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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체 발견!" 탈북민 월북 사건이 소환한 군 시절 기억

우리 겨레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등록 2020.08.01 11:42수정 2020.08.0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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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탈북했던 북한 이탈 주민이 최근 월북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27일 오전 강화도 양사면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앞으로 황톳빛으로 변한 한강이 흐르고 있다. ⓒ 연합뉴스


장마가 주춤하자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냉콩국수가 생각이 나서 단골집에 들러 막 젓가락을 드는데 TV 자막에서 "합참, '월북민 감시장비 7차례 찍혀' 해병대2사단장 보직해임"이란 기사가 뜨고 있다. 꼭 51년 전, 그곳 강 건너 파주 심학산 밑 한강 하구에서 경계 근무를 오지게 섰던 나로서는 새삼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나는 보병 제26사단 73연대 3중대 2소대장으로 1969년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8개월간을 그곳에 근무하면서 참으로 오지게 고생했다. 당시도 한강 건너 강화도 쪽은 해병대가 주둔했고, 한강 동쪽(경기도 파주) 둑은 육군, 곧 우리 사단이 지켰다. 우리 부대는 서울 외곽 송추 일대를 지키다가 부대 이동으로 그쪽을 갔다.
  

한강 하구에서 소대원들과 함께(1969. 12. 왼쪽 첫번째 유하사, 네번째 기자.) 멀리 보이는 곳은 북한 경기도 개풍. ⓒ 박도

 
당시 우리 중대의 경계지역은 이산포에서 산남리까지 약 6킬로미터의 절반 북쪽 한강 둑을 담당했던 바, 그 둑을 50미터 간격으로 60여 개의 무개호(지붕 없는 초소)를 파서 2인1조로 야간 잠복초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부대 이동 후 그 초소를 보니까 아찔했다.

초병들은 비바람을 조금도 피할 수 없었다. 60여 개의 무개호에 야간 잠복조를 운영하니까 중대 병력의 3/4이 야간 근무 조에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병력은 야간 자대 근무를 섰다. 그러자 우리 중대 전 병력이 경계근무를 서는 밤낮이 완전히 뒤바뀐 올빼미 근무로 병사들은 매일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간첩들의 주요 침투로

강둑 무개호 초소는 2명1개조로 일몰부터 다음 날 일출 1시간 전까지 밤샘 잠복 경계근무를 섰다. 강둑 중간 중간 분대장 초소에는 전화가 가설돼 있지만, 나머지 초소에는 새끼로 견인줄을 만들어 상호 연락케 했다. 초소에는 M16소총, 경보 탐지기, 야간조준경 같은 최신 장비도 갖췄다. 그런 최신무기와 새끼줄과 같은 원시무기가 공존했다. 초병들은 비나 눈이 오면 고스란히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상급부대에서는 초병들의 근무 여건과 인권은 전혀 고려치 않은 무지막지한 근무 여건이었다. 다만 수문 위의 주야간 감시 초소만은 원두막처럼 짚으로 지붕이 덮여 있었기에 순찰자들은 중간 거점으로 쓰고 있었다.

남북으로 이어진 강둑에는 철조망이 강과 나란히 이중으로 쳐 있었다. 그 철조망에는 해질 무렵 과수원 울타리 탱자나무에 참새 떼들이 몰려 앉은 것처럼 녹슨 깡통과 조명 수류탄들이 너절하게 달려 있었다. 한강 하류와 임진강 하류가 합수하는 지점 저 멀리 북녘 땅은 날마다 24시간 대남방송이 여울지며 떠듬거렸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하는 하구 지대는 북한군 특수부대 요원들이 남파하기 가장  쉬운 곳으로 임진강 하구 북한의 개풍 강안에서 조수가 들어올 때 고무보트를 타고 가만히 있어도 30분 정도면 우리 측 한강 하류에 닿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일대는 그 무렵 간첩들의 주요 침투로였다. 특히 1·21 사태 이후 우리 군에서 경계를 부쩍 더 강화시킨 곳이었다. 
  

한강 하구 지역 당직 근무 때 문중사(오른쪽)와 함께 조명탄 발사대에서. ⓒ 박도

 
괴물체 발견!

이번에 탈북민이 다시 입북한 지점은 당시 내가 근무했던 바로 강 건너 해병대 지역으로 밝혀진 곳이다. 최근에 나는 그 일대와 파주 출판 단지에 볼 일이 있어 둘러보니, 지난날과 같은 무지막지한 무개호는 없었고 대신 훨씬 촘촘해진 철조망과 각종 최신장비들이 병력을 대신하여 주야간 경계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 무렵 일화다. 장마가 진 다음 날 밤 당직으로 상황근무를 서고 있는데 한 초소에서 신호음과 아울러 어댑터에 불빛이 번쩍거렸다. 괴물체를 발견했다는 신호였다. 일단 상황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초소와 상황실 간은 음성으로 교신할 수 없었다.

