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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에 한계 느낀다", 감독 도전하는 이정재의 고민

[인터뷰]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레이로 분한 이정재

20.08.07 14:24최종업데이트20.08.0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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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레이 역을 맡은 배우 이정재. ⓒ CJ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정재의 경력에서 영화 <빅매치>(2014)는 꽤 독특하다. 중후한 매력을 풍기며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온 그가 온 몸을 던져 말 그대로 날 것의 액션을 소화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정재 액션 연기의 정점이라 평했다. 

최근 개봉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그가 연기한 레이는 액션의 정점을 지나 또 다른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창의적이고 화려한 격투 때문만은 아니다. 다소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이며 청부살인업자면서 동시에 예전에 헤어진 딸을 구하려는 인남(황정민)을 끝까지 쫓아 죽이려 한다. 인남은 물론이고 그와 관련된 사람을 하나하나 제거하는 모습에서 절대 악인의 기운이 엿보인다. 이정재의 레이는 겉모습만 아닌 속모습까지 철저히 악하고 뒤틀려 있어야 했다.

"개연성보다는 그 모습 자체로 이해되길 바라"

"무작정 (시나리오에 나온) 레이를 쫓아가기보다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재일교포면서 범죄 조직에 연루된 레이를 왜 그렇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지, 과거에 그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일본에 머물던 인남의 흔적을 따라 한국으로, 다시 태국 방콕으로 가서 오로지 죽이려 한다. 자신의 친형을 죽였다는 게 표면적 이유지만 극이 후반으로 갈수록 레이는 폭주에 폭주를 거듭한다. 이정재의 해석과 표현이 중요한 지점이었다. 그는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직접 레이의 분장과 패션을 제안했고, 지금의 레이는 그의 아이디어를 뼈대로 만들어진 모습이었다.

"해당 캐릭터를 잘 표현하려면 배우가 잘 이해해야 하니 대사를 더 넣거나 수정했으면 한다는 요구를 초반엔 했다. 레이에 대한 설명이 없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설명 안 하는 게 관객분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도 있겠더라. 영화에서 레이가 등장하는 순간, 딱 '쟤는 저럴 것 같아' 그 느낌이 오길 바랐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방식인데 과해 보이기 직전까지 레이의 모습을 만들어가려 했다. 

준비한 패션을 USB에 쭉 담아가서 하나씩 입어 가는데 감독님도 제작진도 좀 당황해하더라. 제작진은 좀 더 어둡고 군중 속에서 식별이 잘 안 되는 킬러의 모습을 준비했는데 전 핑크 머리에 흰색 부츠, 주황색 반바지 등을 준비해갔으니(웃음). 제가 해본 캐릭터 중 가장 독특했다. 촬영장에 가면 그날 제 의상이 뭔지 모르는 스태프들도 많았다. 뭔가 과한가 싶다가도 분장을 다하고 현장에 서 있으면 묘하게 어울리더라. 이상하게 (영화와) 잘 어울린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신세계> 이후 7년 만에 황정민과 함께 만난 작품이다. 이정재 스스로도 꼭 다시 만나고 싶은 동료였고, 동시에 과거 작품과 비교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신세계를) 의식 안 할 순 없고 혹시나 그때와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는지 점검하면서 연기했다"며 그는 황정민과의 호흡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민 형과 너무 좋은 기억이 있어서 항상 더 하고 싶었다. 그 형이 <달콤한 인생>을 할 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한 사람의 팬으로서 인사 나누고 그랬는데 <신세계>로 만나서 참 설렜다. 같은 배우가 작품으로 두세 번 만나는 게 참 어렵더라. <신세계>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캐릭터긴 하다. 오히려 둘의 역할이 바뀐 느낌도 있긴 하다. 액션이라는 게 화려함과 스릴감이 중요하지만 그건 일종의 스타일인 거고 중요한 건 찰나의 표정이라 생각한다. 배우 입장에선 그렇다. 찰나의 표정, 느낌을 위해 연기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에서 그런 지점을 극대화해 찍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정민 형과는 영화 장면 이야길 많이 했다. 레이가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을 관객들이 보면 그동안 레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상상할 수 있으니, 감독님과 무술 감독님, 촬영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도 하고 제 아이디어도 말씀드리곤 했다."


