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고함에 발길질까지... 봉변당한 간절곶 거리공연 예술가의 호소

[인터뷰] 송정배 클라운송 프로덕션 대표 "안전하게 공연할 수 있기를"...울주군 사과

등록 2020.08.03 22:25수정 2020.08.03 23:05
2
원고료로 응원
   
play

송정배 대표의 거리예술공연 2일 울산 울주군 간절곶공원에서 송정배 대표가 거리예술공연을 하고있다.. 공연 중반, 한 남자가 무대에 난입해 고함에 발길질을 하며, 공연을 중단시켰다. 이 남성은 공원과 계약한 사설경비업체의 직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 송정배


어느 야외 공연의 무대 위. 한 남자가 하얀 끈에 붉은 손수건을 끼우며 공연을 하고 있다.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30여 명의 관객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갑자기 검은바지에 흰 티셔츠, 검은 마스크를 착용한 남자가 무대위로 올라왔다. 그가 공연 소품인 하얀 끈을 잡아챘다. 공연하던 남자가 무대 뒤로 걸어갔다. 무대에 난입한 흰 티셔츠의 남자가 무언가를 향해 발길질 했다. 공연을 하던 남자는 무대 가운데에서 모자를 벗고 관객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2일 오후 3시 20분 경, 20년차 마임이스트이자 거리예술가인 송정배 클라운송 프로덕션 대표가 울산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간절곶공원에서 겪은 일이다.

발길질 하며 난입한 남성 알고보니...

"공연이 중반쯤 진행될 때 한 남자가 호루라기를 불며 무대에 올라오더라고요. 공연 도구를 낚아채고는 다짜고짜 '가'라고 한 마디 했어요. 뭔가 오해가 있나 싶어 제가 '2020 울주군 거리예술가'로 선정됐고 정식 공연이라는 배지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걸 확인도 하지 않고 발로 차더라고요."

3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송정배 대표가 한숨을 내쉬었다. 송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무대에 난입한 남성은 자신을 관리소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코로나19 시기에 이런 공연을 하면 안된다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공연은 울주군의 문화체육과와 산림공원과 등이 협력해 마련한 행사였다. 송 대표는 울주군이 올해 초 17팀을 선정한 '거리예술가' 중 한 사람이기도 했다.

공연은 말을 하지 않는 넌버벌 퍼포먼스였다. 송 대표는 크라운마임(Clownmime)을 하는 예술가다. 크라운마임은 팬터마임을 기반으로 하는 이야기 속에 마술, 저글링, 외발자전거, 풍선아트, 아크로배틱등 서커스적인 요소가 결합된 공연이다. 관객이 무대에 올라 공연에 참여하기도 한다.

당시 관객 중에는 10명이 넘는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어떻게든 무대를 잘 마무리하고 싶었던 송 대표는 울주군의 허가를 받은 공연이라는 배지를 보여주려고 무대 뒤로 뛰어갔다.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대 한 편에 설치된 거리예술가 배너를 발로 차 넘어트렸다.


"제가 사실 바로 공연을 중단하지는 않으려고 했어요. 말을 안 하고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공연이다 보니까 이 상황을 관객분들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했어요. 무엇보다 어린이 관객이 겁먹었을 거 같아서 많이 미안한 마음이에요"

송 대표의 무대를 훼방한 남성은 공원 관리소장도 아니었다. 보다 못한 관객이 경찰을 불렀을 때도 해당 남성은 신분을 밝히지 않고 내내 "여기서 공연하면 안된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송 대표는 "알고 보니 공연을 훼방한 남성은 공원 관리소장이 아닌 공원과 계약한 사설경비업체의 직원이더라"라고 말했다.

결국 공연은 중단됐다. 울주군도 유감을 표했다. 군은 간절곶공원 관리를 맡은 용역업체 소속 직원이 전후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이날 <오마이뉴스>와 통화한 울주군 관계자는 "사설 경비업체 측에서 소속 직원들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않아 불상사가 발생하게 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해명자료를 통해 "향후 절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용역업체에 대한 실태조사와 함께 교육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 대표는 "울주군수의 사과 전화를 받았다"라고 했다.

"거리예술가, 안전하게 공연할 수 있기를"
 
a

거리예술 공연 송정배 클라운쏭프로덕션 대표의 공연모습 ⓒ 송정배



송 대표가 겪은 일은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한 걸까. 송 대표는 새삼 거리예술가들이 겪는 어려움을 떠올렸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어제(2일) 공연을 훼방한 직원이 지난번 간절곶공원에서 한 공연도 방해했었던 사람이었어요. 제 앞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몇 분을 가만히 있으면서 공연의 흐름을 끊었어요. 다른 공연자들도 비슷한 일을 당했더라고요. 문득 울주군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거리예술가들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었겠구나 싶었죠."

송 대표는 2일 자신의 SNS 해당 영상과 함께 글을 게시했다. 3일 현재 64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송 대표에게 메시지를 보내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거리예술가도 있었다.

"정말 많은 전화와 메시지를 받았어요. 많은 예술인들이 분노하더라고요. 현재 거리예술가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면서요. 저는 그래도 이번일을 겪기 전에는 용인, 화성 등 지자체가 지원하는 곳에서 공연을 해서 비교적 안전한 환경이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길에서 버스킹을 하거나 공연하는 분들은 언제든 이런 위협, 어려움에 노출됐구나 싶더라고요."

현재 각 지자체는 거리예술을 지원하기 위해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경기도 거리예술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2016년 11월 8일 제정), '전라북도 거리예술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2017년 3월 10일 제정)가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2018년 '거리공연 활성화 조례'를 제정했다. 당시 서울시는 '시민이 곧 예술가이며 예술가가 곧 문화 향유 시민'이라는 모토로 '문화복지 정책'을 지원했다.

거리예술가 역시 아무 곳에서나 공연을 하는 게 아니다. 해당 구역에 공연신청을 하고, 허가받는 식으로 진행한다. 어느 지역에서는 공연스태프가 무대 주위를 정리하고 공연을 돕기도 하지만, 어느 곳에서는 오롯이 예술가가 무대 설치부터 철수까지 혼자 해야 한다.

송 대표는 "지역마다 정책도 지원금도 조금씩 달라서 거리예술가들의 공연 상황도 달라진다"면서 "사실 제가 겪은 일로 지역 공연이 축소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한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내가 겪은 문제는 거리예술가의 잘못이 아니다, 중요한 건 거리예술가가 안전하게 공연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것"이라면서 "그래야 시민 여러분들도 가까이서 공연과 무대, 예술을 더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송정배 #울주군 #거리예술 #거리공연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4. 4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5. 5 김종인 "윤 대통령 경제에 문외한...민생 파탄나면 정권은 붕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