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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나몰라' 친일파 시비, 독립운동 기념탑 옆에 버젓이

[광복절 75주년 기획 - 공유지 위에 선 친일파 ③] 주요한, 조택원, 김기수, 함화진

등록 2020.08.14 21:31수정 2020.08.1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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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서정주, 조택원, 김기수, 함화진, 주요한.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및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동상 및 시비, 기념관 등이 공유지에 수십 년째 자리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광복 75주년을 맞아 오마이뉴스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현장에서 이를 직접 확인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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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 위치한 주요한 시비와 조선어학회 한글수호 기념탑. 친일과 항일을 대표하는 인사들의 기념물이 같은 공간에 세워져 있다. ⓒ 김종훈


"한글을 지킨 분들을 위해 세워진 기념탑이야."

5일 오후 초등학교 자녀들과 함께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옆 세종로공원을 찾은 김은혜(43)씨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희생된 독립운동가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조선어학회 한글수호 기념탑'을 바라보며 한 말이다. 그는 기념탑 앞쪽에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투쟁기'라고 명명된 안내문을 자세히 살핀 뒤 "이런 분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한글을 자랑스럽게 쓰고 있다"면서 "제대로 알고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라고 다시 한 번 설명했다. 

조선어학회사건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민족말살 정책에 따라 한글연구를 한 학자들이 민족의식을 고양시켰다는 이유로 탄압받고 투옥된 사건을 말한다. 그런데 '조선어학회 한글수호 기념탑'에서 불과 20m 떨어진 장소에는 전혀 다른 기념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국가공인 친일파 주요한의 시 <빗소리>가 새겨진 시비다.

주요한은 일제강점기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문인이자 독립운동가였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을 계기로 친일파로 전향했고, 이후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일제를 찬양하는 시를 썼다. 전선에 보낼 징병과 학병을 뽑기 위한 연설과 강연도 매진했다. 무엇보다 조선문인협회 간사이자 조선문인보국회 이사로 활동하며 최전선에서 일본어 보급운동에 앞장섰다.

주요한의 시비 뒤쪽에는 그의 약력이 새겨져 있다. 해방 후에도 승승장구한 그는 언론사 사장과 국회의원, 장관 등을 역임했다. 1970년 대한해운공사 사장이 됐고,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안중근기념사업회 등에서도 주요 간부로 활동했다. 1979년 11월 27일 사망 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시비 어디에도 친일행적에 관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시가 직접 관리하는 세종로공원 주요한의 시비는 1993년 세워졌다.

주요한 뿐 아니다...  국립극장 입구 조택원 춤비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주요한을 국가공인 친일파로 선정해 발표한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주요한 시비에는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주요한의 시비 뿐 아니다. 서울시에는 국가에서 공인한 친일파들의 기념물이 '과거 이력'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자유롭게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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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국립극장 앞에는 국가공인 친일파 조택원의 춤비가 세워져 있다. ⓒ 김종훈

 
대표적인 기념물이 서울 중구 국립극장 입구에 세워진 국가공인 친일파 조택원의 춤비다. 일제강점기 지원병과 학병 출진 축하 모임에서 공연을 한 조택원은 내선일체 주제의 무용 <부여회상곡>을 연출한 인물이다. 이런 이력 때문에 2009년 정부는 조택원을 국가공인 친일파로 선정해 발표했다.

그러나 조택원의 춤비 하단 석판에는 "우리 근대무용의 선각자이며 불멸의 춤작품을 남기신 무용가"라는 내용의 음각만 새겨졌을 뿐 그 어디에도 그의 친일과 관련된 행적이 기록돼 있지 않다.

광복 후 조택원은 이승만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금족령이 내려지자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을 돌며 공연을 이어갔다. 이 대통령이 4.19혁명으로 물러난 이후 한국에 돌아와 한국무용협회 이사장과 고문, 한국민속무용단과 한국민속예술단 단장을 지냈다. 1974년 10월 무용가 최초로 금관훈장을 받았다. 국립극장 앞 춤비는 1996년 3월에 세워졌다.

국립국악원의 김기진·함화진 동상의 경우... 그나마 친일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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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는 친일파 김기수와 함화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바로 옆에는 이들의 친일행적을 기록한 안내문도 마련돼 있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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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는 친일파 김기수와 함화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바로 옆에는 이들의 친일행적을 기록한 안내문도 마련돼 있다. ⓒ 김종훈

 
주요한, 조택원과 달리 서울시에 존재하는 친일파 기념물 중에는 친일 행적을 함께 표기한 사례도 있다.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 설치된 김기수, 함화진 동상이다. 1994년과 1998년에 각각 세워진 두 동상은 건립될 당시엔 친일행적이 기재되지 않았다.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두 사람이 모두 이름을 올린 후에야 긴 논의 끝에 친일행적을 포함하는 안내문이 설치됐다.

과정이 매끄럽진 않았다. 2015년 5월 국립국악원이 국악원과 우면산과의 경계지점에 원로 국악인을 기리는 '동상공원'을 새롭게 조성할 때 친일행적으로 논란이 된 김기수, 함화진의 동상을 포함시켰다. 두 사람의 동상이 포함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논란이 일었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까지 나서서 관련 문제를 논의했다.

결국 국립국악원은 자체적으로 동상심의위원회를 열어 이 사안을 논의했다. 2015년 6월 국립국악원은 김기수 함화진 동상 옆에 두 사람의 구체적인 친일행적을 적시한 안내문을 설치했다.

서울시 "친일파 기념물 처리기준 필요"... 김원웅 광복회장 "법안 마련할 것"

서울시는 6일 <오마이뉴스>에 "(친일파 기념물 철거 등 문제는) 지자체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면서 "기준을 마련할 확실한 법안이 필요하다, 법안에 맞춰 제도적으로 이 사안을 풀어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결국 친일파 동상을 포함하는 기념물에 관한 법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김원웅 광복회장은 6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결국 관련법이 부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혼란이 이어지는 것 아니겠냐"면서 "2020년 광복절 75주년을 맞아 광복회가 관련 사안을 정리해 공식적으로 서울시에 문제제기를 하겠다, 21대 국회에서 친일찬양금지법을 포함해 관련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국가공인 친일파로 선정된 인물 중 서울시가 직접 관리하는 동상 및 시비는 총 4개다. 김성수, 주요한 이외에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야외음악당에 마련된 김동인 문학비,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에 마련된 노천명의 '사슴' 시비 등이 있다. 전국으로 확대하면 친일파의 동상과 시비, 기념관 등 숫자는 더욱 크게 늘어난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2015년에 발간한 '국정감사 정책자료'에 따르면 공유지를 포함해 학교 및 군부대, 공원 등 공공시설에 설치된 국가공인 친일파 관련 기념물은 전국 22개 자치구에 34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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