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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 전혜린'을 깔봤던 나, 왜 그랬을까

[서평] 전혜린과 여성들을 위한 변호, 책 '문학소녀'

등록 2020.08.06 15:20수정 2020.08.0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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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가 터진 이듬해, 우리 집은 살던 집의 반 토막쯤 되는 곳으로 이사했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자주 창피했다. 초라한 도시락, 부족한 용돈. 학비를 면제받기 위해 교무실에 들락거리던 때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어떻게든 졸업해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대학을 가고 원하던 대로 돈을 벌게 되었지만 생활은 더 팍팍해졌다. 학비를 보태야 했고 용돈은 오롯이 내 책임이었다. 동기들보다 더 긴 시간 일해 돈을 벌었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는 친구들 앞에서는 자부심과 열등감을 동시에 가졌다. 


하필 그때, 전혜린을 접했다. 그녀의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고 나는 건방지게도 코웃음을 쳤다.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제대로 파악한 건 한 가지였다. 일제 강점기에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가 독일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였다는 것.

그때의 나는 모든 이들이 각자의 짐을 짊어지고 산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의 문장들에 몇 번이나 매료되어 멈칫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을 땐 한껏 불량해져 있었다. 요절했다지만 소녀 시절은 벗어나지 않았는가. 이렇게 감상적일 수 있다니 다 좋은 팔자 덕분인가!

나는 더없이 옹졸했다. 주머니 사정 보다 마음이 더 궁핍했던 시절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왜 남성 작가들의 팔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나? 알량한 기준이지만 성에 차지 않는 글은 늘 있었다. 나의 이 불공정함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전혜린에게 덧씌워진 부당한 혐의
 

<문학소녀> 책표지 ⓒ 반비

 
'문학소녀'라는 말을 들으면 다들 무엇을 떠올릴지 궁금하다. 고백하자면, 나는 코끝이 간지럽다 못해 재채기가 나올 것 같다. 김용언 작가의 <문학소녀>는 그 단어에 덧입혀진 이미지의 기원은 물론, 그 대표격으로 쉽게 소환되는 전혜린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부제는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 

왜 '문학청년'이 등단을 꿈꾸며 글쓰기에 매진하는 성실한 아마추어의 느낌인 데 반해, '문학소녀'는 감정적이고 몽상적이며 유아적 단계에 머물러 있는, 끝내 작가가 되지 못할 독자라는 느낌을 주는가? 저자는 이에 대해 성실하게 탐구한다.


책에 따르면, 1908년 최남선이 <소년>이라는 잡지를 창간했을 때도, 1921년 방정환이 '어린이'라는 단어를 만들었을 때도, 그 안에 소녀의 자리는 없었다고 한다. 소녀가 일상적인 존재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60년대에 들어 여성에게도 의무교육이 이뤄진 뒤라는 것.

그러나 이때에도 소녀는 특정한 시기를 거치는 주체가 아닌, 어머니의 전 단계일 뿐이었다.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도 이들을 현모양처로 만들기 위한 훈육과 계몽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소녀들은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를 양육하여 나라에 이바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책을 읽어야 했다. 이때, 지나친 몰입은 금지되었다.
 
"어디까지나 공인된 권장 도서를 읽되 지나치게 빠져들지 않고 교양으로서의 지식으로만 습득해야 했고, 그럼으로써 '소녀다운' 순수성은 간직하며 남성-어른들의 귀여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 대단히 복잡한 과제가 제시된 것이다." (157쪽)

소설 속 남성주인공들은 문학을 읽고 고뇌하며 성숙해가지만, 여성 주인공은 문학에 과도하게 몰입한 나머지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해 몰락하는 것으로 묘사되기까지 한다. 이렇듯 문학소녀를 얕잡아 보는 시선은 여성 작가를 업신여기는 것으로도 이어진다. 

멸시와 훈계의 대상이 된 문학소녀들

더구나 5.16 쿠테타 이후 사회는 급격히 보수화되어 간다. 이전 시대에 여성의 자리가 겨우 조금씩 확장되었으나 사회는 이들에게 다시 가정으로 돌아갈 것을 명한다. 196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필한 <국가와 혁명과 나>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고 한다.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야 
 나는, 고운
 네 손이 밉더라"

"우리는 일을 하여야 한다. 고운 손으로는 살 수 없다. 고운 손아, 너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만큼 못 살게 되었고, 빼앗기고 살아왔다." (본문 207-208쪽 재인용)

식민지 시기와 전쟁까지 치르게 한 주적은 밝혀지지 않은 채, 갑자기 '문학소녀'가 불려 나와 노동하지 않는 자로 대표되고 공공의 적이자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적폐로 부상한 것이다. 그렇게 문학소녀는 멸시와 훈계의 대상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이런 의미에서 보면 전혜린은 특별하다기보다 '익숙한 패턴의 일부'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그녀의 유고집은 사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으며 우리에게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문학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혜린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작 문학소녀에 대해, 그 문학소녀 카테고리를 창조하다시피 했던 전혜린에 대해 알고 있긴 한가? 전혜린이라는 드문 개인이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또는, 과거의 인물 전혜린의 지적 허영이 지금에 와서는 유치해 보인다는 게 비난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남들과 달라지겠다는 그 허영심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성장해온 출발점이 아닌가?" (18쪽, 들어가며)

저자는 전혜린을 덮어두고 숭배하지 않는다. 교양과 처세에 동시에 능한 아버지 덕분에 조국의 운명과 무관하게 성장할 수 있었으며, 그렇게 물적 토대 위에 서서 배금주의를 경멸하는 분열적 태도를 보였음을 에두르지 않고 말한다. 

동시에, 감상적으로 치부되는 그녀의 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함을 강조한다. 그녀의 수필에서 느껴지는 감상과 격정은 기행문의 특성상 저자와 편집자의 의도 하에 이뤄졌을 수 있으며 사후 출간된 일기와 편지 또한 엮은 이들의 의도가 다분히 담겼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번역가로서의 전혜린 또한 주목할 만하다. <데미안>과 <생의 한가운데>를 직접 고른 감식안과 기획력이 있던 그녀다. 동시대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그녀의 글에는 민족주의적 애국심이 보이지 않지만 이것은 '주변부 여성 지식인의 정체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저자는 "열다섯 살의 나는 그녀를 동경했고, 전혜린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은 지금의 나는 그녀를 이해한다"(218쪽)고 말한다. 이에 빗대 말하자면, 나는 스무 살에 그녀를 폄하했으며 이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녀를 깊이 느낀다. 그렇다면 나는 성장한 것인가, 퇴보한 것인가. 

"물질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정신적인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던 청춘의 감성"(223쪽)을, 나는 이제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자본주의에서 한 발 물러나 초연하길 바라면서도 이재에 밝지 못한 스스로를 시시각각 탓하는 나는, '이곳이 아닌 어딘가'를 꿈꾸던 그녀를 뒤늦게 공감한다.

쓸데없는 고백으로 내 손으로 괜한 '흑역사'를 만드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또한, 내 얕은 감상이 누군가에게는 폐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책에 애정을 느낄수록 그런 걱정은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것은,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이 책을 알리고 싶기 때문에. 
 
"문학소녀. 나도, 당신도 전혜린이었다."(227쪽) 

문학소녀 -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

김용언 (지은이),
반비, 2017


#문학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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