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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이 한마디에 엄마는 작가가 됐다

[에디터만 아는 TMI] 책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를 쓴 송주연 시민기자

등록 2020.08.12 13:54수정 2020.08.12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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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라이프플러스 에디터만 아는 시민기자의, 시민기자에 의한, 시민기자를 위한 뉴스를 알려드립니다. [편집자말]
'에디터만 아는 TMI(Too Much Information)' 다섯 번째다. 사실 매주 연재할 생각은 없었는데, 쓰다 보니 주간 연재가 되고 있다(는 건 나만 아는 이야기). 이번 TMI의 대상은 바로 송주연 시민기자다. 2019년 올해의 뉴스게릴라(사는이야기 부문)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2월 창간기념식이 취소되면서 시상식도 못 한 비운의 주인공(아, 쓰고 나니 더 슬프다).

<오마이뉴스>에 약 2년간 연재한 '나의 독박돌봄노동 탈출기'와 '엄마의 이름을 찾아서'를 바탕으로 한 책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가 지난 6월 초 출간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는 지난 7월 말에야 이 책을 손에 쥐었는데, 전혀 예상 못 한 순간,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책 뒷표지를 보고 나서였다.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 겉표지. ⓒ 스몰빅에듀

 
때는 2020년 3월 17일 화요일 오전 11시 1분. 오연호 대표의 카톡 메시지였다. 메시지와 함께 이메일을 캡처해서 보낸 이미지도 있었다. 시민기자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 편집자가 오 대표에게 추천사를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오 대표는 '이 책의 추천사 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내 의견을 말했다.


"아... 그 책 내시는 송주연 시민기자님은 2019년 사는이야기 부문 올해의 뉴스게릴라 상 받으신 분이세요. 지난 2월 말에 화제가 되었던 사는이야기, '저는 지금 대구에 삽니다' 있잖아요. 바로 그 기사를 쓰신 분이에요. 대표님이 추천사를 써주시면 많은 힘이 될 것 같아요."
"오케이, 쓰도록 합시다."


오전 11시 16분. 정확히 15분 만에 이뤄진 결정이었다. 그러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책 뒷표지에서 오 대표 이름을 보고 나서야 '아, 그때 말한 그 추천사가 진짜 실렸네?'라고 생각했다. 오 대표는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처럼 살고 있는 모든 엄마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자신을 잃어버린 엄마가 스스로를 찾아가는 모습은 통쾌했다. 끝내 홈런을 친 짜릿한 역전 드라마였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빠도 아이도 같이 행복해진다. 한 가정의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이 책을 읽으며 참 많이 반성하게 됐다.' 
 

송주연 시민기자가 쓴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 책 뒷표지.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쓴 추천사. ⓒ 최은경

 
조금 신기했다. 오 대표가 추천사를 써 준 시민기자 책이라서도 그렇고, 오 대표가 책을 읽고 반성까지 했다고 해서 놀랐다. 그러데 사실 나는 송주연 시민기자를 떠올리면 그의 아이가 먼저 생각난다.

2년 전인가. 그의 아들을 창간기념일 시상식에서 만난 적 있다. 당시 송주연 시민기자는 2018년 2월 22일상을 받았다. 엄마가 상 받는 자리에 함께 온 아이에게 사회자가 수상 소감을 그냥 한번 물어본 것 같았는데... 당시 5학년이었던 아이가 또박또박 말했다. 

"글 쓰고 상담하는 엄마의 꿈이 이뤄진 것 같아서 좋아요."

그때도 '듣고' 울컥했는데, 다시 '쓰는' 지금도 울컥하게 만드는 명품 소감이다. 아들의 이 한 마디는 '엄마의 이름을 찾아가는' 글의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책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로 마무리되었다. 송주연 시민기자가 '이 책의 시작이 아들'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런데 의외의 이야기 하나. 송주연 시민기자는 글을 쓰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소중하고 기뻤지만, 엄마로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고 했다. 

"책이 나와서 아이가 저보다 더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가 저에게 미안해하는 느낌이 있어요. 자신이 태어나서 엄마가 고생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아이에게 '그런 건 아니라고 네가 있어서 이런 책도 쓸 수 있었다'고 말해주는데, 가끔씩 '엄마, 내가 아기 때 힘들게 해서 미안해'라고 말하는 게 조금 걸려요.

아이가 책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아직 초등학교 6학년이니까!), 글을 쓰면서 제가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이에게 이야기를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엄마 마음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건 아닌가 싶어 안쓰럽기도 하지만, 또 모르고 살아선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차라리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나은 거 같기도 해요."


양가적인 감정에서 오는 혼란스러움. 아이는 예쁘지만 키우기는 힘들고, 나는 소중하지만 매일 나를 갈아넣지 않으면 안 되는 육아. 언제 이 쳇바퀴에서 나와 나답게 살 수 있게 되는 건지 매일 묻게 되는 일상의 반복. 엄마가 되면서, 송주연 시민기자도 나도 그리고 지금 엄마로 살고 있는 이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아이들도 겪어내야 할 수밖에 없는 감정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마음을 털어놓은 송주연 시민기자에게 나는 '힘들기도 했지만 좋은 일도 많았던.... 인간의 그런 양가적인 감정을 아이가 이해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 그의 아이는 이미 그걸 이해하고 있는 것 같으니 걱정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책에 나오는 이 대목을 보라.
 
"엄마, (책 제목) 4월의 겨울 어때? 엄마 책은 엄마의 30대부터 40대 초반 이야기잖아. 인생을 1년이라고 보면 요즘은 100살까지 사니까, 30대면 4월쯤 될 거 같아. 4월이면 따뜻하고 꽃도 피고 그런데 엄마 책 이야기를 들어보면 엄마들은 그 시기를 겨울처럼 춥게 보내고 있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4월의 겨울 어때?"

책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아이와 함께 고민하다가 나온 이야기라고 했다. '4월의 겨울'이라니... 아이의 말에 코끝이 찡해졌다는 송주연 시민기자. 아이의 말에 '나의 4월'도 함께 위로 받은 기분이었다.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 <분노와 애정>에서 제인 라자르는 썼다. '애들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애는 내 삶을 망가뜨려. 두 번째 문장은 첫 번째 문장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일관성이 있었다. 우리가 양가성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양가성을 잘 받아들이는 능력, 그것이 바로 모성애가 아닐까'라고. 이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어디 모성애만 그럴까. '양가성을 잘 받아들이는 능력'은 아이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주연 시민기자의 아이를 보면서도 그런 걸 느꼈고, 같은 책에서 에이드리언 리치의 첫째 아이가 "엄마는 늘 우리를 사랑해야 한다고 느끼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한시도 빠짐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관계는 없어요"라고 한 말에서도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이해 받고 싶어하는 존재니까. 혼란스러운 감정을 솔직하고 주고 받는 것, 이만큼 좋은 관계의 기술이 있을까. 그것이 엄마든 아이든 간에. 그러니 '차라리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나은 거 같다'는 말은 옳다.

나는 궁금하다. 엄마라는 이름
에 자신의 삶을 가두지 않고 온전하게 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고민하는 작가 '송주연의 삶'과 그런 엄마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자란 이 아이의 삶이. 그걸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작가 송주연이 '엄마의 글쓰기'를 계속 쓰는 것. 내 기꺼이 그들의 독자가 되겠다.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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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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