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뚫고 도착한 전 세계 한인들의 시

시지 <종소리> 제83호를 읽고

등록 2020.07.29 10:11수정 2020.07.2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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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동강 쑥섬에서 만난 재일 종소리 시지 회원들(2005. 7.). 이 가운데 두어 분은 그새 저 세상으로 떠났다고 한다. ⓒ 박도


눅진한 장맛비 속에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 도쿄에서 시지 <종소리> 제83호가 집으로 배달됐다. 나는 2005년 여름 평양에서 열린 민족문학작가대회에서 재일 조선인 시지 동인들을 만났다. 그날 이후 그분들은 계절마다 단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내 집으로 시지 <종소리>를 보내주고 있다.

초기에는 재일본 동포 시인들 시로만 묶더니, 최근에는 전 세계에 흩어진 동포 시인들 시를 담기 시작했다. 이번 제83호에는 모두 28편의 주옥같은 시가 실린 바, 거기서 두 편만 무작위로 뽑아 보았다. 

코로나(CORONA)
 

          리준식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CORONA)
총 한 방 쏘지 않고
사람과 물자, 비행기의 이동을 막는
교통수단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기존 질서를 뒤집어엎고 있다.

1차 산업혁명 이후
개발, 개발, 발전, 발전
돈, 돈, 돈
자연과 환경을 마구 파괴한
탐욕의 돈벌레들 질서에
경고를 보낸 코비드 19

넘치는 죽음, 쌓이는 시신들
비통, 탄식, 절규, 절망
공포, 불안, 침묵
스스로 격리되면서
숨가쁘게 살아온 삶
생의 존재를 생각한다.

어리석은 회한으로
자유시장경제 정치본산의 실체,
텅텅 빈 마트의 진열대와
총기로 자신과 제 가족만 지키겠다는
극단적 이기주의 야만국의 혼란 혼돈에서
이 지구상에서
야수적 자본주의의 종말을 본다.
                    (독일 거주)


씨앗꽃

          홍일선

고향에 가면
씨종자 간수하는 곳간 하나 있는데
어머니 아시는지요
볍씨며 대두 녹두 들깨 감자 아욱들
온갖 씨종자 정갈히 갈무리해 두었던 곳간
누에도 치고 담뱃잎도 말렸던
동무들과 숨바꼭질할 때 숨기 좋았던
흙집이 순식간에 사라진 아침
우리는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울기만 했습니다
어머니
생명 가진 것들은 사라져야 하는
운명을 모시고 사는 것인가요
아직 벼꽃 피우시지 않았지만
아직 녹두꽃 피어나지 않았지만
어머니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애지중지했던 씨앗들
모셔둘 곳간 다시 지어야겠습니다
이번에는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힘만으로 지은
꽃으로 집을 지키고 싶습니다.
씨앗꽃은 무엇이 좋을까요
어머니
                    (경기도 여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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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 <종소리> 제83호 표지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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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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