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대부도 네 발로 기어 올라갔던 길

백무동-세석평전-의신마을 등산로 답사

등록 2020.08.03 16:20수정 2020.08.0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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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들어온 지 12일째. 오늘은 도보여행 코스가 아니라, 사대부와 빨치산의 길을 답사하기로 한다. 이 등산로는 조선시대 사대부들과 6.25 전후 빨치산들이 많이 다녔던 길이기도 하다. 지리산에서 가장 험한 등반코스 중 하나인 백무동-한신계곡-잔돌고원(세석평전)-대성계곡-의신마을을 걷는 코스다. 거리는 백무동-세석평전 6.5킬로미터, 세석-의신마을 9.1킬로미터, 총 15.6킬로미터. 시간은 약 8~9시간. 초중급 도보여행자는 걷기 힘든 초고난도 코스다. 등산객들도 다니기 힘든 길이다.

오늘 새벽에 정령치에서 해돋이를 함께 구경한, 전주에서 온 친구 김 박사가 백무동 입구까지 태워 주었다. 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작은 슈퍼에서 캔커피와 초코파이, 영양갱 등 점심거리를 사고 배낭을 맡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흘 후에 여기 백무동 파출소와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이 발칵 뒤집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백무동 탐방안내소에서 조금 올라가면, 등산로가 두 개로 갈라진다. 하나는 하동바위를 거쳐, 장터목으로 올라가는 코스다. 조선시대 때, 양대박(1586년 9월 2일 ~ 9월 12일, 두류산기행록), 박여량(1610년 9월 2일 ~ 9월 8일, 두류산일록) 등 사대부들이 백무동에서 천왕봉을 올라갈 때 많이 이용했던 코스다. 다른 하나는 여기서 한신계곡을 거쳐 세석평전으로 올라가는 코스다. 김종직(1472년 8월 14일 ~ 8월 18일, 유두류록)은 천왕봉에 올랐다가 이 코스로 내려왔다.

백무동은 빨치산의 활동무대이기도 했다. 1951년에서 53년 사이에 남부군이 토벌대를 피해 다니면서, 여기 골짜기에 남아 있었던 숯을 굽던 숯가마나 목기를 만들던 목기막에서 눈을 치우고 숙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6.25 전후에 여러 빨치산 부대들은 지리산 전체를 활동 무대로 삼았다. 그중 이현상이 지휘하는 남부군은 나중에 군경토벌대에 쫓길 때, 지리산 주능선(노고단-천왕봉)과 남부능선 (세석평전-삼신봉)을 중심으로, 주로 백무동-세석평전-대성계곡 코스와 대성계곡-빗점골- 반야봉-뱀사골 코스를 오가면서 활동했다.
  
나는 의신마을로 넘어가기 위해 장터목 대신 세석평전 코스를 선택했다. 백무동 탐방안내소에서 가내소폭포까지(이 구간을 '가내소자연관찰로'라고 한다) 2.5킬로미터는 평범한 등산로다. 그러니까 초중급 도보여행자들도 여기까지는 왕복할 수 있는 코스다. 왕복 5킬로미터이니까 걸을 만하다. 그러나 오른쪽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가내소폭포에서 세석평전까지는 4킬로미터. 마지막 1킬로미터 구간은 엄청난 경사길이 이어진다. 조선 사대부들이 네 발로 기어서 올라갔다고 할 정도로 경사가 심해서, 스님들이나 하인들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올라갔다.

아침 8시에 백무동을 출발하여, 12시쯤 잔돌고원에 도착했다. 지리산에 오기 전에 하루에 10킬로미터씩 걷는 연습을 해서인지 비교적 쉽게 올라왔다. 무릎도 아프지 않고, 숨도 별로 차지 않았다. 평소에 등산을 하지 않는 나로서는 놀라운 결과였다. 나중에 친구 김 박사는 내가 이 코스로 혼자 올라왔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리산에서 등산을 자주하는 자기도 어려워하는 코스라고.

<남부군>의 저자 이태(1997년 76세로 작고)도 1951년(또는 52년) 어느 가을 중순경, 거림골 환자트(환자가 숨어있는 아지트)에 있다가 회복되어, 사단본부로 복귀하는 길에 선요원을 따라 이 잔돌고원을 지나가게 된다. 그때 이 잔돌고원 부근 산막에 살던 어느 약초꾼 부부에게서 저녁밥을 얻어먹고, 하룻밤을 자고 간 적이 있다. 그는 나중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드리려고 백록각이라는 위장약 3봉지도 사간다. 나중에 그 부부가 토벌대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는 큰 슬픔에 빠진다.
 

