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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데... 해결책은?

1980년 7월 30일 '과외 금지 조치' 이후

등록 2020.07.30 08:26수정 2020.07.3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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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지역 고등학교 2학년, 3학년 학생들의 70%가 비밀 과외를 받고 있다고 보도한 경향신문 1988년 12월 19일자 보도 ⓒ 경향신문

 
오늘부터 꼭 40년 전인 1980년 7월 30일, 12‧12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세력은 정치적 목적으로 '7‧30 교육개혁 조치'를 발표했다. 조치의 핵심 중 하나가 '과외 금지'였다. 이때부터 학교 밖 과외수업이 전면 금지됐다.

가난한 집 대학생들의 생활비 및 학비 조달 수단이 없어졌다는 문제가 당장의 사회적 현안으로 떠올랐다. 과외 아르바이트에 의존하던 학생들은 갖은 잡일에 뛰어들었지만 노동 강도와 소요 시간에서 견줄 만한 수입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나마 일자리도 턱없이 부족했다.

비밀과외도 문제였다. 과외비는 2~3배 올랐고, 상류층 자녀들은 여전히 과외교습을 받았다. 그 무렵 필자는 일반계 고등학교 교사였다. 대학 1년생이 된 지난해 고3 제자가 여름방학을 맞아 찾아왔기에 '학비 조달에 어려움은 없느냐?'는 요지의 질문을 했었다. 제자의 대답은 39년이 경과한 지금까지도 생생하고도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선생님, 놀라지 마세요. 요즘 제가 돈 많이 벌고 있답니다. 친척 소개로 가정교사를 하는데, 그 집 거실에 전두환 사진이 걸려 있어요. 그걸 보고 처음에 얼마나 놀랐던지… 이런 과외를 계속해야 하는지는 판단이 잘 안 서지만, 등록금 대는 데에는 조금도 문제가 없답니다."

'지어낸 이야기겠지!' 하고 반신반의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엄연한 실화다. 1988년 12월 19일 자 <경향신문>은 "과외 금지 조치 이후 한때 수그러들었던 과외 열풍이 다시 세차게 불고 있다"면서 "특히 부유층에서 비밀과외가 성행하고 있다. 단속반을 피해야 한다는 '위험수당' 명목으로 과외비가 크게 올랐고, '승용차 과외' '별장 과외' '심야 과외'가 등장했다. 강남 지역 고교 2·3학년의 70%가량이 이미 과외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결국 조치가 내려진 지 8년여 만에 부분 과외, 즉 대학생과 학원 강사에 한해 교습 행위가 허용되었다. <머니투데이> 2016년 7월 30일 자 기사는 부분 과외 허용 조치가 내려진 데 대해 "돈이 없어 학업을 중단한 대학생들이 정부에 대한 반항심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 좌경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책이었다"고 해석했다.

대학생 좌경화 막기 위해 '부분 과외' 허용


이윽고 2000년 4월 27일 헌법재판소는 과외 금지 조치를 위헌이라고 판정했다. 과외 금지 조치가 내려진 것이 1980년인데 헌법재판소는 1987년에 설립된 후 13년이나 지나서야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2000년은 이미 과외 금지 조치가 실효성을 완전히 상실한 뒤였다.

필자는 헌법재판소의 과외 금지 조치 위헌 결정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헌재는 첫째, 자녀의 양육과 교육은 부모의 천부적 기본권이므로 이를 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헌법에 명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부모의 자녀교육권'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헌재는 둘째, 과외 금지 조치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정신과 배치된다고 판시했다. 셋째, 학교 밖에서는 부모가, 학교 안에서는 학교와 부모가 함께 교육권을 행사하는 것이 우리의 헌법정신이므로 하교 이후의 가정교육을 국가가 일괄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보았다.

넷째, 과외 금지 조치는 배우고자 하는 아동과 청소년의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 자녀를 가르치고자 하는 부모의 교육권, 과외교습을 하고자 하는 개인의 직업선택의 자유 및 행복추구권을 제한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했다.

그 외 헌재는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려는 입법 목적은 정당하지만, 사적 교육의 영역에서 부모와 자녀의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면 국가의 문화를 빈곤하게 만들고, 문화의 빈곤은 궁극적으로 사회·경제적 후진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헌재의 판결은 학교 밖 사교육은 부모의 권한이며, 이를 지나치게 통제하면 나라의 문화·사회·경제적 수준이 하락한다는 취지다. '과연 그런가?' 싶은 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날 만큼 논리 전개가 궁색하다. 아무튼 필자는 헌재의 2000년 과외 금지 위헌 결정이 사교육 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국가적 우려를 해소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판단한다.
   
우리나라 사교육 광풍은 근본적으로 대학입시와 관련된 것이다. 1968년 중학교 입시 폐지, 1974년 고교 평준화 실시 등의 정책은 대학입시와 직결되지 않는 조치였던 까닭에 사교육 해소에 별로 기여할 수 없었다. 심지어 고위 권력층의 자녀가 일류 중학교, 일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현안을 해소하기 위해 미봉책으로 강구되었다는 풍문이 떠도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교육 광풍은 '부의 대물림' 가능한 대입 제도 때문
 

서울대 신입생의 부모 절반이 기업체 간부, 고위 공무원, 의사, 법조인, 교수 등 화이트칼라 고소득층 자녀라고 보도하고 있는 한국일보 2001년 8월 4일자 신문 기사 ⓒ 한국일보

 
거의 20년가량 전인 2001년 8월 4일 자 <한국일보> 보도를 예로 살펴보자. 기사에 따르면 서울대 신입생 2명 중 1명은 고소득 화이트칼라 계층의 자녀로, 아버지의 직업이 기업체 간부·고위 공무원 등 관리직인 경우가 28.0%로 가장 많고, 의사·교수·법조인 등 전문직이 24.8%(도합 52.8%)였다.