첫 등장 때 아이스커피를 한 손에 들고 있는 모습, 칼에서 불꽃이 튀면서 눈빛이 보이는 장면 등은 모두 이정재의 아이디어였다. "히스테릭하면서도 집착적인 성격이 잘 나타났으면 했다"고 그가 덧붙였다.
   

"정민 형과는 영화 장면 이야길 많이 했다. 레이와 인남이 첫 대결 하는 장면에서 원랜 몸싸움이 아닌 총싸움 중심이었다. 방콕에서 처음 레이가 능력을 보이는 장면도 몸싸움이 없었는데 현장에서 갑자기 찍게 된 것이다." ⓒ CJ엔터테인먼트

 
배우의 숙명

이번 촬영으로 어깨 인대가 파열돼 현재 수술까지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이정재는 "새로운 걸 보이고 싶은 욕심이 커서 그런 것 같다"며 "그런 게 배우 생활을 하는 재미지 않나 싶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역시 스타성과 흥행성을 담보한 그가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을 것 같다는 말에 이정재는 잠시 고민한 뒤 말을 이었다.

"오래 일을 하다 보니 한계를 자꾸 느끼는 것 같다. 상상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다 쓴 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는데, 좋은 작품을 제안받으면 또 다른 걸 보이고픈 욕망이 있으니 내 안에 있는 걸 싹싹 긁어서 쓰기도 한다. 잘 안되면 스태프들 도움을 많이 받기도 하고. 왜, 즐겨 입는 옷은 그 안에서 잘 소화하면 되는데 앞으로 들어오는 옷은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거다. 예전에 한 걸 다시 써먹는 거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뭔가 새롭게 하고픈 욕구는 큰데, 이정재라는 사람을 너무 많이 보여드려서 다른 걸 보인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정재는 이번 영화에서 유이 역을 맡은 박정민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천재가 노력까지 하면 무서운데, 정말 천재같다. 그것마저 안 들키려고 성격 또한 워낙 겸손하다"며 "참 부러운 사람"이라 말했다.

"제가 갖고 있지 않은 걸 가졌으니 부럽지. 정민이 형도, 박정민 배우도 모두 부럽다. 내가 한번 흉내 내볼까 하더라도 그들보다 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이렇게 자극을 주는 배우가 제 원동력이기도 하다. 제 연기 역시 관객분들이 보시고 흥미와 재미를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항상 있다. 나만의 새로운 면을 보일 수 있는 게 연기의 매력인 것 같다."

줄곧 연기 이야기를 했지만 이정재는 감독으로서 도전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이미 기사화 된 영화 <헌트> 촬영을 한창 준비 중이다. <태양은 없다>(1991)로 같이 호흡한 정우성과 재회를 꿈꾸고 있지만 좀처럼 두 사람이 한 작품에서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같은 소속사를 함께 이끌고 있으면서도 공동 출연 여부는 아직 불투명한 것에 이정재는 "이 정도면 정우성씨를 향한 제 짝사랑인 것 같다"며 이후 계획을 밝혔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사실 중간에 두 작품 정도는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세월이 이렇게 지날 줄이야. 우리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 중에선 같이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아서 의기투합한 프로젝트가 몇 번 있었다. 같이 시나리오를 써보기도 했는데 그땐 서로 촬영을 들어가거나 시간을 좀 더 가져야 하거나 그래서 진행이 안 된 게 있다. 

<헌트>는 사실 <도둑들>에서 임달화 선배와 촬영 때 결심한 게 크다. 직접 프로듀싱도 하고, 시나리오도 쓰고, 연출도 하고 계시더라. 미국 배우들이 연출도 하고 시나리오도 쓴다는 걸 뉴스로만 접하고 있었는데 뭔가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일하면서 우린 배우와 연출자 등으로 나누곤 하는데 이게 영화인이구나. 너무 부러웠다. 좋은 영화를 위해서라면 파트가 뭐가 중요한가 싶었다. 감독, 배우, 제작자로 누가 나눈 것도 아닌데 스스로 제약하고 있는 것 같다. 그때부터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적어놓곤 했다. 그걸 발전시킨 것 중 하나가 <헌트>다."


배우를 넘어 감독 데뷔를 앞두고 있으면서도 이정재는 "로맨스 장르 연기를 해보고 싶다"며 내심 속마음을 드러냈다. "너무 강한 걸 해서인지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며 웃어 넘기는 그에게서 천생 배우의 기질이 보인다.
이정재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황정민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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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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