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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 깡패"... '묻지마 폭행' 피해 여성은 왜 이사를 했나

집까지 몰래 뒤쫓아 마구잡이 폭행한 50대 남성... 사천경찰서장 "피해자 중심으로 처리하도록 교육"

등록 2020.07.28 17:43수정 2020.07.28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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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B씨의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가해자 A씨의 모습. ⓒ 뉴스사천


여성 피해자 "경찰이 가해자 먼저 내보내 두려웠다"
"내 아들 깡패"라는 말 귀에 맴돌아 결국 이사 결정


[뉴스사천=고해린 기자] 7월 10일 8시 50분쯤, 어둠이 내려앉은 경남 사천시 벌리동의 한 주택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걸음의 50대 남성 A씨가 어슬렁거렸다. 퇴근 후 운동을 마치고 귀가하던 B씨(30대 여성)는 집 근처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A씨를 목격했다.

B씨는 A씨가 자신을 힐끔거리자 서둘러 자신의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B씨는 건물 2층에 있는 자신의 집 앞에서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던 중 뒤에서 이상한 숨소리를 느꼈다. B씨가 뒤를 돌아보자마자 몰래 뒤따라온 A씨의 마구잡이 폭행이 시작됐다. 만취한 듯한 A씨는 거친 욕설과 함께 이런 말도 내뱉었다. "내 아들이 깡패인데 니까짓 X는 맞아야 해."

B씨는 소리를 지르며 건물 밖으로 달아났다. 다행히 지나가던 시민들이 있어 더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A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현장에서 붙잡혔다. 이들은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그러니 이번 일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불특정한 대상에게 공격을 가한 '묻지마 범죄'였다.

이유 없이 당한 '묻지마 폭행'도 억울한데, B씨를 더욱 답답하게 한 건 경찰의 대응이었다. B씨가 지구대에서 피해자 조서를 쓰는 사이 A씨는 이미 귀가한 상태였다. 경찰은 그가 조사를 받기도 힘들 만큼 너무 취한 상태였노라 설명했다. 또 그의 신분과 주거지가 분명하게 확인된다는 이유도 들었다. A씨는 결국 "술에 취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식의 말만 남기고 떠난 셈이다. 

자신의 집 앞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한 B씨는 언제든지 A씨로부터 보복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폭행 과정에서 들었던 '깡패' 발언은 그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이에 B씨는 사건 당일엔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리고 이튿날인 11일엔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신변보호를 경찰에 요청했다. 경찰은 13일에 이르러 B씨에게 경찰 긴급 호출용 스마트워치를 지급했다. 그런데 이 스마트워치도 문제였다. 시험 삼아 버튼을 눌렀더니 B씨의 위치를 엉뚱한 곳으로 가리킨 것이다. 그가 새로운 스마트워치를 다시 받기까지는 열흘이 더 걸렸다.


현재 피해자 B씨는 살던 곳을 급히 떠나 이사한 상태다. 그는 <뉴스사천>과 통화에서 "가해자가 집을 알고 있기에 다시 찾아올까 두려워 이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을 향한 섭섭함도 드러냈다.

"여성이 '묻지마 폭행'을 당했는데, 어떻게 남성 가해자를 먼저 보내 버리나. 졸지에 나는 병원과 친구의 집을 옮겨 다녀야 했다. 또 내가 경찰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묻고 나서야 겨우 답을 들었는데, 정말 '이것밖에 안 되는 우리 경찰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B씨의 이런 억울함과 섭섭함을 경찰도 헤아린 것일까. 정창영 사천경찰서장은 지난 24일 "A씨를 주거침입과 폭행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며 "단순한 폭행 사건이 아닌 만큼, 이번 사건 이후 피해자 중심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강하게 교육을 했다"고 말했다.

한편, 범행 이후 몇 차례 소환 통보에도 차일피일 조사를 미루던 A씨는 22일이 되어서야 경찰에 조사를 받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묻지마 #폭행 #사천 #삼천포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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