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올라갔다가 홀딱 반해버렸다

금오름나그네의 삼의악오름 탐방

등록 2020.07.31 09:27수정 2020.07.3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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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4일, 금요일. 금요일에 오름 올라가는 모임 '금오름나그네'가 표선에서 먼 어승생오름에 올라가기로 했다. 가시리 슈퍼가게 앞에서 오전 10시에 만났다. 오후에 비가 예보되어 있어서 오전으로 바꿨다. 어리목 올라가는 주차장에 11시경 도착했다. 비가 오고 안개가 보통이 아니다. 어리목 주차장 쉼터에서 의논했다. 어승생악은 못 간다, 그냥 드라이브나 하자고 합의한다.
 

삼의악 입구 큰 나무가 있고, 담이 있다. 집터로 보이는 삼의악 입구 ⓒ 신병철

 
되돌아 간다. 관음사를 지나 5.16도로를 만나기 직전 안내판이 하나 보여 멈췄다. 언젠가 한번 올라가 봤던 삼의악오름이다. 이쪽은 비가 오지 않고 햇빛까지 난다. 한번 올라가 볼까? 갑자기 의욕이 폭발한다. 그냥 드라이브 보다는 오름 하나 올라갔다가 점심 먹자고 또 합의한다. 


길 따라 조금 들어갔더니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큰 나무가 있고, 주변에 낮은 담도 있다. 사람이 살았던 집터로 보였다. 길은 계곡을 옆에 두고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삼의악 입구 사유지를 거쳐 오름 올라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 신병철

 
삼의악까지 도달하는 길은 사유지다. 말을 방목하는 목장을 지나자 오름 올라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말을 통과 못하게 하는 문이 있으면 그게 오름 입구다. 말을 놀라게 하지 말아달라는 등 목장 주인의 부탁글이 붙어 있다. 평지보다 높은 오름은 대부분 공유지이고, 그 아래 평지는 사유지가 많다. 그래서 사유지를 통과해야 올라갈 수 있는 오름이 많다.
 

삼의악 샘 오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곳에 있는 샘 ⓒ 신병철

 
비가 올락말락 하기도 하고 햇빛이 드러나기도 하는 날씨라 온 천지가 깨끗하다. 나무 줄기를 밟으면 대단히 미끄럽다. 이런 날씨에 오름 오르락 낼리락 할 때 특히 조심해야 할 사항이다. 땀이 조금 날까 말까 할 때쯤 삼의악 샘에 도달했다.

물이 아주 깨끗하지는 않다. 고인 물 같기도 해서 마시고 싶지 않았다. 삼의악오름을 다른 말로 새미오름이라고 하는데, 마르지 않는 샘이 있어서 그렇단다.
 

삼의악 분화구 한라산 쪽으로 터진 말굽형 분화구 ⓒ 신병철

 
분화구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은 소나무 숲길이다. 비가 오다가 그친 때라 온 천지가 깨끗하다. 능선에 다 올랐다. 분화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안개가 끼지 않으면 저 멀리 한라산이 보인단다. 별로 크지 않은 분화구다. 삼의악은 해발 574.3m이고, 비고는 139m로 제법 높다. 비고는 제법 높으나 높게 느껴지지 않았다. 

뒤돌아서면 제주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상당히 복잡하다. 표선 시골에 사는 우리들은 저렇게 복작거리면서 살아야 하나 하고 조금 다행스러워 한다.
 

삼의악 정자 삼의악 정상에 있는 멋진 정자 ⓒ 신병철

 
전망이 확 트인 곳에 정자를 지어놓았다. 6각 정자다. 멋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정자에 앉았다 가야 하는 모든 조건이 만들어졌다. 단소를 꺼내 한 곡 분다. 정선아라리를 불어본다. 바람이 불어 소리가 제대로 안 난다. 단소로 안 되니 노래를 불러 땜빵한다. 제주에서 정선아라리가 어울릴 리 없다. 그래도 '올드 블랙조' 보다는 낫다.
 

삼의악 내려가는 길에 있는 멋진 소나무 ⓒ 신병철

 
올라온 길 반대로 내려간다. 안내판에는 없는 길이다. 길이 좋아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내려가니 삼의악샘이 나타났다. 샘에서 왼쪽으로 올라갔다가 오른쪽으로 내려온 것이다. 다행이었다.

내려가는 길도 미끄럽다. 문을 통과하고 들판을 거쳐 다시 입구로 돌아왔다. 들판에 서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잘 가라고 배웅한다.

어승생악 오름 대신 우연히 올라가게 된 삼의악오름에 우리는 홀딱 반해버렸다. 꿩대신 닭이었는데, 닭도 만만치 않았다. 제주에서 닭으로 유명한 데가 교래리다. 점심은 우리가 지나가야 할 교래리에서 닭을 먹기로 했다. 이래 저래 이번 탐방은 우연의 합작이다.


비가 와서 어승생악엔 못 올라갔다. 돌아가다가 우연히 삼의악을 보고 올라갔다. 지도에도 없는 길로 내려왔는데, 그 길이 제대로 된 길이었다. 돌아가는 길은 교래리를 지나가야 한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게 닭칼국수를 먹었다.

뭐가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는데, 그렇다고 제대로 되지 않은 게 하나도 없는 오름탐방이었다.
#삼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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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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