지리산 남부능선에서 바라본 거림골 ⓒ 고태규

남부군의 주요 비트(비밀 아지트)가 남부능선 동쪽 사면에 있는 거림골(산청군 시천면 내대리)에 있었기 때문에 토벌대에 쫓길 때마다 남부능선을 타고 세석평전을 넘어 백무동 쪽으로 도망가거나, 대성계곡을 거쳐 빗점골과 토끼봉을 지나, 뱀사골 방향으로 피신하곤 했다. 그러다가 토벌대들이 철수하면, 다시 거림골로 돌아가곤 했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는가.

나중에 극한 상황에 몰렸을 때는 보급 투쟁도 나갈 수 없어서 식량이 떨어져, 5~6일 만에 한 끼씩만 먹고 지리산 능선과 계곡을 넘나들었다. '불굴의 전사'라는 말은 허울 좋은 이름뿐이었고, 피골이 상접한 거지 중의 상거지가 되었다. 한겨울에 다 찢어진 고무신을 신고, 발을 광목과 전선줄로 동여맨 채, 토끼몰이 당하듯 이리 몰리고 저리 쫓겨 다녔다. 고무신조차 없는 사람들은 동상 걸린 맨발에 헝겊을 동여맨 채,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을 넘나들었다.


하룻밤에도 몇 번씩 주능선을 이쪽저쪽으로 넘나들면서, 생사를 가르는 고비를 넘기다 결국 모두 지리산의 혼백이 되었다. 그들은 남북한 양쪽으로부터 모두 버림을 받고, 토벌대의 총에 맞아 죽거나, 동상에 걸려 얼어 죽거나, 배가 고파 굶어 죽어갔다. 생포되거나 귀순한 사람들도 많았다. 빨치산 중에는 10대에서 20대까지 여성들도 많았다.

세석대피소에서는 햇반과 초코파이만 팔았다. 초코파이 5개를 사고, 커피를 다 마신 캔에는 물을 담았다. 이걸 먹으면서 대성계곡을 거쳐 의신마을까지 내려가야 한다. 약 4~5시간 코스다. 이 코스는 빨치산 뿐 아니라, 조선시대 사대부들도 화개 쌍계사로 갈 때, 자주 이용했던 코스다. 남효온(1487년 9월 27일 ~ 10월 13일, 지리산일과), 김일손(1489년 4월 14일 ~ 4월 28일, 두류기행록), 유몽인(1611년 3월 29일 ~ 4월 8일, 유두류산록) 등이 이 경우이다.
 

지리산 야생화 산수국(대성골) ⓒ 고태규

전체 9.1킬로미터 중 남부능선 삼거리에서 큰세개골(대성골 상류) 구간은 정말 최악의 등산로였다. 내려오는 길인데도 짜증이 절로 났다. 이렇게 험한 등산로는 본 적이 없다. 요 며칠 폭우로 등산로가 다 패여서 한 발 한 발이 스릴이었다. 이 코스는 평소에도 지리산 등산로 중에서 가장 험한 코스로 유명하다. 난이도 별 5개중 4.5개, 백무동-세석평전은 별 4개, 중산리-천왕봉은 별 3개(정선중, <지리산여행> 참조)다.

두 가구가 민박을 하는 대성마을을 거쳐, 오후 4시 경에 의신마을로 내려왔다. 의신마을 위쪽에 있는 삼정마을 빗점 부근에는 전설적인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마친 장소가 있다. 나는 걸어서 국토종단 여행할 때인 2013년 1월 1일, 지리산에 흰 눈이 쌓인 날, 아내와 함께 마천면 음정마을에서 벽소령을 넘어, 삼정마을을 거쳐 의신마을로 내려왔었다. 그때 그 곳을 한번 찾아가려 했으나 실패한 적이 있다. 언젠가는 꼭 한번 찾아가서 향을 피울 것이다.
덧붙이는 글 사진이 첨부하는 과정에서 자꾸 뒤집히네요. 원인을 모르겟습니다. 편집부에서 조정해주시면 감사하겟습니다.
#백무동 #세석평전 #의신마을 #한신계곡 #빨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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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실크로드 여행을 좋아합니다. 앞으로 제가 다녀왔던 지역을 중심으로 여행기를 싣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성원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도보여행기도 함께 연재합니다. 현재 한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관광레저학박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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