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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쓴 학생과 마주하니... '눈웃음' 밖에 길이 없네

교사로서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 학기' 보내고 난 뒤

등록 2020.08.06 15:03수정 2020.08.0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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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인 5월 15일 노원구 화랑초등학교에서 진행 중인 온라인 수업에서 한 학생이 선생님에게 카네이션 모양으로 꾸민 감사 편지를 보여주고 있다. (기사와 사진은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상황 1. 

"선생님, 누가 제 답을 지우고 있어요!" 

지난 4월, 얼떨떨하게 시작한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한숨 돌린 뒤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학생의 목소리는 다급했으나 나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다. '누가 뭘 지운다고?' 방금 껐던 노트북을 서둘러 켰다. 처음에는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도 잘 몰랐다. 노트북 화면에서는 글자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구글 클래스룸으로 학생들에게 글쓰기 과제를 뿌리면서 '학생별로 사본 제공'을 누르지 않고 '학생에게 파일 수정 권한 제공'을 누른 것이다.

상황 2. 

"선생님, 학생들이 작성한 답지가 안 보여요."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면서 구글 설문지 양식을 활용했다. 그런데 아무리 구글 클래스룸을 뒤져도 학생들이 제출한 답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부끄러움은 내 몫으로 하고 동료 선생님께 여쭤보았더니 단순 명답이 돌아왔다.

"선생님, 설문지 양식이니까 구글 설문으로 들어가셔야 찾을 수 있어요." 

그래, 실수는 이걸로 끝이겠지 했는데 웬걸, 누가 어떤 답을 냈는지 알 수가 없는 거다. 설문지 양식을 사용하면 반드시 1번 항목에는 이름을 적도록 해야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나는 멋진 신세계에 겨우 발가락을 들여놓았을 뿐이었다.

안 죽고 살았으니 버텨야지

한 달 동안 좌충우돌의 온라인 수업을 하다가 오프라인 수업으로 돌아왔고, 지난주에 드디어 4개월의 대장정이 끝났다. 나는 신기술에 얼추 적응했다. 새로 익힌 도구들은 수업에 유용하게 쓰였다. 

기저질환이 있는 학생을 배려해 온·오프라인 블랜딩 수업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새로 익힌 도구들은 수업에 유용하게 쓰였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실시간으로 짧은 글을 써서 구글 클래스룸에 올리면 그 자리에서 바로 피드백을 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구글 클래스룸에 학생들의 과제 제출 기록이 '사용자' 별로 정리되어 있으니 학기 말에 평가하기도 훨씬 수월했다.

학기가 종반으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건장한 체격에 귀여운 눈을 한 두 학생이 나란히 2인 1조로 발표를 했다. 학생들이 구글 클래스룸으로 미리 제출한 발표문을 그들에게 나눠주고 발표를 시키려는데 두 학생의 이름이 헛갈리기 시작했다. 

얼굴을 반 이상 마스크로 가리고 있으니 헷갈리는 거라고 서둘러 합리화를 했지만 내 얼굴은 이미 화끈거렸다. '구글 신'이 섭리하는 세상에서 나 대신 AI가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홍채 인식 기능을 활용,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했다.

환경 파괴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기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 코로나19 다음에는 코로나20, 코로나21이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무섭다. 어찌해야 할까? 어쩌긴. 안 죽고 살았으니 어떻게든 버텨야지. 

다음 학기 수업을 준비하고, 이미 익힌 신기술은 더 갈고 닦되, 사람을, 인간성을, 관계를 놓치지 말아야지. 입과 코에서는 바이러스가 나온다니 일단 마스크로 잘 가리고, 눈과 눈을 마주하련다. 코웃음, 비웃음은 치우고 눈웃음으로 길을 열어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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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강사입니다. 학교에 출근하는 날에는 글쓰기를 가르치고, 집에 머무는 날에는 밥도 짓고 글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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