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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원 넘게 쏟아부었지만, 새들은 번식을 거부했다

[박중록의 습지와 새 이야기] 낙동강하구를 떠나는 쇠제비갈매기

등록 2020.08.07 08:16수정 2020.08.0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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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자연 습지인 낙동강하구의 새들이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낙동강하구를 넘어 우리 삶의 토대인 자연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를 새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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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하구 낙동강 하구지역에 있는 도요등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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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제비갈매기 ⓒ 습지와새들의친구


역시 보이지 않았다. 넓은 모래밭과 수평선으로 이어지는 바다 어디에도 쇠제비갈매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귀를 기울여봐도 들리는 것은 파도와 모래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뿐, 7월 중순의 도요등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한반도 동쪽의 최남단, 1천3백 리를 흘러온 낙동강이 바다와 만나며 마지막 몸을 푸는 곳. 강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자 바다가 끝나고 강이 시작되는 곳. 시작이자 끝이고 끝이자 시작인 곳. 시작도 끝도 없으며 모든 것이 이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곳.

그래서 이름도 낙동강하류(下流)이자 낙동강하구(河口)인 이곳은 아시아대륙의 기운이 한반도의 등줄인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와 태평양과 만나는 곳이다. 아니, 태평양의 기운이 이곳에서 아시아 대륙으로 올라가는 곳이다. 대륙과 대양을 잇는 낙동강하구의 최남단에 펼쳐진 작은 모래섬, 아니 아직 섬이 되지 못한 어리디 어린 섬 도요등엔 고대했던 쇠제비갈매기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도요등, 쇠제비갈매기들의 터전
     
도요등은 낙동강하구에 발달한 등(嶝)의 하나다. 강물이 마지막까지 싣고 내려온 보드라운 흙모래가 바다와 만나며 마지막으로 쌓이는 곳이 하구다.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이 쉼 없이 반복되며 흙모래를 펼치고 펼쳐 낙동강하구에는 끝없는 갯벌이 펼쳐진다. 그 갯벌의 일부는 세월에 따라 조금씩 높아져 웬만해서는 물에 잠기지 않는 등이 되고, 등은 또 세월이 흐르고 흘러 어엿한 육지가 되어 섬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일찍이 섬이 된 낙동강하구의 을숙도, 명호도, 맥도는 각종 개발과 사통팔달 넓은 도로로 섬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 섬들 남쪽으로 명금머리등과 백합등, 대마등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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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서쪽에서 바라본 낙동강 하구 바다쪽 모습. 산 쪽의 모래로 된 등이 도요등이다. ⓒ 습지와새들의친구

 
그 바깥 태평양 쪽 파도가 맨 처음 육지부와 만나는 곳에 새로 생긴 새등과 도요등이 있다. 가장 최근인 1980년대에 나타나 아직 시중의 종이지도에도 등장하지 않는 새등과 도요등은 동남아나 멀리 호주 등에서 겨울을 난 쇠제비갈매기 3천~4천 마리가 해마다 봄이면 몰려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던 곳이다. 특히 도요등은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쇠제비갈매기의 핵심 번식지였다.

쇠제비갈매기는 갈매기의 한 종류다. 우리나라를 찾는 갈매기는 종류만 30가지가 넘는다. 쇠제비갈매기는 그 모양이 제비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앞의 '쇠'는 작다는 뜻이다. 몸길이 24센티미터 정도 되는 제비갈매기류 중 가장 작은 종인데, 제비처럼 추워지면 강남으로 갔다가 봄이면 다시 돌아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여름 철새다.

쇠제비갈매기는 사방이 트인 모래밭에 오목한 둥지를 만들고 멸치처럼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살아간다. 이들이 입에 고기를 물고 날렵하게 하늘을 날아 둥지로 돌아가는 모습은 '세상에 이런 곳이 우리 곁에 있었는가' 하고 그저 감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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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제비갈매기 ⓒ 습지와새들의친구


물 위를 낮게 그야말로 유유히 날다 물고기를 발견하면 잠시 공중에 멈추었다가 휘익 몸을 돌려 물속으로 급강하, 온몸을 내리꽂는다. 그리곤 부리 끝에 제 덩치 마냥 작은 고기를 물고 유유히 둥지로 돌아가 이를 짝이나 새끼에게 건넨다. 덩치는 작으나 매나 너구리 같은 포식자가 나타나면 수백, 수천 마리가 함께 매섭게 달려들어 둥지와 새끼를 지킨다.