게다가 고소득 화이트칼라 자녀의 비율은 음대(77.7%), 미대(69.2%), 의대(64.9%), 법대(61.5%), 경영대(60.9%)로 갈수록 더욱 높았고, 농생대(37.0%), 사범대(34.6%), 간호대(34.4%)는 평균치보다 훨씬 낮았다. 뿐만 아니라 회사원·은행원·일반 공무원 등 사무직 16.5%를 더하면 화이트칼라가 차지하는 전체 비율은 69.3%까지 치솟았다.

그에 비해 판매직은 9.7%, 생산직은 8.5%, 서비스직은 5.3%, 농·어업은 3.5%에 지나지 않았다. 기사는 서울대 본부 관계자의 "서울대 출신이 사회적 지위 획득에 유리한 게 현실"이라면서 "최근 몇 년간의 신입생 분포를 볼 때 '부의 대물림' 현상이 심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라는 걱정도 소개했다.

이 기사는 사교육 광풍의 원인을 적나라하게 짚어준다. 세칭 일류대학의 특정 학과를 졸업할수록 '부의 대물림'에 유리한 우리나라 현실이다. 따라서 사교육비 해소와 주입식 교육의 병폐를 해결하는 길은 과외 금지가 아니라 과외가 소용없는 대학입시제도의 도입에 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 2020년 7월 29일 자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로부터 대입전형 업무를 위탁받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낮추려는 대학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수시 전형에 응시한 학생들이 수능에까지 매달려야 하는 이중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교육부가 지난 2018년 권고한 '수시에서 수능 최저 학력 기준 폐지' 방침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수능 점수가 많이 반영될수록 대도시의 부유층 자녀에게 유리하고, 내신이 높게 반영될수록 그 반대 결과가 나타난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수능 점수를 최대한 많이 반영하는 대신 수능 최저 기준의 폐지 또는 하향을 반대하는 것은 학교들이 대부분 사립이기 때문이고, 교수들이 대체로 대도시 상류층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수능과 내신 모두의 폐지가 '부의 대물림' 현상과 사교육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본다. 수능 폐지는 일찍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벌어졌을 때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가 1998년 4월 15일 자 논설을 통해 진작 권고해주었다. 한국이 IMF 관리 체제라는 불행을 겪게 된 데에는 암기식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한 사회지도층이 국가경영에서 능력상의 취약성을 드러낸 탓이라는 것이 논설의 요지였다.

공교육 틀 안에서 논술 책임질 방안 필요

그 이후 우리나라는 한때 교육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고, 한국의 교사가 텔레비전 공익광고 모델로 출연하여 "저의 경쟁 상대는 프랑스의 교사입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오늘도 대학들은 수능 최저 기준조차 폐지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속된 상류사회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에 수능이 가장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수능을 없애고 내신만 반영하는 입시제도의 도입은 실현가능성이 없다. 그렇게 되면 집값을 평준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둘 다 폐지하는 도리뿐이다. 또 내신은 비인간적이기도 하다. 사람은 가까울수록 서로 돕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같은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는 벗과 3년 동안 경쟁하는 제도는 사회를 황폐화하는 데 한몫할 것이 자명하다.

"저의 경쟁 상대는 프랑스의 교사입니다"라는 한국 교사의 공익 광고가 답이다. 이는 논술 채점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서울대의 한 교수가 2006년 10월 31일 자 <조선일보>를 통해 이미 결론을 내렸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논술 답안은 거의 지방 학생의 것"이라면서 "공교육의 틀 내에서 논술을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해 같은 달 1일 자 <한국일보>에 게재된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관계자의 지적도 같은 인식을 보여준다. 그는 "처음에 자기 생각을 쓰던 학생들도 논술 대비 학원에서 짧은 시간 동안 논술 공부를 하다 보면 글 전개 방식부터 사례까지 비슷해진다"면서 "이 경우 금방 티가 나게 마련이며, 아무리 논리 전개나 구성이 짜임새가 있다 해도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논술로 대학입시를 치르면 사교육이 무용해진다는 뜻이다. 프랑스에는 수능 형태의 대입 시험이 없다.

대학평준화는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논술 대입 전형 제도가 도입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가재는 게 편'이다. 대입 제도 결정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상류층이다. 그들은 서울의 소형 아파트가 4억 원을 상회하여 청년들이 국가적 절망에 빠져 있어도 '나 몰라라' 하는 속성을 지닌 이들이다.

그들은 내신을 양념으로 끼워 넣음으로써 사회적 불만을 억누르려고 계산할 뿐이다. 임대 아파트를 청년들에게 많이 공급하여 집값을 안정시키겠다 식의 호도책을 '국가백년대계'인 교육에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과외금지 #수능 #내신 #집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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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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