'비상 출동할 테니 계속 주시하라'는 암호 답신을 보낸 후, 중대장 숙소 그리고 대대 상황실에 보고를 했다. 나는 당직하사를 시켜 각 소대 잔류 병력에게 비상을 걸었다. 그새 중대장이 숙소에서 허겁지겁 달려 왔다.
 
"괴물체가 나타났다는 보고입니다."
"좋았어. 일망타진하자고."

중대장의 얼굴에는 활기가 돌았다. 무장간첩을 잡으면 로또복권 당첨처럼 횡재였다. 1계급 특진에 포상금, 포상휴가 등으로 평상시에 좀처럼 얻을 수 없는 행운이었다. 날이 밝으면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이 달려와서 찬사와 포옹과 악수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 얼마 전 이웃 사단에서 DMZ철책을 뚫고 침투하려던 무장간첩을 사살한 병사가 영웅의 대접을 받으면서 사단장 전용헬기로 고향에 돌아갔다. 그는 고향에서 성대한 군민환영대회까지 치렀다.

비상 발령으로 중대 잔류병들은 단잠에서 깨어나 신속한 동작으로 연병장에 집결했다.

"비상! 괴물체 발견! 출동 준비!" 
  
병기계가 탄약고에서 실탄과 수류탄을 날아왔다. 우리 소대 순천 출신 유 하사가 말했다.
  

당시 소대원들과 함께(앞열 오른쪽 기자). ⓒ 박도

 
한밤중의 해프닝

"어메 좋은 것. 내가 공비 때려잡은 뒤 헬기 타고 고향 앞으로다..."

그러자 월남에서 갓 돌아온 문 중사가 경고했다.

"입 닥쳐! 주둥아리 함부로 놀리다가 고향은커녕 먼저 황천행이다."

그는 상대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실전으로 알고 있었다. 모두들 기본 실탄과 수류탄 2개씩을 지급받았다. 자대 경계근무자만 남기고 전 중대원이 둑 아랫길 신호를 보낸 초소로 출동했다. 먹빛 같은 야음이었다.

야간조준경으로 전방을 응시하자 강물 위에 괴물체가 꿈틀거리는 것이 뚜렷이 보였다. 이미 각 초소에는 견인줄로 전달돼 초병들은 잔뜩 긴장한 채 중대장의 사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괴물체가 강안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러자 중대장이 즉각 명령을 내렸다.

"사격 개시!"

서치라이트를 비추고 조명탄을 발사했다. 각 초소마다 총구에서 불을 뿜었다. 수류탄, 크레모아도 터졌다. 그새 강 건너 김포 쪽 해병여단과도 교신이 돼 그쪽에서도 조명탄을 지원했다. 콩을 볶는 듯 요란한 사격이 30여 분 계속됐다. 괴물체는 마침내 강바닥에 나뒹굴었다.

"사격 그만!"

중대장의 사격 중지 명령으로 강둑에는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역류하는 강물, 바닷물 소리만 세찼다. 조명 발사대에서는 계속 조명탄을 쏟아 부었다. 괴물체는 총알을 여러 방 맞았는지 강가에 드러누운 채 꿈틀도 안 했다. 문 중사가 일개 분대를 이끌고 강가 괴물체로 접근했다.
 
'태산명동에 송아지 한 마리'


그의 보고에 따르면, 괴물체는 사람이 아니라 송아지라고 했다. 어느 농가의 송아지가 장마로 불어난 물길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가운데 저도 애써 살겠다고 강둑으로 기어오르다 무장공비로 오인 초병들의 총알 세례를 된통 맞고 쓰러진 것이었다.

"헬기 타고 휴가 가긴 다 틀렸네."

안동 출신 임 상병이 투덜거렸다.

"아, 오늘 저녁에는 송아지 고기 맛 좀 보겠네"
"아, 좋아들 하지 마. 깡통들에게 그 차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여."


문 중사는 임 상병의 말에 면박을 줬다. 그날 밤 비상은 '태산명동에 송아지 한 마리'였다. 이튿날 아침 대대장은 식전 댓바람에 달려와서 현장을 확인하고 송아지를 마대에 담아 스리쿼터에 싣고 갔다.

며칠 후 초소에서 신고한 두 초병은 보름 포상 휴가증을 받고 고향으로 떠났다. 그로부터 꼭 50년이 지났다. 여태 휴전선 철책은 둘러쳐진 채 남과 북의 병사들은 총구를 맞대고 있다. 한 탈북민의 월북으로 해병사단장이 보직 해임됐다는 뉴스를 보자 가슴이 쓰리다.

우리 겨레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탈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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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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