요리는 불이 필요치 않습니다. 시간도 거의 걸리지 않습니다.
- 야외에서의 저녁식사보다 좋은 건 없죠. 부엌에서 나가 그릴을 켠 뒤 손쉽고 맛난 향연을 즐기세요.
- 전부 다 그릴 위에서 요리되는 이 간단하고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면서 야외를 즐기세요.
- 이 간단한 토스카나 요리들로 바구니를 채워 공원에서 완벽한 일요일 소풍을 즐기세요.
- 여름철 식사는 무조건 쉬워야죠. 재빨리 만들어지는 이 요리에는 익숙한 재료들의 예기치 못한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 이 샌드위치는 들고 나가기 간편해서 잔디 위 식사에 적합하답니다. 


추천 레시피와 함께 적혀 있던 문구들이다. 문득 깨달음이 일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무엇을 먹느냐'보다는 '어떻게 어디에서 요리하느냐'였던 것이다. 가뜩이나 더운 여름날 뜨거운 불 앞에서 조리하지 않아도 되는 음식, 야외에서 먹기 편한 음식, 더 많은 시간을 야외활동에 할애하기 위해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음식. 비슷하거나 반복되는 표현들을 보며 그런 음식이 여름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캠프파이어 ⓒ 김수진


한국의 여름 음식이 더위에 지친 몸을 식히거나 보양해주는 '몸보신'을 중심 삼는다면, 캐나다의 여름 음식은 '불 앞에서 벗어나 야외활동 즐기기'에 방점이 놓여 있었다. 개념 자체가 달랐다. '캐나다에 무슨 여름 음식이 있냐'고 했던 건 한국식 사고에 가로막힌 섣부른 판단이었다. 이렇게 또 한번 깨닫는다. '다름'을 향한 문을 열면 '새로운 세상'이 들어온다.

캐나다에 살지만 한국인인 우리 가족은 종종 한국의 여름 음식을 해 먹는다. 캐나다 하면 추운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곳도 여름 한때는 한국 못지않게 덥다. 몇 주 전 최고 기온이 30도를 훌쩍 웃돌아 일주일 내내 폭염주의보가 걷히지 않았을 때는 오이냉국과 수박 화채로 더위를 날려 보냈다.

소면 말아 얼음 동동 띄운 오이냉국을 호로록호로록 들이켜고, 우유와 진저에일 부어 만든 수박화채를 나눠먹으며 여름 저녁이 깊어갔다. 이젠 아이들도 무더운 날이면 으레 "엄마, 오이냉국! 엄마, 물냉면!"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무산된 한국 방문 계획에 무너진 마음도 한국의 여름 음식으로 달래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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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째 손 맞잡고 함께 걷는 한 남자, 그리고 꽃같고 별같은 세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 런던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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