이런 쇠제비갈매기 3천~4천 마리가 작은 모래등에서 무리 지어 살아가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라. 그리고 이 수천의 생명을 봄부터 여름까지 품어 키우는 그 자연을 한번 상상해 보시라. 낙동강하구가 왜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인지, 왜 이곳을 신이 내린 축복의 땅이라 부르는지를 절로 알게 하는 낙동강하구의 여름을 대표하는 새가 이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사라져 버렸다. 그 성실한 자연의 리듬이 깨어진 것이다.


유명무실한 보호법
      
2004년 낙동강하구 조류조사를 시작한 이래 해마다 3천~4천 마리가 안정적으로 찾아왔는데, 2010년과 2011년 2천 마리 정도로 주는 기미를 보이다 2012년엔 2천 마리대로 아예 줄었고, 2013년에는 2천여 마리가 찾아왔으나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해부턴 아예 찾아오는 것을 포기했다. 봄철 몇십 마리, 기껏해야 1백여 마리가 찾아왔다가 번식을 포기하고 떠나는 상황이 고착됐다. 세계 최고 쇠제비갈매기의 번식지 중 하나가 불과 3, 4년 사이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새들이 사라지는 것은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밥과 집을 제공하던 자연이 없어지니 새들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우리 주위의 생물이 사라지는 것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자연파괴가 주원인이다.

낙동강하구는 개발로 인한 자연파괴의 상징과 같은 곳이다. 문화재보호법과 습지보호법, 자연환경보전지역 등 정부가 자그마치 5개 법으로 보호하는 지역이건만, 육지 쪽은 이미 도시로 변해 버렸다.

가장 강력한 자연 보호법도 자연을 지키지 못하는 이 나라에서 쇠제비갈매기는 4대강사업 기간을 거치며 사라져 버렸다. 1983년의 하굿둑 건설과 녹산공단, 신호공단, 무지개공단, 명지주거단지와 부산신항, 을숙도대교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개발사업으로 다른 새들이 사라질 때도 그 삶을 이어갔던 쇠제비갈매기이건만, 강 전체가 도려내어지고 상류로부터의 토사 공급이 끊기는 거대한 변화를 견뎌내지는 못했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부산시가 2018년 겨울 1억원을 들여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전년도엔 10마리, 20마리 정도 잠깐 보였던 새들이 2019년 봄엔 백 마리 가까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들은 곧 번식을 포기하고 도요등을 떠났다.

뒤늦게 복원했지만... 새들은 둥지를 만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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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등 쇠제비갈매기 복원지 ⓒ 박중록


그해 겨울 부산시는 실패의 원인조차 짚지 않고 더 많은 국고를 투입해 복원지를 확대했다. 총 1억3천만 원을 쏟아부었다. 해가 바뀌어 5월이 되자 찾아온 수가 2백여 마리로 늘었다. 그러나 역시 번식은 없었다.

지난 6월, 10마리가 남아 있어 혹시나 새끼를 키워냈을까 사방을 샅샅이 훑어보고 그 소리를 찾아 귀 기울였으나 7월 다시 들른 도요등 어디에서도 쇠제비갈매기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쇠제비갈매기를 유도하기 위해 복원지에 설치한 모형 갈매기와 녹음된 소리에 이끌려 다시 도요등을 찾기는 했으나 결국 머물 수 없는 환경임을 확인하고 모두 떠나버린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자연보호법이 몇 겹으로 작동하는 곳에서조차 이 상황이니 나머지 땅이야 무슨 말을 하겠는가? 온 국토는 여전히 경제와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파헤쳐지고 있다. 자연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파헤치는 개발은 끊이지 않는다.

낙동강하구에 이미 27개의 각종 교량을 갖고 있는 부산시는 이 지역의 인구와 교통량이 증가하고 있다며 대저대교, 엄궁대교, 장락대교 등 10개의 추가 교량 건설 계획을 현재 문화재보호구역 안에서 추진하고 있다.

쇠제비갈매기 다음엔 누가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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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산에서 바라본 도요등 ⓒ 습지와새들의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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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제비갈매기 무리 ⓒ 습지와새들의친구

덧붙이는 글 글쓴이 박중록 습지와새들의친구 운영위원장은 낙동강을 사랑하는 퇴직교사로 20년 넘게 낙동강하구를 지키는 환경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낙동강 #쇠제비갈매기 #낙동강하구 #도요등 #부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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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 생존의 토대, 자연이 사라진다는 것. 한국이 지닌 세계적 자연유산인 습지와 습지생태계의 지표종인 새를 지키기 위해 설립된 NGO, 습지와새들의친구의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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